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투르게네프의 ‘무무’

뚝틀이 2015. 11. 10. 07:21

Ivan Sergeyevich Turgenev, 'Mumu'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1818-1883), ‘Муму’(1852)

 

독재적 어머니 밑에서 시달리며, 증오에 가득 찬 어린 시절을 보낸 투르게네프가 풍자적으로 그린,

러시아판 ‘벙어리 삼룡’과 ‘예쁜 강아지’의 사랑이야기입니다. 한 번 들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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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우리 이쪽에서는 조선의 국력이 쇠해가고 있던 때,

아직 수많은 백성들이 노예로 살고 있던 저쪽 러시아 땅에 있었던 이야기랍니다.

모스크바 변두리, 한 외진 곳의 한 저택, 그때 그곳으로 가보기로 하죠.

자식들 다 뿔뿔이 독립해 나가고 혼자 살고 있는 이 노인네,

그 한 명을 위한 노예랄까 하인이랄까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세탁담당, 바느질담당, 남자 옷 담당, 여자 옷 담당, 거기에 또 구두공에, 목수에, 다 따로 있었는데,

의사까지 하인으로 둘 수는 없는 형편인지라, 마구馬具담당에게 수의사 겸 가족의家族醫 역할을 맡겼습니다.

 

이 노부인은 행복할까요? 천만에요.

행복이란, 외형과는 아무 상관없는 법.

이 노파, 워낙 성미가 고약해 왕래하는 이도 없고,

이제는 ‘인생의 황혼기’란 말도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깊고 깊은 마지막 수렁 길’ 거기에 들어선 그런 신세였답니다.

 

무릇 어떤 이야기에도 소위 주인공이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

게라심Герасим, 다른 사람들보다 한 자는 더 키가 큰 엄청난 덩치에 근육질의 이 사람,

보통이라면 주변 아가씨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듣지 못하고 말할 줄 모르게 태어났답니다.

장정 네 사람 몫을 거뜬히 해치우고, 누구보다도 성실하다는 이야기에 노파가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죠.

마당 쓸고, 물 길어오고, 장작 패고, 낯선 사람 집에 못 들어오게 하는 그런 일을 하라고요.

짐승처럼 밭 갈고 곡식거두는 해봤지, 사람들과 어울려본 적이 없는 이 사람,

처음 모스크바로 처음 끌려왔을 땐,

푸른 초원에서 지내다 갑자기 기차에 실린 소라도 되는 양,

그저 입 헤 벌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멍하니 쳐다보던 처량한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그 사이 몇 번 혼난 수탉들도 그의 앞에서는 싸움을 멈출 정도로,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답니다.

물론, 좀 껄끄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죠.

말하자면, 그 우락부락한 모습에 겁먹는 도둑들이나 또 이 집 신세 좀 질까 하고 들어서려던 낯선 사람들 말이죠.

하지만, 그게 바로 이 게라심이 해야 하는 역할이 아니었겠어요?

 

어느 이야기에서든 마찬가지. 남자 주인공이 있으면 조연 역할 여자 한 명 정도는 있어야겠죠?

나이 28세에 아름다운 금발에 몸매도 좋은 타치야나Татьяна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의이 처녀에게서 굳이 흠 하나 찾아보자면, 왼뺨에 사마귀가 있다는 것.

그깟 정도가 무슨 대수냐 생각하시겠지만, 여기는 러시아라는 것을 생각하셔야합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곳 사람들은 왼뺨에 있는 사마귀는 불행을 불러온다는 미신을 믿었기 때문이죠.

그 말 같지도 않은 미신 때문에 이 여자는 어렸을 적부터 모진 학대 속에 자랐고,

그러는 가운데 스스로 터득한 인생 진리가 하나 있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길은 오직 하나, ‘무조건 성실하게 일하기’입니다.

