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張愛玲의 ‘赤地之戀’

뚝틀이 2012. 12. 30. 22:20

張愛玲(1920-1995), 1954년作.

http://www.my285.com/xdmj/zhangailing/cdzl/009.htm

 

북경대학을 갓 졸업한 刘荃*, 노래하다 떠들다 패기발랄 지칠 줄 모르는 젊은이들, 먼지 자욱이 일으키며 시골길을 달리는 트럭 뒤에 실려 가는 그들은 지금 토지개혁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韩家坨(한가타, 한쟈퉈)라는 마을로 향하는 중. 귀찮게 자꾸 말을 걸어오는 여학생은 상관없고, 刘荃의 마음은 오직 ‘드물게 아름다운’ 黄绢(황견, 후왕지옌)에게로. 하지만 그의 마음속 다짐, ‘엄숙한 공작’을 위해서는 남녀관계는 잊어야.

*이 이름의 한어병음 표기는[liuquan], 하지만 이 한어병음이란 것이 말하자면 일종의 ‘약속 발음기호’일 뿐, 중국화폐 元[yuan, 위엔]을 하나같이[위안]으로 ‘잘못’ 쓰고 있는 것이 내 ‘눈에’ 또 ‘마음 귀’에 거슬려 괴롭기 그지없듯, 여기서도 ‘원 발음에 가깝게 쓰자면 이 [li오우취엔]을 [류취안]으로 표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이 요약에서는 차라리 그냥 간자체 그대로 쓰기로. 毛澤東을 마오쩌뚱이라 읽는 대신 그냥 모택동이라고 읽었던 그 시대가 얼마나 좋았던가. 이 이름을 그대로 우리말로 읽자면 ‘유전’)

 

이들의 ‘사업’이란 대지주의 땅을 빼앗아 소작농들에게 나눠주기. 이론은 ‘간단’한데, 여기 이 마을에서는 좀 문제가. 대주주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 刘荃이 목격하는 현실. 예들 들어 唐占魁(당점괴, 탕짠꿰이). 그 집에서 며칠 지내며 그가 비록 中農의 규모지만 끼니도 때우기 힘든 형편이라는 것을 몸소 목격했고, 또 사람들이 착취는커녕 임금도 후하게 주고, 어려운 일엔 솔선수범 나서는 모범농부라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들은 그 사람. 하지만, 여기 ‘작업자’들은 협조를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부추겨 그를 비판하게 하는 한편, 그에게서도 모진 고문을 통해 거짓자백을 받아내, 봉건지주로 몰고. 그런 식으로 총살형에 처하는 사람들이 무려 열다섯 명. 사형수들의 총격에도 아직 살아서 꿈틀거리는 사람들, 상급자 张励(장려, 짱li)는 그중 몇을 쏘는 시범을 보이고 나머지를 처치하라며 刘荃에게 권총을 건네준다. 망설임 없이 다가가 방아쇠를 당기는 刘荃. 하지만, 찰칵 소리만 날 뿐 총알이 없다.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한 테스트였던 셈. 하지만 刘荃의 속마음은 달랐다. 그들의 고통을 빨리 끝내주고 싶었던 것. 이어 목격하는 임산부에 대한 잔혹한 집단 고문. 가해자는 바로 얼마 전까지도 그의 신세를 졌던 사람들. 그 잔인한 장면, 참 읽기 힘들다. 그 상급자 张励로부터 듣는 소식, 上海로 같이 발령 받았다고. 저녁에 찾아온 黄绢, 자기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쳐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은 그녀의 의도는 자기 주소를 알려주는 것. 현장을 피해 자리를 옮기는 두 사람이 목격하는 또 하나의 잔혹 현장. 마차에 사람을 매달고 끌고 다니며 살점까지 다 뜯어지게 하는... 공포속에 둘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마주 잡고, 이어 서로 부둥켜않고 입을 맞추게 되고..... 기약없는 이별.

