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알브레히트 뒤러

뚝틀이 2013. 4. 29. 02:30

Albrecht Dürer(1471- 1528)

짐승과 다름없었던 암흑의 세기들을 거치다 ‘갑자기’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된 르네상스 시대,

어중이떠중이가 大家들의 흉내를 내던 ‘과도기’를 거쳐 나타난 낭만주의 또 인상파 화가들의 고뇌 섞인 ‘아름다움의 재발견’ 시대,

그 후 입체파니 추상파니 초현실주의니 하는 ‘장난기어린’ 시대.

무엇인가 찾아헤매는 사람들이 사람의 호기심을 일으키고, 이끌고, 반하게 하고, 결국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

그 '비가역적 '반복 과정' 문화 변천 모습에서 문명의 알레고리를 느낀다.

 

큰 틀에서 보자면 산업이요 경제요 하는 '생존경쟁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피와 땀’의 匠人 시대에서, 量産 시대를 넘어, ‘머리’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

예전에는 잘 만들고 힘 있는 나라들이 강국이었는데, 요즘은 ‘한국이나 중국조차도’ 할 수 있는 ‘그런 일’보다는

‘머리 잘 굴리고 돈 잘 굴리는’ 아이디어, 아니 '선천성'이 풍부한 나라들의 세상.

나라가 아닌 개인의 삶 역시 그 궤적을 따르는 것 아닐까?

 

아련한 추억. 젊은 시절 반년이란 당시로서는 ‘긴’ 시간을 보냈던 뉘른베르크Nürnberg(영어로는 Nuremberg).

그곳 곳곳 서점을 상점을 장식한, 그리고 또 물론 뒤러하우스를 가득 채운, 뒤러Albrecht Dürer의 그림들.

내게는 화가라기보다는 ‘성실’과 ‘집념’의 표상으로 느껴지던 匠人 그 예술인.

‘예술의 변방’이었던 뉘른베르크에서 당당히 ‘르네상스 예술가’의 대열에 이름을 올린 화가요, 판화가요, 수학자요, 이론가 그.

 

오늘 지금 우리의 이 세상에도 그런 ‘뒤러’가 설 자리가 있기는 한 것일까?

  

그의 그림에 대한 연구로 표본적인 책은 Erwin Panofsky의 ‘The Life and Art of Albrecht Dürer’라는데...

읽고 싶었지만, 이 두 권짜리 ‘방대한’ 책을 읽은 사람들의 ‘겁주는’ 독후감에 질려 엄두도 못 냈다.

Wiki를 비롯해 사방에 돌아다니는 ‘그림해설’에서도 그 ‘다빈치 코드’다운 신비한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우선, ‘그 유명한’ 동판화, ‘기사와 죽음과 악마부터

 

왼쪽 아래 귀퉁이에

그의 낙관에 해당하는 'AD 마크'와 함께

제작년도인 1513이 쓰여있다.

15는 타로카드에서 ‘악마’를 뜻하고

13은 죽음’을 뜻하는 숫자.

그렇다면 ‘기사’는?

 

위에 언급한 책에 의하면,

1513 앞에 있는 글자 S가 그 열쇠란다.

 

S는 그리스 글자로 Σ인데,

Σ는 200을 의미하니,

Σ를 뺀 1513, 즉 1313이 되는데,

이 해에 Templar‘기사’단이 해체되었다고.

 

즉, 이 작은 판이 제목판인 셈이다.

그것으로 끝? 천만에.

 

프랑스 왕 Philip IV세는

Templar기사단의 막대한 부가 탐이 났고

그래서 교황 Clement V세의 묵인아래

거짓 혐의를 씌워

그 기사단 단장인 Jacques de Molay를

그를 화형에 처했는데,

그 단장의 저주가 통했는지

그 왕도 그 교황도 같은 해에 사망한 사건

있었는데,

 

Knight, Death, and the Devil, 1513

 

200년 뒤, 뒤러가 그리는 ‘진상’은...

가운데에 위치한 기사가 Jacques de Molay, 그 왼쪽의 死神은 Philip4세, 오른쪽의 악마는 교황 Clement V세.             