두 사람 몫을 거뜬히 해내는 손놀림 좋은 이 세탁女, 이제 마님의 고급 옷은 이 타치야나의 전담이었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의 착실한 마당쇠 눈엔 이 착실한 아가씨보다 더한 사람이 없는지라,

처음에는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곤 하다가, 그 다음엔 미소 지으며 눈을 떼지 못하더니,

언젠가는 자기 외투에 있는 단추를 떼어 선물하고, 그러다,

타치야나를 꾸중하는 윗사람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누른 적도 있고,

그 윗사람의 읍소를 받은 마님이 오히려 그의 ‘의리’를 가상히 여겨 상까지 내려주는 통에,

그 후에는 타치야나에게 치근덕대는 구두담당 총각을 몽둥이로 후려친 적도 있고,

어느 새, 이 아가씨의 수호신을 자처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새 옷과 새 구두를 장만하면 마님으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아낼 것이라는 꿈까지 품고요.

 

구두담당 총각이라고요?

예, 맞습니다. 이 사람 이름은 까삐똔Капитон인데,

돈만 생겼다하면 그 당장 몽땅 다 술에 처넣는 그런 사람이죠.

하나님께서 자기를 시험에 들게 하셨고, 자기는 그것을 거역하지 못한 죄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사람의 변.

‘왕년에 내가 삐체르부르크Петербург, Petersburg에 있을 땐∙∙∙∙∙∙’하는 타령이나 늘어놓으며 지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마당쇠 게라심이 이곳에 온지 한 해가 지났을까 하는 시점에 사건이 터집니다.

이 구제불능 까삐똔을 어떻게 건져볼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던 마님에게 떠오른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옳지. 색시 하나 맺어주면 되겠네.

누가 옆에서 든든히 붙잡아주면 원래 모습을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 아닌가?’

마님이 집사 가브릴라Гаврила를 불러, 까삐똔과 타찌야나를 맺어줄 것을 지시합니다.

하지만, 게라심이 이 타찌야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 집사,

그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님 말씀에 죽고 사는 이 목숨, 내 어찌 감히 그게 아니고∙∙∙∙∙∙ 라 여쭐 수 있겠나.’

그냥 입 꾹 다물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까삐똔부터 불러 물어봅니다.

“자네, 결혼할 의사가 있는가?”

입이 헤 벌어지려던 이 까삐똔, 상대가 타치야나라는 말에,

“맙소사. 어렸을 적엔 스승님한테 줘터지고, 나이 들어서는 동료들에게 매만 맞더니,

이젠 그 짐승 같은 놈 통나무 같은 주먹에 맞아 죽게 생겼네!”

물론 예상했던 반응입니다.

이번엔 타치야나를 불러, 까삐똔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이 여자도 잔뜩 질린 얼굴로, 마당쇠에게 맞아 죽을 걱정부터 합니다.

 

집사의 고민은 커져만 갑니다.

‘이제 어쩐다? 날이 갈수록 마님의 성화가 잦아질 텐데∙∙∙∙∙∙.’

하지만 혼자서는 아무리 궁리해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하다 번쩍 떠오른 아이디어, 혐오작전!

게라심, 이 순박한 청년이 술 취한 사람은 질색인지라, 바로 그 점을 이용하기로요.

 

못하겠다고 버티는 타찌야나를 설득 또 설득해, 술 잔뜩 마시게 하고,

모두들 숨죽이고 숨어보고 있는 가운데, 비틀거리는 그녀를 마당에 ‘풀어’놓으니,

우리의 마당쇠, 반가워 다가갔다가, ‘어휴~ 냄새!’ 고개를 푹 떨어뜨리더니,

사람들 모인 곳에, 까삐똔 옆에, 데려다놓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머리를 틀어박고 한숨만 푹푹. 그 후론 그녀에게 눈도 주지 않습니다.

 

가브릴라, 옳다 이때다 하고, 마님에게 보고하고, 즉각 결혼식을 거행하는데, 다행히 우려했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뭔가 좀 다른 게 있다면, 게라심이 물 길러갔다가 ‘물통을 어찌 했는지’ 그냥 빈손으로 돌아오더라, 그것이 하나고,

또 마구간에 물통 들고 들어갔는데, 말들이 왼쪽으로 휘청 오른 쪽으로 휘청하더라는 그것이 또 하나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구제불능 이 까삐똔, 결국 그 술에 손으로 짚을 힘도 없게 되어 이 집에서 쫓겨나게 되고,

우리의 게라심은 떠나는 타찌야나에게 붉은 면 손수건을 내밉니다.