 

上海(샹하이)로 향하는 시끄럽기 그지없는 열차 속 두 사람. 张励의 열변. 지금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초과노동 운동은 참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효율성 또한 중요한 관점이니 생각해 볼 문제라 대꾸하는 刘荃. 열차종업원이 실수로 자기 무릎에 뜨거운 물을 쏟자 흥분을 금치 못하는 张励, 너 간첩이지,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흥분을 갈아 앉히라며 그를 간호실로 보내는 刘荃. 응급치료 받고 돌아온 张励의 투덜거림. 초과근무는 무슨 얼어 죽을..... 피곤해서 사고 치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상급자에게는 어떤 대꾸도 실수가 될 수 있음을 여러 번 경험한 刘荃는 잠든 척하며 대꾸를 않고.

 

上海 도착. <해방일보> 사무실, 다가오는 간부 戈珊(과산, 꺼샨)의 ‘미모’에 놀라는 刘荃. 그녀로부터 사진 수정 작업 지시를 내리는 그녀. 그녀가 내미는 것은 반라의 독일여인이 나무에 묶여있고 그 옆에 남자가 서있는 사진, 여자의 가슴을 까맣게 칠해 잘려나간 듯 만들고, 남자에게는 미군 군복을 입히라는 지시. 한국전쟁(중국에서는 抗美援朝전쟁이라고 표현). 에서의 미군만행을 고발하기 위해서라고. 난감해하는 刘荃에게 적당히 해도 신문 인쇄 질이 워낙 나쁘니 독자들은 못 알아볼 것이라 말하는 그녀.

 

잠깐 위층에 갔다 온 사이에 방에 있는 책상이며 집기가 다 사라지고, 낡은 책상 하나 덜렁 그 자리에 놓여있기에, 어떻게 된 일인가 알아보니, 상관의 부인이 자기 집으로 가져간 것. 찾아온 刘荃에게 들려주는, 共産이란 모두의 공용재산을 의미하므로 내 것 네 것 따지는 것은 옳지 않은 사상이라는 훈계. 추운 겨울. 전의 시골 그 마을에서는 ‘대단한 역할’을 하던 张励도, 여기 이 대도시 조직에서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일 뿐. 추위를 견딜 수 없어 결국은 붉은 줄이 죽죽 그어진 비밀문건들을 난로 속으로, 그런 서류라면 이 사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

 

아직 젊다는 이유로, 아직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허가를 받지 못하고, 그 사이에 여자를 고위간부에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혹 자기와 黄绢도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는 刘荃. 하지만, 설사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더라도 그것을 알 수는 없는 일. 사상이 의심 받을까봐 또 철저한 편지 검열이 겁나서, 자주 편지 교환도 못하고, 또 틀에 박힌 안부인사 그 정도 내용밖에는 쓸 수 없기 때문.

 

이런 식으로 작가 張愛玲(장애령, 짱아일링, 신식교육을 받은 엄마가 Eileen이라 지어준 이름의 중국어 표기)의 체제조롱은 종횡무진. 아예 시대조류까지. 예를 들어, 너도나도 儒将(문과 무를 겸비한 사람)입네 하는 모습도, 자신이 상관을 존경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처럼 별 것 아닌 글을 발표하는 그런 부류가 아니라는 그런 식으로. 他们并没有作了歪诗送到报上去发表,刘荃认为这也是他们的好处. 물론 그들도 지위가 좀 더 높아지면 달라질지 그것은 모르겠다는 꼬리표를 붙여가면서.

 

시가행진, 공산당이 들어서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바로 이 시가행진. 트루먼 대통령으로 분장한 사람이 죄수 수레에 묶여 지나가는 모습. 요즘은 온통 조선반도에서 미제를 몰아내는 그것이 지상과제다. 그렇게 미국을 혐오하면서 저 디즈니랜드 장식품들은 무엇이지? 쏟아지는 비, ‘阿Q正傳’의 모습을 연상하는 刘荃. 새벽부터 동원되어 나오고, 교통수단도 없이 시내 반을 또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불평.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刘荃, 中国人反正无论做一件什么事,结果总是变成大家吃一顿. 중국인들은 무엇을 하든 어쨌든 나중에 다 모여서 함께 먹는 것으로 끝낸단 말이지.