JACOB DE MOLAY - (10+1+3+15+2) + (4+5) + (13+15+12+1+25) = 106

PAPA CLEMENT - (16+1+16+1) + (3+12+5+13+5+14+20) = 106

PHILIP LE BEL - (16+8+9+12+9+16) = (12+5) = (2+5+12) = 106 

즉, 세 사람은 같은 운명.

그 뒤로 이어지는 설명...... Gematria에 따르면 이 106은 NVN.....  그래서, 15에 O 또 13에 N을 대입하면

S1513ADSONAD, 그 순서를 뒤집은 DANOS는 그리스어로 태우다는 의미......

결국, 뒤러는 이 그림을 통해 억울하게 화형당한 Jacques de Molay를 기리고 있는 것이라고.

    

 

이제 하나 더, 그의 ‘가장 유명한’ 동판화 'Melencolia I'

 

팔을 괴고 앉아

우울한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는

날개 달린 소녀의 모습.

60cmx70cm 크기 이 그림에

뭐가 그리 ‘재미’있을까. 

 

우선 상징성들.

앞에 놓인 공구들은 목수 또는 예술가를,

손에 들고 있는 콤파스는 수학을,

개는 충성을,

열쇠는 권력을,

지갑은 富를,

박쥐는 어둠을,

화관은 정신고양을,

유성은 우울의 神인 새턴의 이름을 딴 토성을....

 

그런데, 여기에는 식의

제작년도 표시 대신에 右上귀의 숫자판

  

     여기 아랫부분에 1514.   

 

 

                                             Melencolia I, 1514

 

이 마방진이 재미있다. 

가로의 합, 세로의 합, X선 상의 합, 모두 34인 것은 물론,

귀퉁이의 합 16+13+4+1도, 내부의 합 10+11+6+7도, 중간에 있는 가장자리 수의 합 5+8+9+12, 3+2+15+14도 역시 모두 34다.

당시, 부적을 하는 사람들은 이 ‘마법의 사각형’이 만들어내는 숫자 34를 막강 주피터 神의 상징으로 생각했으니,

뒤러가 이 그림에서 뜻하는 것은 아마도 이 주피터가 새턴(우울)을 이겨달라는 그런 것 아닐까...

(그런데 왜 빛이 오는 방향과 그림자의 방향이 다를까. 뒤러가 ‘잘못’ 그리지는 않았을 텐데... 거기에 대해서도 온갖 그럴듯한 이야기들이...)

  

 

물론 그가 이런 ‘다빈치 코드’ 식의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 손’ 역시 그의 그림이고, 

                                                                                     

                                                                                          Betende Hände(Praying hands), circa 1508

 

내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이 토끼와 올빼미 그림 역시 그의 작품.

    

                         A Young Hare. 1502                                                      The Little Owl, 1508

 

   

헝가리에서 금 세공사를 하던 그의 아버지,

뉘른베르크로 이주해온 그,

초기의 일은 문짝 만들기Türer,

그래서 사람들이 그 집을 뒤러Dürer라 불렀고,

(당시 평민들은 姓이 없었다. 대신 직업이...)

 

알브레히트Albrecht가 그 집에서 태어난 것은 1471년.

아버지는 당연히 그의 금 세공기술을 물려주려했지만,

아들의 재능은 그림 쪽에.

 

열세 살 소년이 그린 이 자화상.

  

                

 

 

 

 

 

 

 

Self-Portrait at 13, 1484

 

 

 

 

그 후 그의 삶 과정을 옮겨놓을 마음은 없고, 그저 그의 그림들 위주로 살펴보기로.

 

 

 

1494년, 결혼.

그해

그 지방에 전염병 창궐.

 

부인을 고향에 놔둔 채

홀로  여행길에 나선

20대 초반 청년.

 

그의 눈에 들어온 ‘다른 도시’의 모습

 

 

 

         

 

 

 

 

 

 

 

 

 

Courtyard of the

Former Castle

in Innsbruck,

1494

 

 

 

 

 

 

 

 

 

 

 그리고,   

또 다른 '풍광'.  

 

 

 

 

 

 

 

 

 

 

 

 

View of the Arco Valley

 in the Tyrol, 1495

 

 

내친 김에 아예 베니스까지 가, 거기에서 이탈리아 거장들의 그림 ‘맛’을 보고....