작년에 주려다 못 주고 그냥 소중하게 간직해왔던 손수건을요.

세상 그 어떤 힘든 일도 무덤덤하게 넘기곤 하던 타치야나,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 못하고, 눈물 펑펑 흘리며, 세 번씩이나 키스를 올립니다.

아, 돌쇠의 순정이여! 삼순이의 아픔이여!

 

하늘마저 우는 이날, 그녀가 떠나버린 빈자리를 견딜 수 없어, 게라심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또 걷는데,

꿈지럭꿈지럭 움직이는 물체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뭔가 하고 다가가 들여다보니, 진흙탕 물에 빠진 강아지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었을 흰 강아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해 짝짜기인 강아지가 얼룩이 되어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집으로 데려와, 닦아주고, 건초더미에서 짚단을 가져와 깔아주고, 자기 옷으로 덮어주고,

부엌에서 마련해온 우유를 주는데, 겁에 질린 이 녀석 벌벌 떨기만 합니다.

두 손가락으로 녀석 주둥이를 우유에 대주니 그제야 받아먹는 그 모습.

그 귀여운 모습에 아까 그 슬픔 다 잊어버리고 웃고 또 웃습니다.

 

다락방 그의 문엔 또 하나의 문 작은 문이 뚫렸으니, 바로 이 무무가 드나드는 문이죠.

주인이 문 열기 전 그리로 쏙 먼저 들어가, 침대 위로 뛰어 올라 꼬리 살랑살랑, 그 귀여운 모습이라니.

그런데, 참, 이 침대도 게라심 작품입니다.

통나무 몇 개 나란히 눕혀, 마차를 올려놔도 찌부러지지 않을 그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었죠.

 

우리의 마당쇠가 강아지를 부를 때, 입 삐쭉 내밀고 내는 소리는 무~ 무~,

이 집 사람들도 그를 흉내 내, 강아지의 이름은 무무Муму입니다.

우리의 ‘소녀 강아지’ 무무, 데려올 때는 그렇게 끔찍이도 못생겼더니,

이제는, 꼬리털 복슬복슬, 눈망울 초롱초롱, 귀 예쁘게 축 늘어진 스파니엘입니다.

이 녀석, 밤에는 주인 지키느라 절대 잠드는 일이 없는데,

그렇다고 ‘무식한’ 다른 개들처럼 심심하면 달 한 번 보고 컹, 바람 분다고 컹컹, 그런 ‘미련한’ 짓은 절대 안 하고,

낯선 사람이 정말로 가까이 지나간다거나 어디서 정말로 수상한 소리가 날 때 그때만 짖어댑니다.

게라심이 어딜 가든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바짝 붙어 다니는 이 녀석,

이 둘은 완전 연인 사이요 애인에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게라심은 남들이 무무를 만지면 화까지 내곤 합니다.

 

어느 덧, 또 한 해가 흘렀지만, 게라심에겐 여전히 무거운 짐 지고, 있는 힘 다 써야하는 그런 날만 계속됩니다.

그런 힘든 날들을 이 무무와의 사랑으로 견디어내고 있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세상에 어디 영원한 행복이란 것이 있답니까?

노부인이 오랜만에 우울증 털어버리고 한없이 기분 좋아하던 어느 날,

바로 그날이 우리 이 두 존재의 불행이 싹 튼 날이었으니∙∙∙∙∙∙

 

마님은 매일 아침 카드로 그날그날의 운세를 보곤 하는데,

그날 나온 패는 최상의 조합, 말하자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그런 날이죠.

마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고, 졸졸 따라다니는 하인들도 같이 웃곤 하는데,

사실 하인들이겐 이런 날이 더 불안하죠.

시키는 대로 빨리빨리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이런 웃음이 어느 순간 갑자기 천둥으로 변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때문이죠.

 

그날 우리의 무무가 장미 밭에 앉아있다, 창문을 내다보던 마님의 눈에 띄게 됩니다.

