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들라크루아

뚝틀이 2013. 4. 27. 02:30

(들라크루아의 그림이야말로 박물관에 걸린 그대로 봐야... 어떤 사진으로도 그 가슴을 쿵쿵 뛰게 하는 또 ‘짜릿한’ 느낌을...)

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1798–1863) 프랑스 낭만주의(인상파 이전, 바르비종과 동시대) 대표화가. 

 

1798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남.

           신고전주의 풍의 미술교육을 받음. 초기에는 라파엘 풍, 23살 이후 급격히 루벤스 풍으로, 이어 낭만주의 풍으로.

 

그가 24살 때인 1822년 파리 살롱展에 출품한 작품.

                         The Barque of Dante 또는 Dante and Virgil in Hell, 1822

(단테의 서사시 ‘神曲’ 중 지옥 편의 한 장면으로, 버질의 부축을 받고 스틱스Styx 강을 건너는 단테의 모습으로,

들라크루아는 친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두 달 반 동안 논스톱으로 이 그림을 그려 탈진 상태가 되었다고....)

당시 화제에 올랐지만 비평가들은 ‘설익은 붓질’에 대해 악평.(고전주의의 ‘완벽함’에 젖어있던 ‘기성인’들의 단골메뉴)

그래도 국가가 구입해 파리의 룩셈부르그Luxembourg 화랑으로...

 

이로부터 2년 후, 살롱展에 ‘키오스 섬의 대학살’ 출품.

하필이면 이때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를 대표하는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루이 8세의 맹세’와 같이 전시되어,

그 극명한 대조로 ‘추한 소재’에 ‘추한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음.

      

 

                       Massacre of Scios, 1824                                                     Vow of Louis XIII, Ingres, 1824

(터키 軍이 키오스 chios섬에 거주하는 그리스인들을 수 천 명 학살한 1822년의 사건을 비판한 그림으로, 용맹함과 미덕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민간인들의 무력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 이 그림으로 들라크루아는 新낭만주의의 대표화가로 떠오름.)

 

(여기서 잠깐, 1789년 대혁명 이후 구질서의 옹호자the Ancients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 보수세력은 ‘아~ 그리운 옛날이여’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를 표방한 반면, 진보세력은 낭만주의Romanticism를 태동시킴. 전자의 대표주자가 앵그르, 후자 쪽에 들라크루아. 그가 내뱉는 말, ‘추함의 숭배’ cult of ugliness.) (크게 보아, 이 둘의 관계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연상시킴.)

 

1825년, 영국 여행.

          ‘셰익스피어’라는 ‘무궁무진’한 소재를 발견하고, 그 후 바이런과 괴테 등에서도 소재를....

 

바이런의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을 그린 세 점.

                         The Combat of the Giaour and Hassan, 1826

 

                 The Combat of the Giaour and the Pasha, 1827

 

                                                    Death of Sardanapalus, 1827-8

(마지막 그림, ‘시리아王의 죽음’은 적군에 포위당한 왕이 자신의 명령에 따라 죽어가는 종과 첩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모습인데, 바이론 원작에서는 그런 구체적 지시가 없었다고... ‘발동 걸린’ 작가의 상상력? 이 그림은 잔인함과 선정성을 이유로 한 동안 전시가 금지되었었음.)

 

들라크루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은 당연히 그가 32살 때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01 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자유 평등 평화의 삼색기로 이끄는 여신과 군인들을 짓밟고 전진하는 빠리지앙Parisien의 이미지, 이 ‘선동적’ 그림을 정부가 구매하여 공개를 않다가, 정권이 바뀌어 나폴레옹 3세 Napoleon III 때에 이르러서야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100프랑짜리 프랑스의 구 화폐에 그려져 있던 이 그림의 화려한 색상, 그 화폐를 지갑에서 꺼내기가 아까웠던 생각이 문뜩... )

1832년, 스페인과 북아프리카 여행.

여기서 그가 받은 인상,

"The Greeks and Romans are here at my door, in the Arabs who wrap themselves in a white blanket and look like Cato or Brutus…"

그때 수많은 스케치를 했고, 후에 이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이 여행에서 돌아온 후, 그의 가정부의 헌신적 봉사 하에 ‘외부’로부터 ‘적절히’ 차단되어 작품 활동.

 

알지에 여인들.

                            Women of Algiers in their Apartment, 1834

 

또 그곳의 유대인들의 결혼식 장면.

                                         Jewish Wedding in Morocco, 1837–41

 

자화상,

                            Self-portrait, c. 1837

 

쇼팽 그리고 또 죠르쥬상 부인의 초상화 

        

                             Frédéric Chopin, 1838                                                            George Sand, 1838

 

들라크루아에 대한 보들레르의 평,

          "Eugène Delacroix was a curious mixture of skepticism, politeness, dandyism, willpower, cleverness, despotism,

            and finally, a kind of special goodness and tenderness that always accompanies genius".

 

그의 그림에는 이런 분위기도...

  

                

Tasso는 십자군과 무슬림의 전투를 노래한

      이탈리아의 시인(1544-1595).

 

교황으로부터 ‘시인의 왕’을 수여받기 며칠 전에

      정신병동에서 사망

 

 

 

 

 

 

 

 

 

 

 

 

Tasso in the Madhouse, 1839

 

 

화가의 '순간 푸착 능력'이란....   어떻게 스케치를 해왔길래...

  

                                         Collision of Moorish Horsemen, 1844

 

착한 사마리아인을 소재로도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는....

                         The Good Samaritan, 1849

 

이제 내 바이론 시집을 읽어볼 때가 되어가나?

          The Bride of Abydos, 1857 (바이론의 시에서 따온 소재)

 

포기할 수 없는, 샘 솟듯 솟아나는, ....

                                Arab Horses Fighting in a Stable, 1860

 

186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