     문화적 충격. 예술인의 자세와 그런 예술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1495년, 고향으로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의 공방을 열고, 또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갖추려 수학, 기하학, 라틴어, 인문학에 매달려...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아래 놓여있던 그의 그림 소재로 압도적인 것은 당연히 성경의 내용.

                                                            1498년, 금 세공기술의 정밀성을 살린 기법으로 묵시록Apocalypse 연작 16편 제작.

                                                                                                        그중 하나, '용과 싸우는 대천사 미카엘'.

      

               Holy Family with the three hares, 1496                                  St. Michael Fighting the Dragon, 1498

   

 

그의 자상화. 

 

                         

이 자화상에서의

의상 자세 표정 등으로

허영에 들뜬 사람이라는,

그림 외적인 관점에서 혹평을 받음.

 

 

 

 

 

 

 

 

 

 

 

 

Self-Portraits, 1498

 

 

 

 

1502년, 아버지를 잃음.

 

계속, 측량도구들을 사용해 원근법과 인체비례에 대해 집중적 연구. 그의 ‘새’ 동판 조각칼을 사용한 작품 

                       

                      Head of Christ, 1503                                                             Adam and Eve, 1504

 

                     Portrait of a Young Venetian Woman. 1505

 

동판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 철저한 도안 사전 연습.

앞의 ‘기도하는 손’도 마찬가지였고, 또 이 그림들 또한....

 

 

      그의 동판화 기법에서는 '원본'이 사라지므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펜화들은 사전 연습이었다는 이야기.

 

 

                           Study of Hands, 1506                                                              Feet of an apostle, 1508

    

 

1506년 두 번째 베니스 여행. 이미 거기에도 그의 이름은 알려지고...

"In Venice, I am treated as a nobleman. . . . Here I really am somebody, whereas at home I am just a hack."

하지만 ‘붙잡는 그들을 뿌리치고’ 그 이듬해 1년 만에 돌아옴.

그 후 라파엘 벨리니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과 계속 서신교환을 통해 친분관계 유지.

 

상징성에 대한 글이 많은 또 하나의 동판화. '서재의 聖제롬'

    

                   St Jerome in His Study, 1511

 

   

1512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가 후원자가 됨.

 

 

 

황제의 죽음 직전에 그린 초상화,

그의 장례식에 이 초상화를 갖고 갔는데,

그의 딸이 시큰둥해하며 받지 않아,

화가 난 그,

이 그림을 

흰 옷 몇 벌과 교환했다고.

 

 

 

 

 

 

 

Portrait of Maximilian I, 1519

    

 

 

 

 

1513년, 어머니 잃음.

           위에서 본 ‘멜랑콜리아’와 ‘기사, 죽음, 악마’는 그 슬픔 가운데 그린 그림들.

                                                              

                                                                                         Portrait of Mother, 1514

 

믿거나 말거나, 리스본에서 보내온 편지에 들어있는 묘사대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코뿔소를 그리고.

                                  rhinoceros, 1515

                                                                                   틈날 때마다 그가 즐겨 그렸던 것은 말 그림들.

                                                       

                                                                      The Small Triumphal Car(Burgundian Marriage), 1518

 

부인의 초상화

           St. Anna (Portrait of Agnes Dürer), 1519

 

1520년, Maximilian I세의 뒤를 잇는 황제 Charles V의 대관식에 참석하러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Aachen으로.

이때 49세의 그, 이미 관절염으로 손놀림에 이상이 오기 시작하고....

이어 네덜란드로 여행

 

                                        

                                                                  Weeping Angel boy, 1521

 

여행에서 돌아와 말라리아에 걸리고, 이후 회복되지 못한 채....

 

그의 거의 마지막 작품.

                               Tuft of Cowslips, 1526

1527년, "The Four Books on Human Proportion" 저술.  

            이 책은 그 다음 해, 그의 사후에 출간 됨. 

 

1528년,  죽음(56세)

           (그가 남긴 작품은 유화 100여점, 목판화 350여점, 동판화 100여점, 소묘 90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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