마님이 밝은 목소리로 스테판Степан에게 저 ‘귀여운 녀석’을 데려오라 분부를 내리는데,

요리조리 피하다, 주인의 ‘설득’에 넘어가 안으로 스테판에 이끌려 안으로 잡혀 들어온 이 무무,

이렇게 으리으리한 방에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은 난생처음 보는데다가, 방안을 꽉 채운 향수냄새에 완전히 얼어버렸죠,

맛있는 것 내밀며, 이리 온, 이리 온, 하는 마님의 분부를 받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저 무서워 벌벌 떨기만 하는 무무에게 노부인이 짜증냅니다.

얘, 너 왜 그러지? 주인이 오라는데, 뭐가 무섭지?

마님이 친해지자고 쓰다듬어주려 하자, 화들짝 놀란 무무가 흰 이빨 드러냅니다.

놀라기는 피차 마찬가지. 화들짝 놀라 얼른 팔을 거두는 마님에게 아랫것들이 호들갑 떨며 묻습니다.

“물었어요? 물었어요?”

‘평생’ 누구를 물어본 적이 없는 무무인데 말이죠.

언제 정 듬뿍 담긴 목소리 낸 적 있었냐는 듯, 마님이 날카롭게 외칩니다. 저 녀석을 당장 내다버리라고요.

 

30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마님 방엔 그저 고요한 정적뿐, 마님의 얼굴은 짙은 구름보다도 더 어둡습니다.

웃음도 사라지고, 누구에게도 한 마디 건네지 않고, 카드놀이 그런 것도 다 생각 없고∙∙∙∙∙∙ 생트집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향수가 왜 이 모양이냐, 너희가 바꿨냐? 어이쿠, 얘, 이리와 이 베개 냄새 좀 맡아봐, 비누냄새가 그대로 있잖아.

밤이 깊어가도 마님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 그렇게 좋은 패가 나왔었는데∙∙∙∙∙∙

 

새벽부터 불려온 가브릴라.

“도대체 어떤 개가 밤 새 그렇게 짖어댔지? 한 잠도 못 잤잖아!”

가브릴라 이 사람, 어느 안전이라고, “개가 안 짖었는데요.” 할 수도 없고, “아마 그 벙어리의 개가∙∙∙∙∙∙”

“벙어리 갠지 누구 갠지 모르겠지만, 사실 우리 집엔 마당에 있는 개 그 한 마리면 충분한 거 아냐?

이젠 벙어리까지 개를 데려와서 정신 사납게∙∙∙∙∙∙ 이건 누구 책임이지?

참, 어제도 어떤 녀석이 장미를 뜯어먹고 있더구먼.(장미 먹는 개?)

당장 없애! 알았어?!”

뒷걸음질 쳐 밖으로 물러나온 가브릴로, 스테판을 불러, 그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 속삭입니다.

 

요즘 건강이 말이 아닌 마님은 한여름인데도 난로에 불을 때야하는 그런 상태입니다.

물론 장작을 나르는 것은 게라심 몫,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 게라심이 방으로 장작을 들고 들어갑니다.

무무가 항상 주인을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어디가 경계선인지 그 정도는 알고 있죠.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무무,

스테판이 뒤에서 다가와, 솔개가 병아리 채듯 낚아채,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갑니다.

마차에 올라, 시장으로 달려가, 적어도 한 주 동안은 묶어놓겠다는 약속을 받고나서, 단돈 1실링에 팔아넘깁니다.

그러고, 게라심에게 들키지 않으려, 뒤쪽으로 돌아 담을 넘어,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작전완료.

 

게라심이 나오니 무무가 없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뭐, 볼일 보러 나갔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런데,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합니다. 이렇게 오래 어디 간 적이 없는데∙∙∙∙∙∙

혹시 건초더미에서 놀고 있나? 아니면, 자기 혼자 먼저 다락방에 올라가 있나?

여기저기 허겁지겁 뛰어다녀 보지만, 귀여운 무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구경거리 났다고 모여드는 하인들에게 애절하게 물어봅니다. 요렇게 조그만 놈 혹 못 봤냐고 손짓해가며.

