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다.
이번엔 병행이다. 불어에 스페인어에 러시아어.
무슨 이유로 외국어를? 잡생각을 없애는 데는 외국어만한 것이 없다.
아니 어쩌면 철학적인 측면도 있다. 왜 그렇게 쓰느냐고 물을 수야 없는 일 아닌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다른 여러 방법도 있을 텐데 왜 외국어인가.
취미 차원이다.
야생화 찍으러 다니고, 여러 나라 여행할 때 무슨 목적이 있어서였던가?
바둑을 배우고, 노래를 할 때, 그것을 직업으로 하고, 무슨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였던가?
말 배우기가 일종의 ‘공부’라는 ‘카테고리’로 생각되어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냥 취미일 뿐이다.
그런데, 도대체, 러시아어는 왜 끼어들었지?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어는 그 어렵기에 있어서 다른 언어와 차원이 다르다.
프랑스어와 스페인어에서는 동사 변화, 독일어에서는 격변화가 골치 아프다면, 러시아어에서는 격변화와 전치사가 머리를 때린다.
거기에다 불어와 스페인어에서는 문법적으로 처리해도 되는 완료/불완료가 러시아어에서는 동사 그 단어 자체가 달라져버린다.
그렇다면 러시아어는 그냥 접어두면 되지 않는가?
아니다. 재미있다.
어렵다는 것, 바로 그것이 러시아어의 매력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 모양새가 되었다.
한참 열심히 프랑스어를 공부하다가도, 러시아어가 끼어들면 불어는 뒷전으로 밀리곤 했었다.
역설적으로 보면, 문법이 복잡하다는 것은 그만큼 체계적이라는 것이다.
체계적인 것은 부딪치다 보면 진도가 느껴진다.
갈 길은 멀지만, 지나온 길도 보인다는 의미.
독일어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난감하기 그지없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문법이라는 것을 잊게 되었다.
문법이라는 것에 일일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냥 말이 나오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진도다.
마찬가지 목표. 정말 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희망은 그렇다.
문제는 인터넷 상에서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
책을 사서 보면 되지 않는가?
인터넷 텍스트에 익숙해지다 보면, 또 사전을 찾고 공부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종이 책은 한참 불편하다.
중요한 관점은 퍼블릭 도메인에 제대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텍스트가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
스페인어는 거의 없고, 프랑스어는 아주 드문 반면, 러시아어는 정말 풍부하다.
또, 내가 읽은 책들도 러시아 작가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200년 전 또 100년 전 작품들이라는 것.
우선 고골의 ‘외투’를 잡아보았지만, ‘문학적 표현’들이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말았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투르게네프의 '무무'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 다음에 잡은 것이 푸쉬킨의 ‘스페이드 여왕’이었지만,
역시 거의 200년 전 작품이라 어렵기는 마찬가지,
그래 역시 포기하려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 법, 편법으로 영문과 병행해 ‘대충 느낌이라도 얻으려’ 했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에 있는 이 번역본, 중간에 자기 재량으로 ‘줄거리’식으로 정리한 부분이 너무 많아 짜증이 나,
영어는 덮어놓고 아예 불어로 번역된 텍스트와 나란히 놓고 읽어가기로.
역시 마찬가지로 ‘원작’을 많이 현대적으로 ‘각색’을 해,
‘큰 틀’에서는 도움이 되었지만, 1 : 1의 문장을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원작에는 주인공이 몸을 떨었다고 나오는데 Германн затрепетал.
불어판에서는 독자를 위해 친절하게 그 집은 우연히도 C’était la grand-mère de Tomski라는 식이고,
이렇게 짧은 문장 정도면 괜찮은데, 중간 중간 장면묘사에서 아예 현대판으로 그 내용을 다 바꿔놓았다.
하지만, 결국 읽었다. 끝까지 읽었다.
격변화, 전치사, 완료/불완료 상에 대해서는 제법 공부한 셈이다.
그런데, 솔직히 표현하자면, 불행하게도, 러시아어를 읽은 것이 아니라, 불어를 읽었다.
결국 ‘스페이드 여왕’이라는 ‘불어 소설’을 읽은 셈이다.
그렇게도 러시아어가 불어보다 힘든가?
혹, 원전은 오래 전 책이지만, 번역은 ‘오늘의 언어’로 쓰인 책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그러다가, 퍼뜩 떠오르는 생각, 이것이야말로 브레이크 스루 그 자체다.
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러시아 고전을 번역한 것들로 프랑스어를 익히고....
또 프랑스어 고전 작품들을 러시아어로 번역한 것들을 읽으면서 배우고....
스페인어도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서....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하지만, 다 달콤한 꿈이었을 뿐.
손에 잡은 ‘어린 왕자’의 러시아어 번역판.
그런데 무슨 일? 기대와는 정반대로 더, 도대체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아직 책을 손에 잡기에는 어휘력이 너무 부족해서 그런가?
걱정은 금물, 사실 헤맬 때 얻는 것이 더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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