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거의 갔었다.

뚝틀이 2013. 12. 20. 03:13

고속도로에 눈발이 날리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했었다.

옆에 산이 보이면 눈이 어느 정도인가 가늠하려 애쓰곤 했다.

톨게이트를 나오니 양 옆에 눈이 수북하다.

소야리 길로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여기는 그래도 눈이 치워져 있다.

군과 시의 차이.

단양군은 행정구역이 비교적 작으니 산길에도 손이 닿는다.

비탈길을 오르는데, 차 바퀴 자국들이 있다.

4륜 구동들이 지나간 자리.

그래도 차는 미끄러지고, 조심조심 온몸에 땀이 흠뻑 젖어 학고개까지는 그래도 성공.

이제 학현길.

산의 이쪽과 저쪽의 차이.

바람이 이쪽으로 불었는지, 여기는 완전 눈길.

차바퀴 자국? 그런 것은 없다. 그저 수북이 쌓인 눈.

행정구역 제천시. 그 넒은 시를 관할하는 양반들, 이런 시골길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던가.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차가 점점 빨라진다.

가속이 붙는다.

브레이크를 잡으니 더 빨라진다.

제동능력 상실.

이젠 차체의 무게가 중력으로 작용하며 비탈길 눈을 미끄러져 내려가기.

급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고,

기어도 파킹으로 놨지만,

그런 것은 다 바닥에 마찰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 땅 위에서의 이야기,. 이런 눈 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냥 미끄러져 가는 차에 속도가 점점 붙는다. 공포.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을 해도, 생각만 그렇지 쉽지가 않다. 이론과 실제의 차이.

이제는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

이제 죽음과 삶의 확률은 1/2.

왼쪽은 산인데,

오른쪽은 가드레일도 없는 절벽.

지난 번 와이프 일행 차가 굴러 떨어지다 나무에 걸린 틈을 타 빠져나오고, 차는 밑으로 쳐박혀 박살이 났던 바로 그 지점.

짧은 순간이지만 별 생각 다 든다.

아니 아무 생각도 없는 백짓장.

차가 이제는 옆으로 서서 미끄러진다.

운전대 쪽으로 진행하니, 이젠 뛰어내린다 해도 차 밑에 깔리기.

어느 쪽? 어느 쪽?

∙∙∙∙∙∙∙

∙∙∙∙∙∙∙

쾅!

행복의 비명. 야호!

쾅!이 정답이었다.

조용하면, 조용하다가 우찌근 뚝딱 황천길이었다.

∙∙∙∙∙∙∙

차에서 내려 뒷트렁크를 열고 보니, 장화는 있는데, 장갑은 없다.

등산 양말. 장갑 대용.

미끌미끌 뒤뚱뒤뚱.

집에 들어왔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남들 다 고이 잠들어있는데, 나도 고이 갈 뻔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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