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아
일어나 보니 오른 쪽 눈이 충혈되어 있다. 약간의 통증도 느껴지고.
안과로 가려 택시를 기다리는데 빈 차가 한 대도 없다. 소위 말하는 '택시의 법칙'
할 수 없이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내렸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에 엉뚱한 사거리에서 내렸다.
꼭 내가 아는 '그 안과'에만 가야할 필요가 있나?
눈에 띄는 약방에서 '근처 안과'를 물었다.
9시30분 진료시작이라는데 아무도 없다.
간호사라는 아가줌마도 10분 더 지나서야 나온다.
의사가 앉으라 하더니, 5초도 아니고 1,2초 들여다보더니, '흔한 결막염'이란다.
수건 따로 써야한다는 것 잊지 말라며 눈약 집어넣어 해준다.
간호사는 진료시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가란다.
아마 점심시간을 피해달라는 뜻이겠지.
대학 종합병원도 이 정도는 아니다.
환자가 밀린 것도 아니었는데. 기다리는 동안도 나 혼자였고, 나올 때도 나 혼자였다.
토일욜
집에 와 눈약을 넣고 처방약을 먹고 해도,
충혈이 위험하게 더 심해지고 통증도 신경에 거슬린다.
주말이라 어쩔 수 없고,
월아
일찍 샤워하고 '그 안과'로.
너무 일찍. 문이 아직 닫혀있어서,
문 옆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
간호사가 와 깨우며 등록부터 하란다.
들어가보니 벌써 여러 사람이 앉아있다. 좀 일찍 깨워주지.
아니, 이 세상 뭐든지 본인 잘못. 이것이 자연절대절명법칙. 이 사람들의 '움직임'에도, 내 그렇게 깊이 잠들었었나?
의사가 묻는다. 왜 또 왔냐고.
약이 떨어졌냐고. 이 양반도 오락가락이다.
내가 이 '안과'라는 곳에 왔던 것은 적어도 5,6년 전이다.
내가 빛을 들여다보자마자, 시작 1초도 안 되어, 큰소리로 묻는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이건 아주 아주 까다로운 병이란다. 벌써 진행이 많이 되었단다. 병균이 아니라 속에서 스스로 생기는 것이란다.
어쨌든 이 검사 저 검사 하고, 이 약 저 약 집어넣고, 이것 저것 쪼이고, 안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점
도저히 몸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눈이 아니라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탈진 상태다.
어쩔 수 없이 내 '주치의'에게로.
긴급 주사.
이 양반에게 안과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하는 말,
"의사라고 다 같은 의사인가요?"
맞다. 이 양반은 아마 능력 관점에서 말한 모양인데,
난 능력 이전에 자기 일에 대한 충실도를 생각한다.
성실하지 않은 곳에 무슨 능력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 양반, '그 의사'와 통화해보더니, 걱정말라고 위로해준다.
'일상생활에는 지장 없는 병'이라고. 단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탈이라고. 주로 '지식인'에게 생기는 병이라고.
'지식인?' 쓸데없는 생각 많이 하는 사람?
월밤
어쨌든 이제 거울을 보니,
그 무섭게 충혈된 것, 벌써 깨끗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눈으로는 잘 보이지를 않는다.
통증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 양반 혹시 너무 독한 약 쓴 건 아닌가?
내일 모래 다시 그곳에 가기로.
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병은 시간이 생명이다. 자칫하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왜 그 의사가 내 눈을 들여다보자마자 시력실로 데려갔는지, 이제야 알겠다.
토요일에 귀찮다는 생각에 '아무 병원'이나 들어갔던 것은
결국 그렇게서 절약한 시간과 에너지라는 대가에 내 시력을 팔아버린 것이다.
그 후회를 지금 하고 있는 것이고.
사람은, 아니 나는, 왜 항상 지나고 나서야 현명해지는지...
지금 난 낭비라는 커텐 거기에 가려져 있는 것.
이 커텐만 없으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텐데.
최선을 다하라. 조금 귀찮을 때, 바로 그때 조금만 더 참고 잘해라.
그것이 인생을 '한 번 더' 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