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방문객

뚝틀이 2013. 6. 29. 06:28

이젠 전화도 아예 꺼버렸다. 싫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싫다. 내게 무슨 의미람.

 

밤낮이 따로 없다.

아니, 밤은 있다.

조용한 밤,

잠이 들지 않는 밤. 잘 수 없는 밤.

무엇인가 읽으며 생각할 수 있는 밤. 내 살아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낮? 역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잠자려 눈을 감으면 어지럽다. 너무 어지럽다.

견디다 못해, 눈이 감기면, 그때가 바로 잠자는 시간.

깊은 잠, 개운한 잠이다.

잠이라기보다는 그냥 의식을 잃은 상태, 그런 상태.

 

무슨 소린가가 들린다.

띵~동.

포우의 갈가마귀 장면도 겹치고, 내 무엇인가 자판을 두들기기도 하는 쳇바퀴만 계속된다. 눈을 뜰 수가 없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누군가 오긴 온 모양인데,

그런데,

일어날 수가 없다. 그냥 비몽사몽.

어지럽다.

띵~동.

또 눌렀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에 또 잔향이 울린다.

경비인가? 무슨 소포배달 그런 건가?

어제도 이랬었다.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놓여있는 그 무엇도 없었다. 층계를 내려다보며 누구였냐 물어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겠지. 오늘도 누군가가 누르다 그냥 가겠지.

또 눌렀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에 또 잔향이 울린다. 이건 좋지 않은 상태다. 잔향이란 일종의 환청이니.

 

도대체 누구지?

모니터 볼 생각 없이 그냥 나가서 현관문을 반쯤 열어본다.

어휴~ 놀래라. 여러 명이다.

놀란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 상태인데..... 뒤쪽에서 앞으로 나오는 친구는 알겠는데....

이제야 잠이 깨는지, 목소리가 들려온다.

싱글싱글 웃는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어~! 야! 너희들 지금 오면 안 되는데....

내 지금 누구도 맞을 수 없는데..... 누구도 들어오게 할 수 없는데....

이 친구들 웃으며 그냥 밀치고 들어온다.

그러신 줄 알고 왔으니....

달수, 욱이, 민규, 성준이, 동명이.

 

어떻게 왔지? 내 여기 있는 건 또 어떻게 알았지? 싱글싱글, 그냥 알았단다. 이야기 들었단다. 전화기 꺼져있는 것도 알고 왔단다.

할 수 없이 현관은 통과시켰지만, 이 꼴은 보이고 싶지 않은데....

바닥에 널려있는 지저분한 것 치우려니, 얼른 달려든다. 어디로 옮기면 되는지 말만 하란다.

이런 낭패가.

다시 어지러워진다. 그냥 소파에 주저앉는다.

 

지금 몇 시지? 물으니 12시 조금 전.

내 놓을 것도 없는데.... 가져왔단다. 먹을 것 마실 것 다 가지고 왔단다. 비닐봉지에서 잔뜩 꺼내놓는다.

포도 잔쯕, 이상하게 생긴 '진짜 주스'라는 것 여러 개, 그리고 단 것 한 박스.

단 종류, 난 물론 손에 대지도 못한다.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좋아할 일 없을 것이다.

글쎄, Sweet lady라면 모를까?

그냥 밋밋하게 있을 수 없어, 지갑에서 한 장 꺼내 내민다. 요 앞집에 가서 타코나 좀 사오라고.

40줄 중반에서 50대 초반 이들, 아직 청년이다. 표정도, 말씨도, 행동도.

아직 타코에는 익숙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반쯤 남기는 친구도 있다. 그 나이에 아직 음식을 가리다니.

 

증세를 묻는다.

물어봐야 뭘 하나. 어디 꼭 짚을 것 없이 그냥 아픈 것인데. 온몸에 기운이 없는 것인데..... 그냥 갈 때가 되어 그런 것인데.

옛날, 다시 옛날 분위기로 돌아간다. 이 친구들과 지내던 그 팔팔했던 시절로.

오간다. 여러 이야기가 오간다.

사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대화. 그들의 꿈, ‘꿈?’

 

이야기 하나 들려준다.

사람은 실력도 힘도 그 무엇도 아닌 ‘꿈’으로 평가되어야한다고. ‘꿈‘을 가지는 것 그것이 인간과 그 이외 존재의 유일한 차이라고.

그런데 그 ‘꿈’이 없어지거나 ‘꿈을 갖는다는 것’에 의미가 없어진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

지금의 나를 이야기하는 것뿐이 아니다.

너희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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