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John Theodore Merz의 ‘19세기 유럽 사상사’

뚝틀이 2013. 4. 12. 17:22

A history of European thought in the nineteenth century (1903)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과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활동한 저자. 그가 말하는 19세기의 철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사상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이것이 내 궁금증이었고, 그 호기심에 나온 지 110년이 된 이 책을 손에 들었다. 하지만, 과학과 철학의 통섭 성격의 내용 그런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의 표현으로는 ‘과학정신의 전략’을 정리했다지만, 그저 평범한 표현으로 ‘19세기의 프랑스 독일 영국 과학사의 흐름’ 정도의 내용이다.

 

르네상스의 15세기, 종교개혁의 16세기, 철학의 18세기에 이어지는 과학의 19세기. 과학이란 것이 그전까지 ‘잡다한 백과사전식’ 지식의 형태로만 존재할 뿐이었던 천체물리학이 수학이라는 표현방법을 빌어 물리학의 형태를 갖추고 또 화학과 생물학이라는 분야가 태동할 당시의 이야기다. 흥미로운 내용의 영독불 세 나라의 분위기 비교. 프랑스에서는 당시 문학인들도 과학을 소재로 쓸 만큼 ‘국민’들 사이에 수학이 일종의 유행이었고, 그 프랑스 아카데미라는 일종의 학술원 소속 지식인들이 ‘과학의 체계화’와 보편화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는데, 독일에는 그런 ‘중심’이 없는 반면 각 공국들이 경쟁적으로 육성한 대학들이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과학 戰士’들을 육성했지만, 뉴턴이라는 巨星까지 배출한 영국은 콧대 높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들의 오만함과 사교장 성격에 지나지 않는 ‘왕립 학술원’의 ‘방해’로 과학자들이 설 곳이 없었다는 저자의 설명. 그래서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중심의 과학자들이 프랑스와 교류하고, 때로는 10년 넘게 사장되어 있던 런던 쪽의 과학자들의 논문을 세상으로 이끌어낸 것도 프랑스 인들이고, 독일의 자기 나라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재야 과학자’들도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들과 교류하고.... 그렇다고, 프랑스 쪽이 완전 ‘개방적’이었던 것도 아니라는 예로, 어느 지방에 떨어진 운석에 대한 보고서를 보낸 시장을 ‘군중들의 우매함을 일깨우지 못하고 오히려....’ 등으로 매도하는.... 원래의 기대는 빗나갔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어차피 흘러간 이야기란 재미있는 것 아닌가. 물론, 철학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철학이 과학을 선도하며 방향을 제시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놀라운 것은 본문과 거의 같은 분량의 주석. 한 마디로 방대한 자료다. 30년 동안 쓴 내용이라니 오죽하겠는가. 하긴, 이것은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시간 날 때, 본문보다는 주석 쪽에 신경을 쓰며 다시 차분히 들여다볼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