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Peter Murray, Linda Murray의 ‘The Art of the Renaissance’

뚝틀이 2013. 4. 22. 10:41

르네상스라는 개념을 이해하기가 하도 힘들어 내 나름대로의 기억 포인트를 만든 적이 있다.

- 시기는 대충 우리 조선의 세종대왕 때부터, 연산군 때 절정기.

- 遠因은 십자군 전쟁 이후 ‘우물 안 개구리’ 귀족층의 몰락과 아랍권과의 새로운 무역거점으로 떠오른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경제력.

- 近因은 이 도시국가들 신흥세력 사이의 경쟁심. 그로 인한 ‘수요와 공급’의 역전. 예술인들의 지위가 ‘하층민’에서 존경받는 위치로.

- 폭발력은 바뀐 위치 예술인들의 ‘연구하는’ 자세와 이탈리아 민족의 ‘예술혼’이 천 년 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자부심의 상승작용.

 

그림을 그리는 畵家들도 존경스럽지만 이렇게 그들의 작품을 찾아내가며 그 세계의 흐름을 정리하는 美術史家 역시 참 존경스러운 존재다. 야구선수와 야구해설가의 관계라고나 할까? 오늘의 경기가 아니라 야구역사를 풀어나가는 해설가 말이다. ‘그냥 그림책’이 아니다. ‘나무’를 들여다보며 그려나가는 ‘르네상스 풍경도’다. 우리에게 익숙히 알려진 3대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고, 이 책의 대부분은 그 전성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다.

 

르네상스는 미술이라는 좁은 분야에 국한된 개념보다는 ‘인문주의의 부활’이라는 넓은 의미로 이해할 것. 그전에는 유럽 어느 곳에서도 라틴어가 식자층의 공용어로 신학문을 대변하고 성직자의 신학연구의 기본이었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피렌체에서 라틴어와는 상관없는 미술과 조각 또 건축 분야에 새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탈리아 방방곡곡으로 번지고, 이어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으로 확산되어....

 

작가는 대표적 그림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우선 기독교 일색의 종교적 그림으로부터 벗어나 신화나 역사적 사건 이미지 묘사에 담기는 상상력, 그 과정에서 점점 구체화되어가는 원근법과 명암기법 또 해부학 지식의 적용, 대칭구조로부터의 탈피 등, 그 변천과정을 설명해나간다. 책 후반부에는 서적삽화와 목판화 또 당시의 인쇄술과 조판술에 대해서도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책을 읽는 동안, 일본에서 나온 미술서적들을 찾아 광화문 청계천 책방을 뒤지곤 하던 옛 시절 생각이 난다. 그땐 美學이니 美術史니 하는 것들이 저 먼 세계의 이야기 같았고,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는 잘 안 돼도 그림보다는 그 해설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멋진 풀이를 해주는 그 해설가라는 존재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 후 유학시절, 파산한 출판사들이 쏟아내는 화집 모으기. 책방 앞 진열대 또 벼룩시장... 지금 생각하면 헐값이지만, 그 당시 주머니 사정은.... 더구나 새 책방에서야 살 수 있는 무리요 벨라스케스 또 뒤러의 그림책을 그냥 만지작거리기만 할 때 내 자신의 초라함이....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원하는 그림 무엇이나 찾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데, 물론 이 책의 저자 부부는 직업 상 그렇다 하더라도, ‘새’ 작가를 발굴해내고, 그 위치와 의미를 정리해주는 이들은 나에겐 '무조건' 위대한 사람들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나무’들을 짚어가며 들려주는 ‘숲’ 해설을 기대했지만, 하도 자주 ‘길을 잃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다시 꺼내 읽어보며 ‘줄거리’를 잃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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