마부를 야단치는 집사의 모습을 본 게라심, 뭔가 느껴지는 것이 있는지, 쏜살같이 마당을 건너질러 밖으로 뛰어 나갑니다.

 

어두워진 다음에야 터덜터덜 돌아오는 그.

해쓱해진 얼굴에,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에, 또 흙투성이 옷에, 아마 시내 반은 다 뛰어다닌 듯.

마님 집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창문 하나하나 노려보다가, 또 그곳에 모인 하인들 얼굴을 노려보다가∙∙∙∙∙∙

다시 이쪽저쪽 고개 돌리며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무- 무’ 불러보다가∙∙∙∙∙∙

 

다음날 아침 주방에서 안치프카Антипка가 전합니다. 게라심이 밤 새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고.

게라심은 오늘도 여기저기로 뛰어다닙니다. 그 덕에 마부 뽀따프Потап가 대신 물을 길어 날아야 합니다.

저녁 식사 때 들어온 게라심, 그렇지 않아도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의 얼굴, 평소에도 생기하고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젠 아예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버렸습니다.

언제까지나 일을 팽개쳐둘 수는 없는 게라심에게 하인들이 진실을 들려줍니다. 무무가 마님한테 잘못 보여 내다버렸다고요.

 

달 밝은 밤. 게라심이 건초더미 위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누군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깁니다.

하지만, 누구도 상대하고 싶지 않은 게라심, 그냥 모르는 체, 차라리 눈을 감습니다.

그러자 그 누군지가 조금 더 세게 잡아당깁니다. 그래도 모른 척.

그랬더니, 아, 요 녀석 앞으로 튀어나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 것 아니겠어요?

목에는 못 보던 목줄이 걸려있습니다.

강아지도 주인도, ‘소리’ 죽이고, 치켜들고, 뽀뽀하고∙∙∙∙∙∙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누가 보는 사람 없나 두리번두리번, 다락방으로 직행.

이젠 누구의 눈에도 띄면 안 되게 되었으니, 문에 뚫었던 구멍도 외투로 꼭꼭 틀어막습니다.

 

무무가 돌아왔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

게라심이 측은해서, 게라심의 보복이 두려워 아무도 이야기를 못하지만, 결국 집사도 알게 됩니다.

옛날 타치야나 건 때는 무슨 아이디어라도 있었지만, 이번엔 속수무책束手無策.

이제 어떻게 해야지? 궁리궁리하지만, 방법은 오직 하나,

마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저~ 위’에서 도와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갇혀있는 답답함 조금이라도 풀어줄까, 남들 다 잠든 한밤중에 게라심이 무무를 데리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무슨 불행이람. 바로 이 집 담벼락에서 어느 술 취한 사람이 노숙하는 중.

킁킁 냄새를 맡던 무무가 짖어댑니다.

하필이면 바로 그날 저녁때 과식으로 속이 거북해 잠을 못 이루고 있던 마님, 무무가 짖어대는 소리를 듣습니다.

“얘들아, 거기 누구 없냐? 얘들아, 나 죽는단 말이야∙∙∙∙∙∙.”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듯,

“아이고, 나 죽는다, 저 개가 나 죽인다. ∙∙∙∙∙∙, 의사 좀 불러와라.”

하루를 잠 14시간에 한숨 10시간으로 보내는 이 (수)의사, 방에 들어서자마자 깃털 태워 만든 소독약을 휙휙 뿌리고,

신성한 기운을 불어넣었다는 딸기 즙을 은쟁반에 올려 바칩니다.

하지만, 노부인은 계속, “아이고, 저놈의 개∙∙∙∙∙∙”

타령은 멈출 줄 모르고∙∙∙∙∙∙, 무무는 계속 짖어대고∙∙∙∙∙∙,

게라심은 개에게 “제발, 제발∙∙∙∙∙∙ 좀” 애원하다, 얼굴이 하얘져 무무의 입을 꽉 틀어쥐고∙∙∙∙∙∙

 

의사는 하녀에게, 하녀는 스테판에게, 스테판은 가브릴라에게,

그래서 가브릴라는 집에 있는 사람들을 몽땅 다 깨우라고 지시하는 한편,

평소 설탕이나 차 빼돌릴 때 짝짜꿍하던 하녀 류보프Любовь를 시켜, 마님께 말을 전하게 합니다.

