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공장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들고 가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임산부. 그녀를 따라오는 검은 색 지프. ‘어르신’의 심부름으로 왔다며 동행을 요구하는 그들. 예기치 않은 사고, 그 중 한 사람 강용수를 알아보는 그녀, 그에게 돌에 짓이겨져 살해당하는 그녀, 배미란. 엉뚱하게도 그녀의 남편이 살해범으로 몰려 형을 받고, 또 진실 증언을 할 만한 목격자들은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고,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남겨놓은 딸은 신변안전을 위해 보육원에 맡겨지고....
장성한 딸 손김이. 내부자 고발이라는 ‘치기’ 끝에 회사에서 쫓겨나 백수로 지내는 그녀가 사귀는 사람은 ‘가지’라는 별명의 교군의 요리사. 그녀는 교군의 문서와 ‘서태후’ 이덕은의 채록본 <이딴 얘기 받아 적어서 뭐하려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알아나가게 된다.
“교군은 하나의 왕국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단출한 하숙집이었고 그 다음에는 고급 요릿집이었다가 지금은 회원제 게스트하우스가 되었다. … 마당이 넓은 고택인 교군은 해방 전부터 가마꾼들이 가마를 세워놓고… 대문 옆에 轎軍이라는 한자로 새긴 석축이 있다.”
이덕은은 교군 주인의 두 번째 부인의 몸종으로 들어왔다가 '치명적으로 매운 맛'의 비밀로 마님 사후 그 주인 자리를 꿰찬 사람이고, 배미란은 그 두 번째 부인의 딸. 어느 날 그녀가 손김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그 ‘바보’는 네 아버지가 아니다.
원래 배미란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때 히트가수의 꿈을 꾸었지만 그 빼어난 미모 ‘덕’에 기획사 사장에 이어 ‘김총재’와 ‘이회장’의 성노리개로 전락했다가 임신(소설을 읽는 내내, 물론 아들이 딸로 바뀌고 ‘김총재’가 ‘이회장’로 희석되긴 하였지만, ‘정인숙 사건’이 머릿속을 어른거린다.), 결혼을 해야 집안에 다시 들이겠다는 아버지에의 눈가림으로 지적장애인 孫씨를 끌고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金氏인지 李氏인지도 분명치 않다고 장난삼아 부르던 이름이 어쩌다 호적에까지 오르게 되어 孫金李가 된 것.
사실, 이 ‘살인’과 연관된 부분은 이 소설의 흐름을 잡는 ‘이정표’일 뿐 이야기는 각기 다른 3대의 여자들의 기구한 삶의 모습 또 제목에 있듯 ‘맛’에 할애된다. 소설의 ‘맛’을 더해주는 것은 각 章 시작부분에 나오는 매운 맛의 기원, 요리사의 자세, 음식을 즐기는 법 등, <이딴 얘기 받아 적어서 뭐하려고>의 ‘인용구’들.
하지만, 어쩌랴. 이런 ‘현대소설’을 읽고 난 후에 언제나 찾아드는 후회. 이런 ‘통속적 이야기의 통조림’에 내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는 느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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