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에드가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뚝틀이 2015. 10. 30. 23:00

Edgar Allan Poe(1809-1849), The Black Cat 1843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믿어달라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도 못 믿겠는데 어떻게 믿어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일이면 난 교수형에 처해질 사람이다.

내 영혼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쓰려고 한다.

아주 솔직하고 간결하게.

 

나는 소년시절부터 성품이 온순했고, 유별나게 짐승을 좋아했다.

그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포옹해 주는 것이 참 행복했다.

나는 일찍 결혼했는데, 아내는 고맙게도 내 성품을 생각해,

작은 새, 금붕어, 영리한 개, 토끼, 조그만 원숭이, 고양이를 키웠다.

그 중에서도 온몸이 새까맸던 고양이, 그 이름은 플루토Pluto(지옥의 神)였다.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이 녀석, 외출할 때 마다 떼어놓느라 내 진땀을 빼곤 했다.

 

내 음주벽,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세상에 알코올중독에 비길 병이 또 어디 있으랴!

난 날이 갈수록 난 침울해졌고, 남의 감정에 상관없이 화를 내곤 했다.

심지어는 아내에게 욕설을 퍼붓고,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고, 동물들을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

 

플루토도 내 희생물이 되었다.

어느 날, 내가 잔뜩 취해 집에 오니, 플루토가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들어, 그를 확 붙잡자, 이 녀석이 내 손에 상처를 냈다.

분노가 나를 휩쌌다.

난 주머니칼을 꺼내어, 녀석의 모가지를 움켜잡고, 한쪽 눈알을 잔인하게 도려냈다!

지금, 내 얼굴은 부끄러움에 달아오르고, 내 몸은 화끈거리며 몸서리친다.

 

난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하여 공포와 후회가 반반 섞인 감정을 갖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낸 음주벽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는 나를 보면 달아나곤 했다.

그렇게도 날 따르던 짐승이 날 피하자, 처음에는 슬펐지만, 이내 괘씸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비뚤어진 생각이란, 원래 인간본성의 원시적 충동 아니던가.

결국, 어느 날 아침, 나는 고양이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그런 짓을 저지른 날 밤,

불이야! 하는 고함소리에 잠에서 깼다.

난 아내와 하녀와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모든 것이 타버렸다.

이튿날 가보니, 내 침대 쪽 칸막이벽에 커다란 고양이의 모습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목에 감긴 밧줄의 모습까지도!

누군가가 필시 나를 깨우려, 그 고양이를 내 방으로 던져 넣었는데, 맞은편 벽이 무너지며 떨어지는 통에 압착되어 붙어 버렸고,

불꽃과 동물의 시체에서 나오는 암모니아의 작용으로, 벽의 석회가 고양이의 초상을 만들어 낸 것이리라.

 

여러 달 동안 난 그 환영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후회라 할까 야릇한 감정에 난 플루토와 똑같은 고양이를 구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내가 가곤 하는 술집에서, 문득 술통 위 시커먼 물체가 눈을 끌었는데, 그것은 플루토만큼이나 큰 검은 고양이였다.

플루토는 몸 전체 어디에도 흰 곳이라곤 없었는데, 그 고양이는 가슴 전체에 걸쳐 하얀 반점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손으로 건드리자, 그 녀석이 내 손에 몸을 비비며 반갑다는 시늉을 했다.

주인은 그 고양이를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 했고, 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녀석이 나를 따라왔다.

 

그날은 몰랐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 이 고양이도 한쪽 눈이 없었다. 플루토와 마찬가지로!

그 때문에 아내는 고양이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고양이도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기어오르고. 무릎위로 뛰어올라 몸을 비벼대고, 또 이 녀석이 다리 사이로 끼어들어 내가 곤두박질하고∙∙∙∙∙∙∙.

귀찮다는 생각은 서서히 증오로 변해, 단숨에 쳐 죽이고 싶었지만 꾹 참곤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짐승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고양이와 내가 죽인 고양이와의 차이점인 하얀 털의 반점,

이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윤곽을 이루어 가는데, 그것이,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무서운, 공포와 범죄의, 고민과 죽음의, 두렵고도 비참한 모양의,

교수대 형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 마리 짐승이,

내가 비록 제 친구를 죽였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본뜬 나에게 이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다니!

그 짐승은 낮에는 잠시도 나를 날 혼자 있지 않게 하고,

밤에는 그 육중한 무게로 내 얼굴을 내 가슴을 뜨거운 숨을 뿜으며 누르곤 했다.

 

어느 날 내가 지하실로 내려가는데, 아내가 나를 따라 왔고,

고양이도 나를 따라 계단을 내려오다가, 하마터면 나를 곤두박질치게 할 뻔했다.

나는 분노에 도끼를 쳐들어 고양이를 치려했지만, 아내가 말렸고,

그 잡은 팔을 뿌리치다, 그녀를 그만 도끼로 내리찍고 말았다.

 

나는 곧 신중하게 시체를 감추는 일에 착수했다.

쇠 지렛대로 벽돌들을 뜯어낸 다음 시체를 세워 전과 같이 그대로 벽을 쌓고,

조심조심,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벽돌과 벽돌 사이의 벽을 아주 꼼꼼하게 발랐다.

 

그 다음, 난 그 짐승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이 약삭빠른 짐승이 겁을 먹었던지, 내 앞, 집 근처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분에 그 짐승이 집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푹 잘 수 있었다. 마음속에 살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말이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으나 나를 괴롭혔던 그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금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내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죄의식마저도 없었다.

 

몇 차례의 심문을 받기는 했지만 거뜬히 대답해냈다.

가택 수색까지 받았어도, 물론 무엇 하나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이로서 나의 앞으로의 행복이 틀림없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했다.

 

암장 나흘째, 뜻밖에도 경관들이 개까지 데리고 와, 내 집을 다시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번까지 그들이 세 번인지 네 번인지 지하실로 뒤졌지만 난 까딱도 하지 않았다.

난 팔짱을 낀 채 태연히 지하실을 오갔다.

경관들은 이제 떠나려 했고,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강렬했다.

“여러분!”

난 계단을 향해 올라가는 그들을 불렀다.

“제 혐의가 풀려 기쁘기 그지없네요.

다음부터는 좀 더 예의를 지켜 주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공연히 허세를 부리고 싶어, 손에 든 지팡이로 벽을 쾅하고 두들겼다.

 

오! 하느님이시여!

벽속으로부터 응답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린애가 흐느껴 우는 것 같은 목이 멘 듯 짤막한 소린가 싶었는데,

드디어 길고 큰 울부짖는 소리로, 악마들의 공포와 승리가 반반씩 섞인, 지옥이 아니고서는 들을 수조차 없는

그런 고통의 외침으로 울려오는 것 아닌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던 경관들은 한동안 공포와 두려움에 까딱도 못 하다,

그 억센 팔들로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부서져 떨어진 벽속엔 썩고 피가 엉겨 붙은 시체가 곧바로 서 있었고,

그 시체의 머리 위에는 새빨간 주둥이를 딱 벌린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불같은 노여움의 외눈을 번뜩이면서 말이다.

내가 그 괴물을 쳐 넣은 채, 벽을 발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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