 

들려오는 옆 부인의 하소연. 자기가 그렇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국가에서 빼앗아가더니, 장티푸스라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그래서 온갖 정성 다해서 포동포동하게 회복시켜놨더니, 다시 데려가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폐병이라고 다시 돌려보내고..... 생각에 잠기는 刘荃, 전에 韩家坨 그 마을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반동적 발언, 거기였다면 당장 끌려가 자아비판을 했어야 했을 텐데. 이제 이 사람들에게도 재산분배 작업이 목전의 현실로 닥쳐온다면, 그때는?

자나 깨나 무엇을 보나 무엇을 듣나 刘荃의 머릿속에는 그저 黄绢에 대한 생각뿐. 우리도 혹 저 꼴 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또는 우리도 언젠가는 저렇게 잘 살 수 있겠지.

그건 그렇고, 오늘 이 시가행진 마지막 비에 흠뻑 젖어 으슬으슬 떨리는 刘荃, 혹 폐렴 아닐까? 진찰실 앞의 긴 줄, 아직 그 먼 차례 한참 기다리는데 숨이 차 달려오는 戈珊, 새치기? 아니, 그녀를 대신 자리를 맡고 서있던 청년은 바로 문 앞에, 자신의 ‘정확한 시간 지키기’를 자랑하며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

 

(끊임없이 이어지는 체제조롱, 이제 이하에선 그런 거 생략, love story 위주로)

단추를 채우며 나오는 그녀, 잘 가꾸어진 몸매. 의 모습, 풍만한 가슴. 刘荃에게 다가와 속삭이는 그녀, 작업이 있으니, 저녁 때 사무실로 오라고.

 

戈珊, <해방일보>의 편집장, 그녀는 지금 젊은 청년 陸志豪(육지호, liu즈하오)와 동거 중, 아들이 폐병환자를 집으로 불러들인 것이 못마땅 그의 어머니, 하지만 또 누가 아나, ‘고위 당 간부’인 그녀 덕에 ‘攀龙附凤(용을 타고 봉황에 다가감)’ 할 수 있을지. 그녀의 입장에서는 비록 志豪가 자기 타입은 아니지만, ‘수면 치료법’이나 ‘운동 치료법’이니 고작 그런 것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형편이라, 志豪가 사방에서 빚을 얻어가며 조달해오는 수입약이 필요해.

 

그렇지 않아도 夜归人(밤의 부인)으로 소문 난 ‘며느리 to be'가 오늘은 또 웬 젊은 청년 刘荃을 집으로 데려오니, 편할 수는 없는 일. 접시가 날아다니는 살벌한 분위기. 抗美援朝의 팸플릿 작업을 한다며, 이 둘은 ’아가씨, 戈小姐‘의 방으로. 한참 ‘그런 나이’인 刘荃은 자기도 모르게 戈珊의 손을 잡게 되고, 이어 남들의 눈은 아랑곳없이, 마치 융단이 깔린 신비한 상자 속에서 험한 파도 바다위에서 표류하듯이.... 在一只丝绒垫底的神奇的箱子里,在波涛险恶的海洋上飘流着.

 

戈珊에 빠지는 刘荃.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몸’에. 이사 갔다며 알려주는 그녀의 새 주소,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스스로에의 타이름에도, 마음속으로 한없이 미안한 黄绢에 대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탐닉의 세계로. 벼룩이 너무 많으면 가렵지 않고 빚이 너무 많으면 걱정도 안 된다고 하던가. 蚤多不痒,债多不愁. 그래도 바탕은 어쩔 수 없는지, 戈珊의 ‘여러 다리 걸치기’는 그치지 않고. ‘의부증’ 또 ‘의처증’ 수준까지 격해지는 刘荃과 戈珊의 질투극. 戈珊과의 관계를 조심하라고 충고하는 张励, 그녀의 독한 마음으로 꼭 보복을 받게 되어있다고.

그러던 어느 날, 文匯報 기자가 찾는다며 刘荃에게 전화기를 건네주는 戈珊. 그 기자는 다름 아닌 黄绢, 연락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上海로 발령 받았다고.

 

재회. 하지만 영화관에서도 전람회에서도 서먹서먹하기만. 자신은 이미 더럽혀진 몸이라 생각하는 刘荃, 다가오는 그녀에게 자꾸 거리를 두려하지만, 어느 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사랑고백. 공원 산책 중 갑자기 ‘튀어나온’ 戈珊, 刘荃에 대한 그녀의 과장된 친밀 행동, 난처해진 그, 戈珊의 집을 찾아가 결별을 선언하는 刘荃. 그래? 그녀의 반응.