내일은 틀림없이 저 개를 없애겠노라고.

의사가 스무 방울 줘야하는 진정제를, 당황한 나머지, 마흔 방울이나 마님 입에 넣어주자, 마님은 잠에 곯아떨어집니다.

 

류보프랑 가브릴라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집 하인들 전부 건너 편 게라심의 다락방으로 몰려가고, 이웃집 아이들까지 모여듭니다.

그리로 오르는 계단에 한 명이, 또 다락방 앞에 두 명이, 몽둥이 들고 지켜서있고,

한 패가 방문을 두드리며, "문 열어!" 소리를 질러대지만, 반응이 없자,

이들은, 게라심이 귀머거리라 못 듣는 것이라며,

개구멍 막아놓은 외투를 밀치고, 그 속으로 막대기 집어넣어 흔들어댑니다.

아직도 주둥이가 잡혀있는 무무가 끙끙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는데,

막상 게라심은 사람들 속 타게도 아직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이 확 열리자, 모두가 겁먹고 흠칫 뒤로 물러섭니다.

책임이라는 것이 있는 가브릴라가, 권위라는 것을 앞세워, 마님이 개를 죽이라한다고 열심히 손동작을 합니다.

게라심은 그 동작을 맞받아서 개의 목을 한 바퀴 돌리는 시늉을 합니다. 자기가 직접 죽이겠다는 뜻?

그 약속 어찌 믿을 수 있나, 가브릴라가 설득을 계속합니다.

게라심은, 비웃는 듯 조롱하는 듯 얼굴에 이상한 미소를 띠더니, 자기 가슴을 쾅쾅 치고, 문을 쾅 닫습니다.

할 말 잃은 사람들, 그저 서로 얼굴만 마주볼 뿐이죠.

가브릴라이가 “이 친구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잖아∙∙∙∙∙∙.” 어쩔 줄 몰라 하는데,

하인들이 위로해줍니다. “게라심은 한 번 한다면 반드시 하는 사람이에요. 믿어보세요.”

결국, 방 앞에 예로쉬카Ерошка를 보초로 세워놓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알려 달라 해놓고, 철수합니다.

 

야단법석 한 시간 후, 게라심이 다락방 문을 열고 끈에 맨 무무를 앞세우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가 가진 옷 중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입은 듯, 말끔한 차림입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예로쉬카, 말없이 옆으로 비켜 길을 터줄 수밖에.

 

마당에 있던 꼬마들이 이 이상한 광경에 모여드는데,

게라심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길로 나섭니다.

손에 들었던 모자를 머리 위로 누른 가브릴라가 예로쉬카에게 지시합니다.

이 사람을 따라가 보라고,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라고.

 

게라심이 무무를 데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갑니다.

식당주인은 그를 잘 알죠. 그의 수화手話도 다 알아들을 정도의 사이입니다.

“양배추 수프에 고기 좀 넣어 주시겠어요?”

테이블위에 손을 얹고 있는 주인 옆에서, 무무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는데,

가만히 보니, 주인만 차려입은 것이 아니라, 무무도 방금 빗질을 한 모양입니다. 털도 매끈매끈합니다.

 

수프가 나오자, 마치 무슨 의식을 진행하듯,

게라심은 빵을 부숴 수프에 넣고 고기도 잘게 잘라, 그 그릇을 무무 앞,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세련된 자세로 무무가 수프에 코가 닿을락말락한 거리에서 수프를 핥기 시작하자,

조용히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던 게라심의 눈에선 눈물이 흐릅니다.

한 방울은 수프에, 또 한 방울은 무무의 머리에.

 

딱 반 그릇만 비운 무무가 혀를 날름거리며 주둥이를 닦자, 게라심이 일어나 음식 값을 치릅니다.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는 종업원은 그저 혼란스러운 눈치입니다.

