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그림을 처음 만난 곳은 대학 졸업반 때 찾아갔던 프라도 박물관(Museo del Prado). 그때 그의 그림 그 잔인한 장면들에서 받았던 충격.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Black Painting. 지금도 프라도 박물관 하면 벨라스케스의 ‘아름다움’과 고야의 ‘무서움’이 우선 떠오르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고야의 畵集, ‘I, Goya'를 다시 꺼내든다. 한 사람 특히 한 예술가의 애환이 서린 일대기를 그의 그림을 곁들여 읽는다는 것은, ‘몰입의 시간’이라고나 할까, 즐거운 일. 이번에는 내 나름대로 reshuffling.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 – 1828)
14살 때 화가 José Luzán 밑으로 들어가 미술수업을 받고, 이어 당대의 유명화가 Anton Raphael Mengs에게 갔지만 의견충돌로 쫓겨나고, 그 후 17살 또 20살 때 마드리드의 왕립 미술학교에 지원하지만 역시 퇴짜. 이 어려운 시기에도 그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사람은 그의 어렸을 적 친구 Martin Zapater.(그에 대한 史料는 주로 이 두 친구 사이의 서신교환 내용으로부터.) 25살 때 이탈리아 Parma로 가 그곳 역사화 대회에 참가해 2위. 그리고 나서야 Zaragoza 성당 ‘구석’에 프레스코 작업을 맡을 수 있었고, 그 후 궁정화가로 들어가 벽화의 바탕그림을 그리는 일 담당. 당시 예술가는 귀족들의 하인보다도 못한 존재였고, 더구나 채색도 아닌 바탕그림 작업은 그중에서도 하급으로 인식되었지만, 그는 이를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로 여기고 최선을 다함. 당시까지 그의 그림 스타일.
The Parasol, 1777
드디어 궁정 실력가의 누이동생과 일종의 정략결혼에 성공, 왕립미술아카데미 회원이 됨.
아카데미 지원 때 제출한 그림. 이렇게 ‘아부하는 마음으로’ 정통 화법을 따라 그린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Cristo crucificado, 1780
자부심에 찬 궁정화가 시절의 모습.
Self-portrait in the Studio, 1790
명성이 꼭 좋은 것은 아닌 법. 철저히 ‘규범’에 따라 그려야하는 괴로운 생활, 더구나 처남의 간섭은....
심리적 압박의 결과였을까, 46살 때 이유 모를 중병을 앓고 그 후유증으로 귀머거리가 됨. 하지만, 궁정을 떠날 수 있는 좋은 이유.
‘교만의 상징’이었던 그, 내성적으로 변하고, Fantasy and Invention이라는 실험에 들어가는데, 이때부터 그의 화풍이 변하기 시작.
Yard with Lunatics 1794
사실, 이 그림 그리던 당시 고야 자신도 physicalland mental breakdown으로....
53세 때(1799) 변덕(Caprichos)라 제목을 부친 80장의 그림 발표. 이 프린트는 ‘화장품 가게’에서 팔았는데, 한 권 가격이 금1온스.
The Sleep of Reason Produces Monsters Until Death
Charles4세의 가족. 아름답게 꾸미려 아부하는 대신 사실적으로 그림.
Portrait of the Family of Charles IV, 1800-1801
평론가들은 성의가 들어있지 않고(세밀한 붓질이 없다는 뜻), 또 꼭 복권당첨 된 가게 주인 식구들처럼 ‘품위’없게... 혹평
하지만 당사자인 Charles4세는 아주 흡족해했다고....
고야가 흠모했던 여인도 있었으니....
Portrait of Doña Isabel de Porcel, 1805
어쩌면 이 두 그림이 고야의 가장 유명한 그림일 수도. ‘옷 벗은 마야’와 ‘옷 입은 마야’. 비유도 아니고 신화에서 따온 것도 아닌, ‘the first totally profane life-size female nude in Western art’란 혹평. 특히 가톨릭을 중심으로.... 일설에 의하면 이 모델은 당시 총리의 연인이었다고. (그런데 그 총리는 왕비와 그렇고 그런 사이였고... 당시 유럽 귀족사회는... 그런데 한편에서는 종교재판에 마녀사냥에...)
La maja desnuda, 1800
La maja vestida, 1803
결국 1808년에 Ferdinand 7세가 고야의 전 재산 압류. 이 ‘음란물’은 1813년에 최종 몰수하고, 1836년에 San Fernando 미술아카데미로.
1808년 프랑스의 침공으로 시작된 Peninsular War(1808–1814).
The Shootings of May Third 1808(전쟁 발발일), 1814
1810년에 전쟁의 참상을 그린 연작물 The Disasters of War 출간.
They do not want to Bury them and keep quiet
그의 간절한 소망, 그리스 신화의 거인이라도 나타나 제발 스페인을 지켜주기를...
The Colossus, 1808-12
손자 사랑.
Portrait of Mariano Goya, the Artist's Grandson 1812-1814
대장간 모습.
The Forge 1817
73세, ‘세상’을 벗어나려 마드리드 교외 ‘귀머거리의 집, Quinta del Sordo’(고야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원래..)로 이사.
여기에서 그는 캔버스가 아니라 벽에다 직접 14편(1819-1823)을 그렸는데, 이들이 ‘Black Paintings’로 불림.
(이제 곧 끔찍한 그림이 나오니, 마음이 약한 분은 여기서 나가시기 바랍니다!)
A Pilgramige To San Isido 1820-23
Saturn Devouring His Son, c. 1819–1823
이 힘든 시기 그를 도와주었던 의사와 함께.
Self-portrait with Dr Arrieta, 1820
이 작업하다 발견한 내 마음에 쏙 드는 그림 하나.
The Dog, 1823
그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권력으로부터 위협을 느껴 1824년 프랑스로 넘어가 보르도와 파리에서 생활.
자신의 모습
Self-Portrait Aged 78, 1824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옆을 지키며 간호해 준 여인(혹은 그녀의 딸이라는 설도...)의 그림
The Milkmaid of Bordeaux, 1826
1828년, 82세의 나이로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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