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파랗다. 이렇게 좋은 날 집에서 책이나 붙잡고 있을 수야 있겠는가. 배낭을 둘러메고 산에 오른다. 사실 이제는 꽃 사냥을 마감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지만 아직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 혹 무엇이 더 있을까 찾는 그런 기대가 아니라 혹 어디 무슨 좋은 모델 없을까 그런 바람에서다. 며칠 전 보아둔 용담이 있는 그곳까지, 그것이 출발 때의 생각이었다. 분명 하늘색은 시원하도록 파란데, 하필 내 빛을 필요로 하는 꽃 있는 그곳이 구름에 가려져있다. 빛이라는 것. 며칠 전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오던 그 아름다움 그 꽃모습이 오늘은 칙칙한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슬픔의 엄습이란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리라. 좀 있다 걷히겠지, 발걸음을 계속해 더 깊은 산속으로 향한다. 하지만 더 올라봐야 아무 것도 없을 것이 빤한 이 오르기에 무슨 흥이 나겠는가. 뚝틀이도 별로 신이 나질 않는 모양이다. 주인의 심리상태가 전달된 탓일까, 아니면 까닭 없이 가을을 타는 이 주인의 눈에 모든 것이 그냥 그렇게 서글퍼 보여서일까. 하긴 오늘따라 저 곱게 물든 단풍조차 붉은 눈물을 머금은 듯 그렇게만 보인다. 다시 아까 그곳으로 내려와 보지만 구름은 아직 그 자리다. 정확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 하긴 얼마 전에도 이런 경험을 했었다. 황매산. 그날도 날은 맑았는데 하필 내 사진에 담고 싶은 그곳에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져있었다. 몇 시간이나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위치를 옮길 생각 전혀 않고 머물러있는 그 심술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오늘 느낌도 별로 좋지 않다. 뚝틀이 목줄을 풀어주며 다녀오라 손짓하여 보내고, 땅위에 편한 자세로 눕는다. 바닥이 차다. 지난 번 산행 때 잃어버린 보온깔판이 새삼 아쉽다. 편한 자세 편한 마음으로 눈을 구름에 향한다. 위쪽 구름은 남서쪽으로 아래쪽 구름은 북서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위아래 구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자주 본 현상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아래쪽 구름이 땅 쪽을 향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넓게 퍼지며 내려오면서 흩어지는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니 마치 이제까지 2차원적 사고에 머물다 3차원적 사고로 생각의 깊이와 틀이 바뀐 느낌이다. 열심히 예측을 해본다. 지금 움직이는 속도라면 저 구름 덩어리들이 언제쯤 자리를 비켜줄지. 하지만 이내 그런 계산 자체가 무의미함을 깨닫는다. 아래쪽 구름이 퍼져나가며 사라진다고 생각했는데 그 위로부터 계속 새로운 구름이 공급되고 있고, 또 위쪽 구름 역시 꼬리라 생각했던 그 근처에서 계속 새로운 구름이 생겨나고 있다. 단순 3차원적 이동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생성과 소멸의 요인까지 고려되어야하는 이런 구름의 움직임을 내 단순 방법으로 예상하려 했다니. 그날 황매산 구름도 아마 같은 형국이었을 것이다. 지형과 기류의 복잡 미묘한 상호작용, 그 놀랍도록 단순한 결과였던 부동의 위치. 지금 내 꼼짝 않고 누워있는 것도 어쩌면 같은 현상 아닐까. 주인이 걱정되는지 뚝틀이 이 녀석 멀리 가지 못하고 자꾸 옆을 맴돈다. 다가오라 손짓하니 옆으로 와 얌전히 앉으며 한숨까지 내쉰다. 그렇다. 어쩌면 개들이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을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이제 더 이상 필드에 설 수 없게 된 축구선수가 있다 치자. 그의 병상을 찾은 친구의 말.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때 네가 말이야 어쩌고 하며 억장이 무너지는 그때 기억을 또 되살린다면 그 선수 마음이 어떻게 될까. 시간이 지나면 현명해진다. 누구나 다 현명해진다. 누가 일깨워주지 않아도.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과거라는 동영상을 돌리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지금 난 내 동영상을 보고 있다. 후회, 회한, 통한. 자정도 넘기고 두 시도 세 시도 넘기기 일쑤다. 그때 내 그러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에 놓쳐버린 것들을 안타까워하며 주먹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들겨댄다. 내 대부분의 결정과 행동은 구름의 평행이동만을 생각했던 식으로 이차원적이었다. 미련할 정도로 아니 어쩌면 거의 본능적인 이차원적 삶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한계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삶을 엑스축과 와이축으로 나눠본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 쪽, 나쁜 환경에서 자라나 하는 일마다 틀어지는 쪽, 또 좋은 환경에서 자라나지만 하는 일마다 다 뒤틀려버리는 쪽, 그리고 또 별 볼일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지만 행운에 가까울 정도로 무엇인가 이루는 쪽, 이렇게 네 가지. 대다수의 삶은 당연히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다. 환경의 뿌리와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돌연변이에 가깝기에 신문기사꺼리도 되고 또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집념과 회한. 생각을 편히 가져야할 텐데. 끊임없이 내가 나를 타이르는 말이다. 생각을 편히 가져야할 텐데. 삶의 방향에 대한 큰 생각 큰 결정에서는 내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 삼차원적 예측에 생성과 소멸에 까지 생각차원을 높였었노라 하는 것으로나 위안을 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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