모퉁이 뒤 멀찌감치 떨어져 살펴보고 있던 예로쉬카가 미행을 계속합니다.

 

무무의 목 끈은 여전히 묶여있는 상태. 주인과 무무, 서두를 것 뭐 있나, 여유롭게 산보를 계속합니다.

게라심이 길목에 있는 건축현장에 들어가 벽돌 두 장을 끄집어내옵니다.

크리미 부두Крымскому Броду. 잠시 멈추는 것처럼 보이던 게라심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미리 봐두었던 듯, 게라심이 보트 두 대가 묶여있는 곳으로 가, 망설임 없이, 무무를 안고 보트에 올라탑니다.

보트관리인인 듯 보이는 노인이 절뚝거리며 뛰어옵니다.

게라심은, 아랑곳 않고, 있는 힘 다해 노를 젓습니다.

노인은 포기한 듯 다시 창고로 돌아옵니다.

 

게라심은 물을 거슬러 계속 위로 또 위로 노 저어 올라갑니다.

한 200m 갔을까, 모스크바 제방도 저 멀리, 시장 모습도 저 멀리에 보이고, 어느덧 농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게라심이 젓던 노를 내려놓자, 배는 다시 도시가 있는 아래쪽으로 떠내려갑니다. 뱃바닥에는 이미 물이 잔뜩 고여 있는 상태.

 

맞은편 자리 마른 곳 앉아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무무. 게라심이 고개 숙여, 무무의 목을 잡아 올려봅니다.

분노에 찬 그의 모습. 벽돌을 끈으로 묶고, 올가미를 만들어, 무무의 목에 두릅니다.

그가 무무를 집어 올려, 마지막으로 힌 번 쳐다보는데, 그때까지도 무무는 겁을 내기는커녕 꼬리를 살살 흔들고 있습니다.

게라심이 얼굴을 찡그립니다. 고개를 돌리고, 손을 비비고, 눈 지그시 감고,

무무를 물에 던집니다.

 

게라심은 무무의 날카로운 비명을 들을 수 없습니다. 무무가 텀벙 빠지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이 시끄러운 세상 그에겐 조용하기만 합니다.

다시 눈을 뜬 게라심의 눈에 강의 잔물결 모습이 들어옵니다.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고 밤이 늦어졌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게라심을 하인들이 걱정합니다.

혹시나 뭐라도 있을까 그의 방을 샅샅이 뒤져보지만 뭐 별다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갑자기 못 참겠다는 듯, 스테판이 죽 그릇 부~욱 긁으며 소리칩니다.

“그 사람 여기 왔었단 말예요. 저랑 문에서 마주쳤거든요.

개가 어떻게 됐는지 물어보려는데, ‘저리 비켜!’ 하듯이 절 밀치더라고요.

그 사람은 밀쳤는지 모르지만, 전 그저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 같아서∙∙∙∙∙∙.”

가브릴라가 말합니다.

“게라심은 도망갔던지 아니면 개와 함께 물에 빠져 죽었을 거야.

 경찰에도 신고하고, 또 노부인에게 알렸는데∙∙∙∙∙∙”

 

이 노부인 모습 좀 보소. 눈물 펑펑 쏟으며 하는 말이,

“내가 언제 개 없애라고 했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게라심을 찾아와!”

 

결국 시골에서 소식이 옵니다. 게라심이 거기에 와있다고.

평정을 찾은 노부인은, 당장 다시 돌려보내라 했다가, 곧 이어 취소합니다. 그런 은혜도 모르는 인간은 필요 없다고.

그리고 며칠 후 이 노부인도 무무가 간 저 세상으로 떠납니다.

 

노부인의 자식들은 노예들을 일 년 치 품값으로 다 풀어줍니다.

하지만, 게라심만은 놓아줄 수가 없답니다.

게라심은 그 후 계속 시골에서 살고 있답니다.

여자하고 개한테는 눈도 돌리지 않고 홀로 조용히 살았답니다.

 

영어 : http://www.online-literature.com/turgenev/1972/

러시아어 : http://www.world-art.ru/lyric/lyric.php?id=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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