그날그날 - o

생각

뚝틀이 2012. 7. 5. 23:51

비가 온다. 오후에야 비 온다는 일기예보를 믿은 탓도 있지만, 적어도 내 눈에 보이는 하늘은 금방 비를 뿌릴 그런 모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떠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앞창유리에 빗방울이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냥 돌아가? 그럴 수야 없지. 어제 보아 둔 하늘타리를 오늘 이 이른 아침에 꼭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굳다. 내일은 의무이행을 해야겠고 모레는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도 있고 하니, 이런 식으로 더 늦어지는 것이 싫다. 취미, 취미의 함정. 때로는 본업보다 더 사람을 옥죄는 게 바로 이 취미라는 괴물이다. 본업이야 자유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다른 요인과 물고 돌아가는 전쟁이지만, 취미야 그 리듬이 전적으로 자신의 뜻에 의해 돌아가는 것. 어쨌든 현장 도착, 비옷을 챙겨 입고, 트렁크 문을 열고 망원렌즈를 조립한다. 작년엔 그렇게도 무성했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이 말끔하게 ‘가꾼’ 탓에 남은 녀석은 겨우 몇 송이, 그나마 이미 철이 지났는지, 아니면 이미 ‘늦어버린’ 아침이라 그런지 흐물흐물 생기가 없다. 배경이고 각도고 그런 사치스런 것 따질 수 없게 저 높이 매달린 꽃을 향해 카메라 들어보지만, 오늘따라 이 망원렌즈 무게가 힘겹게 느껴진다. 비 오는 하늘을 향해 잠깐 들어 숨죽이며 샤터 누르는 자세 취하기도 전에 휴 소리 신음이 먼저 나온다. 알리바이. 이것이 또 취미의 한계이기도 하다. 만약 이 사진 찍기가 내 생업이었다면? 이런 뚝딱 동작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은 비옷 속에 느껴지는 후끈후끈 체온 흘러내리는 땀 그 불쾌감. 찍기는 찍었잖아, 뭘 더 어떻게 하겠어. 그냥 대충 포기하고 다시 출발, 집으로.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이렇게 허무하게 다녀가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 지금 내 뭘 하고 있는 거지? 차창을 때리는 빗줄기는 더욱 굵어진다. 집안에서 밖을 내다보건, 달리는 차안에서 비를 느끼건 마찬가지. 비와 상념, 불가분의 관계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요즘 마음이 편치 않다. 전혀 편치가 않다. 교회 짓기 마무리. 한 이틀 정도의 작업량만 남았는데, 마땅한 목수를 구할 수 없다. 믿을 만한 사람은 내 붙잡아둘 수 있을 만큼 붙잡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다른 현장에 가 있는 상태다. 다른 목수를 구해보지만, 자원하는 사람은 지난 번 우리 집 지을 때 하도 데어서 다시라곤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장본인. 아니 그런 지엽적인 것보다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집 모양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내 실망이 커진다는 사실. 내 설계할 때 그렇게 낭만적으로 꿈꾸었던 분위기에서 점점 더 멀어져간다. ‘갖다 붙인’ 문 모양도 건물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정한 창살 없는 유리창이란 결정에도 불안감이 앞선다. 그렇게 열심히 찍어대던 사진도 이제는 찍기가 싫다. 아니 찍기 겁이 난다. 일단 준공검사를 받은 후 몇 가지 복안을 실체화 시킨 후에야, 그때서야 아마 다시 찍을 용기가 날 것 같다. 사실 말이지, 그 동기야 어쨌든 결국, 이 집짓기라는 행위도 일종의 취미차원 아니던가. 취미는 본질상 혼자만의 작업이다. 노력도 결과도 다 자신만의 책임이다. 실패라는 결과에 대한 공포, 이것은 본업 못지않다. 바둑이 그랬고, 노래하기가 그랬고, 또 지금의 사진 찍기 역시 그렇다. 나의 한계.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며 폭우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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