 

얼마 후 上海에까지 들이닥친 三反운동. 문란한 사생활을 성토당하는 戈珊, 자신의 상대는 张励이었다 고백하는 그녀. 자신이 지목될까 내심 불안해하다 놀라는 刘荃, 戈珊와의 관계를 경고하던 바로 그 장본인이? 수감되어 비판받는 张励, 하지만 철저한 ‘모범적 자기반성’으로 오히려 승진까지 되는 그. (그 이후 이어지는 三反운동의 비합리성, 모순된 인간관계, 처리과정에서의 비리와 협잡..... 하지만 여기에서 그런 내용을 반복할 마음은 없고.)

 

집에서 체포되어 끌려가는 刘荃, 그 직후 거기에 도착하는 黄绢, 그가 끌려갔다는 것을 张励로부터 듣는 그녀, 무슨 일 때문이냐 묻는 그녀, 묘한 웃음을 짓는 张励, 韩家坨에서 있었던 음흉한 신체접촉 그 기억에 떠는 黄绢. 급한 마음에 戈珊을 찾아가는 그녀. 자신의 ‘사유재산’인 刘荃 문제에 黄绢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불쾌한 戈珊. 그녀를 ‘실력자’ 申凯夫(신개부, 션카이fu)에게 보내는 戈珊.

 

며칠 후 만난 黄绢, 그녀의 말, 이제 刘荃이 총살당할 것 같다고. 그 동안의 경과를 듣고 내뱉는 戈珊의 말. 당신 黄绢이 刘荃을 죽이는 것. 놀라는 그녀에게 들려주는 ‘설명’은, 당신이 申凯夫의 ‘요구’를 거절했기에 일이 이렇게 커진 것. (사실 戈珊이 그녀를 申凯夫에게 보냈던 것은 이런 ‘호색한’ 그의 사람됨을 알고 있기에 그랬던 것)

 

감옥. 계속 들려오는 구호, ‘자백이 살 길이요, 저항은 죽는 길이라. 坦白是生路,抗拒是死路.’ 하지만, 刘荃은 자술서를 거부. 설령 거짓자백을 하더라도 ‘돌려줄 돈’을 마련할 길이 없으니, 다른 길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면회. 면회가 불가능한 이곳에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黄绢, 어떻게 여기 올 수 있었냐고 묻는 그에게의 대답, 戈珊이 도와줬다고. (뭐, 그녀 때문에 여기 들어와 있는데, 그녀가 도와줬다고, 속으로 놀라는 刘荃). 하지만 그런 내색은 않고, 둘은 서로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도 하고....

면회가 끝나고 돌아갈 때 그녀가 들려주는 말, ‘영원히 잊지 않겠다.’

 

다음 날 풀려나는 刘荃. 거 봐. 그렇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는데. 한시라도 빨리 그녀를 안심시키려, 그녀에게로. 하지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그녀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고. 결국 戈珊를 찾는 그. 黄绢은 申凯夫의 내연녀가 되었다고. 뭐?! 그녀를 포기하라는 戈珊, 실력자 申凯夫가 무너질 리 없으니. 아니면 공산당이 무너지든지, 문장을 잇는 刘荃. 뭐? 너에게도 变天思想(왕조가 바뀌는 것을 의미)이 있었어? 웃어넘기는 戈珊.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좀 싱겁기까지 하다. 刘荃은 한국전쟁에 중공군으로 자원하고, 부상당하고, 포로가 되고, 반공포로로 분리되어 제주도에 수용되지만, 마지막 순간에 대륙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택한다. 黄绢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아니라는 작가의 주장이 곁들여지며, 막이 내린다.

 

좀 실망스럽다. 아니 아주 실망이 아주 크다. 나에게 ‘입력’되기로는 魯迅이나 巴金보다도 먼저였던 작가였고, 소설보다도 더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 그것이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녀의 ‘존재’는 나에게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 지금도 내 책꽂이에 그녀의 평전이 꽂혀있는데.... 作家 張愛玲의 작품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허전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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