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서울 생활 22일 째.
닷새 전에는 종국이네서 한 시간이나 이상한 노르스름한 영양제를 맞았었다. 무슨 주사냐 했더니 쓸데없는 것 묻지 말고 그냥 맞으라고 해서 ‘끽소리’ 못했지만, 그래도 그 액체의 실체가 궁금해 오늘 전화했더니 마그네슘과 비타민이 주성분인 약이란다. 우울증 줄여주는 것이 목적이라나. 그날 식사하면서 나눴던 얘기 내용이 무척이나 걱정되었었던 모양이다. '우울증'
읽고 있는 책도 그렇다. 전에는 기껏해야 두 권이었는데, 이제는 서너 권을 펼쳐 놓고 여기 들췄다 저기 들췄다 한다. ‘심리 불안’
익숙한 패럴럴 프로세싱도 이젠 별무 효과. 책 덮어두고 박다리에게 전화, 한 시간 넘게 통화. 야생화의 세계. '정서 정리'
오늘은 그냥 자리에 누워 이대로 숨이 멎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에 기어나가 여기 옆 의원에서 젖빛 나는 영양제를 세 시간씩이나 걸려 맞았다. 알부민이 주성분으로 함유된 액이라 하고..... 유한양행에서 나온 검색엔진을 뒤져보니 단백질 성분이 듬뿍 들어있단다. '단백질'
지금 먹고 있는 약을 세어보니 하루 세 번 그 합이 20알이 훨씬 넘는다. 분명 이건 옳지도 않고 바람직한 상황도 아니다.
어제는 답답한 마음에 치석제거까지 했다. 그동안 끊임없이 독촉이 오던 치과로부터의 문자메시지를 끊어버리는 조치이기도 하고.
(몰랐다. 그제부터 치석제거도 의료보험으로 카버가 된다는 것을. 내가 낸 것은 임플란트 권유용 구강 X-ray 비용이 전부다.)
오늘 병원에서 나오는데 원창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병직이네 들렸었는데, 상태가 악화돼 1인실로 옮기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큰 병원으로 옮겨야할 것 같다고. 우리들 움직일 수 있을 때 전화나 자주 하자고. 난 이제 솔직히 영정사진 앞에서나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집에서 뭐 하기 싫어 요즘은 툭하면 도스 타코스에 가서 10번 메뉴다. 지금까지 내가 올려준 매상만 해도 제법 될 것이다. 오죽하면 만날 같은 것이 질리지 않느냐고 사장이 묻기까지 하겠는가. 그런데, 이 10번의 -다른 메뉴는 모른다. 내 시켜본 적이 없으니- 특징은 고기와 마늘이 듬뿍 들어있다는 것. 혹 내 몸이 그동안 고기와 마늘을 그리워했던 것은 아닐까?
여기는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지내기에 그지없이 편한 곳이다. 곳곳에 널려있는 것이 음식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존심만 먹고 사는 내가 눈치 보이게 음식점에 혼자 들어가고 싶은 마음 그런 건 처음부터 없고,(언젠가 신문에 보니 식사상대를 해주는‘심부름’도 있다던데, 오죽하면 그런 ‘직종’도 생겨났겠나.) 사방에 널려있는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봉지음식을 말함이다. 가위로 쑥떡 잘라 냄비에 부으면 갈비탕도 되고 사골국도 되고 그런 것.
내딴엔 변화를 주느라 큰 숟갈로 깐 마늘 듬뿍 떠 넣곤 한다. 땀 뻘뻘 흘리며 먹어야 심리적 포만감이 살아난다. 몸에서 마늘냄새 나니 뭐 그런 것 잔소리 할 사람이 옆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내 무슨 젊은 여인과 뽀뽀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노인들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누가 뭐 어쩔 거여? 다 이런 식의 뱃장 탓이리라. 어제부터 올려놓기 시작한 갈비탕만 해도 그렇다. 이건 아예 갈비가 떠있는 ‘마늘 탕’이다.
그러고 보니 채소가 없는데, 귀찮아서가 아니라 아예 생각 자체가 없다. 편의점 김치 사다가 몇 점 씹어봤지만 전혀 당기질 않는다. 내 우리 집 텃밭 싱싱한 상추 또 쑥갓 그 향을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일?
그러고 보니 퍼뜩 드는 생각이 있다. 내 낙향한지 지난 7,8년 동안 무슨 ‘구이’ 집을 가본 적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구이’기회라면 외식일 텐데 1인분을 주문 받는 곳도 없을뿐더러, 모처럼 우리 집에 누가 온다 해도 서울에서 질렸을 숯불구이라든지 삼겹살집이라든지 그런 곳보다는, 토종닭집이나 송어횟집, 또는 기껏해야 겨우 ‘웰빙 향토음식점’인데, ‘시골사람’ 다 된 나는 이제 그 어떤 곳 가기도 정말 싫다. 그래서 누가 온다면 괴롭다. 겁이 난다. 짜증이 난다. 우울해진다. 아니 싫다. 다 싫다.
정 고기가 당길 때는, 미리 다 버무려놓고 파는 것 마트에서 사와, 밖에 내놓은 가스레인지에 프라이팬 올려놓고 휘휘 저어 먹기. 기름 냄새 요란하게 피워 부엌에 배지 않도록 하는 이런 행동이 구차스러워서라도 난 육식을 않는다. 조기새끼나 간 고등어 속전속결 처리가 그 정도가 고작. 이때도 프라이팬 설거지 할 때 마다 무슨 큰 죄나 지은 기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던 것. 지금 이렇게 횡설수설 쓰고 있는 것은, 혹, 내 이 식성이 단백질 부족 증세를 초래했고, 그것이 내 이 비실비실 증상의 근본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것.
한참 이런 생각 진행중인데, 아랫층에서 요리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모양이지. 옆집에까지 냄새 선물하는 것.
간장에 졸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맞아, 요리란 바로 간장이란 형태의 소금으로 고기의 역겨운 맛을 가리는 작업이지.
냄새가 좀 더 심하게 올라온다. 이 집 좀 너무한 것 아닌가? 누구 약 올리려 작정을 했나?
드디어 타는 냄새. 하! 냄비 올려놓고 장 보러 간 모양이구나.
어! 아까 내...... 남은 음식 변하지 않게 한 번 더 끓인다고, 조심하는 의미에서 물까지 더 부어서....
후닥탁탁! 부엌에 꽉 찬 연기. 드디어 성공. 내 본래 목적이 살균이었잖나. 지금 이렇게 완전히 살균이 되었고. 대 성공!
드디어 여기 이 집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을 위층 아래층에 아낌없이 과시하는데 성공!
냄비는? 내일 일 오늘부터 미리 걱정하기 없기!
오늘 7월3일은 '통쾌하게 성공한' 날!
채식의 중요성을 확인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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