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샬롯 길먼의 ‘누런 벽지’

뚝틀이 2015. 12. 16. 00:38

Charlotte Perkins Gilman(1860-1935), The Yellow Wallpaper 1892

 

 

고색창연한 건물의 방을 여름에 얻는다는 것, 그게 어디 우리 같은 보통사람에게 쉬운 일인가요?  

무슨 전통이 배어있는 그런 분위기에 집 생김새도 위압적인데, 내 생각에는 유령이 나오는 집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오래 비어있었고, 또 이렇게 싼 값에 나올 수 있죠?

 

내 남편 존John은 의사입니다. 아마 그래서 내 회복이 더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끼적거리다 버리는 종이에나 쓸 수 있을 뿐입니다.

 

남편은 내가 아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명망 높은 사람이, 더구나 남편이라는 바로 그 사람이,

   “이 사람은 약간의 히스테리 경향이 있을 뿐, 일시적인 우울증입니다.”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잘라 말하는데, 내 뭐 어쩔 수 있겠습니까.

오빠 역시 명망 높은 의사인데, 그도 마찬가지로 얘기합니다.

 

난 회복될 때까지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답니다.

내 생각으론 뭔가 기분 좋은 일을 하면서 약간 흥분도 해가며  변화를 겪는 것이 좋을 텐데도 말입니다.

때때로 난, 지금 이 상태에서도, 사회적 접촉 유지하며 약간의 자극도 느끼는 그런 것을 바라지만,

남편 생각으로는 그런 것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랍니다.

고백하건데, 그것이 나를 참 화나게 만듭니다.

 

어쨌든, 어쩔 수 없는 이 상황. 난 여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여긴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마을에서도 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길에서도 안쪽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엔 뭔가가 이상합니다. 틀림없이, 꼭, 유령이 나올 것 같습니다.

달 밝은 어느 밤, 남편에게 내 그 얘길 했더니, 바람 때문이라며 창문을 닫더군요.

난 때때로, 남편에게 화를 냅니다. 내 자신도 이해 못할 정도로요. 지금의 내 신경상태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내 스스로를 다스리려 애쓰는데, 그러다보면 그와 함께 있는 게 너무 피곤해지곤 합니다.

 

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방이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원래 나는 베란다에 장미도 아름다운 아래층을 원했는데 남편이 반대했죠.

그 방엔 창문이 하나뿐이고 침대도 하나밖에 안 들어가고, 또 자기가 따로 쓸 옆방이 없다나 뭐 그런 이유로요.

 

남편은 매우 자상하고 주의 깊습니다.

거의 시간 단위로 처방을 내려주는데, 그런 정성을 무시한다면 그건 정말 몰염치한 거겠죠?

그의 말에 의하면, 전적으로 날 위해서 여기 온 것이랍니다. 신선한 공기 흠뻑 취하라고 맨 위층 방을 얻었다 하고요.

 

이 방은 공기도 시원하고 빛도 잘 들고, 창으로 사방을 볼 수 있고, 층 전체를 다 차지할 정도로 큽니다. 

원래는 보육원이었는데 아이들 놀이방이 되었다가 우리가 들어온 것이라는데, 애들을 보호하려 그랬는지 창살도 튼튼합니다.

벽지 꼴로 보건대 사내아이들이 있었던지, 침대 머리맡에는 아이들 높이까지 큰 덩어리가 떨어져나갔고,

내 평생 이렇게 흉한 곳은 처음입니다.

 

이 화려하도록 불규칙한 무늬들, 그 모양들을 쫓아가다보면 눈이 어지럽습니다. 글쎄 예술적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쭉 나가던 곡선이 화가 난 듯 각도를 휙 트는가 하면, 이상하게 뒤틀리면서 스스로를 파괴하곤 합니다. 말하자면 線들이 자살하는 것이죠. 

또 색깔은 어떻고요. 연기에 거슬린 듯 지저분하게 누런 것이 햇빛 각도에 따라 스멀스멀 움직여나가는 것 같아, 역겹기 그지없고,

아직 오렌지색으로 남아 있는 곳에서는 유황 느낌까지 납니다.

아이들이 이곳을 얼마나 싫어했을까요.

 

  남편이 옵니다. 이 글을 치워야합니다.

  그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난 이 고약한 방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곤 합니다.

  내 기운이 떨어져 못 쓰는 경우를 제외하곤, 내 글쓰기를 방해할 그 무엇도 없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나가있습니다.

  때로 중한 환자가 있을 경우엔 밤에도 못 들어옵니다.

  난 내가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는 게 기쁩니다. 

  그래도 내 증세가 걱정되긴 합니다.

  남편은, 이 사람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그래서 그는 마음을 놓고 있습니다.

     "그저 신경성뿐인데 뭘, 그 때문에 내 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그를 편하게 해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짐이 되어 있다니.....

  옷을 입고, 이야기를 나누고, 뭐 그런 것도 내겐 얼마나 힘든지 아무도 모릅니다.

 

메리Mary가 애기를 잘 봐줘 다행입니다.

얼마나 귀여운 아기인데요. 그런데 난 내 신경성 질환 때문에 애기와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남편은 평생 불안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벽지에 대해 불평할 때도 그냥 웃어넘겼지요.

   처음에는 벽지를 새로 해주겠다고 했다가, 그런데다 신경을 쓰는 것이 내 건강에 해로우니 그냥 놔두자며,

   벽지를 바꾸고 나면, 다음은 침대, 다음은 창틀, 그 다음은 계단 손잡이, 뭐 이런 식으로 계속나갈 것 아니냐고 하면서요.

   지금 이대로도 내가 좋아지고 있는데, 겨우 석 달 세 들어 있는 이 집에 공사를 벌이고 싶지 않다면서요. 

그러면, 우리 이제 그 예쁜 방들이 있는 아래층으로 옮기자고 하니까,

그가 날 꼭 껴안아주며, 원한다면 지하실로도 갈 수 있다 하더니,

여기 침대랑 벽지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인 모양입니다.

물론 난 내 변덕스러운 기분으로 남편을 불안하게 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흉측한 벽지만 빼고 보면, 여기는 방도 넓고 정원의 꽃과 나무도 내려다보이고,

그리고 또 내가 이제 이 방에 익숙해져가고 있지 않은가요?

 

또, 난, 저기 내려다보이는 만, 이 집에 속한 선착장, 여기서 그리로 가는 그늘 드리운 길, 난 그 모습들을 좋아합니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그려보는데, 남편이 또 주의를 줍니다.

글쓰기 좋아하는 내가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 쉬 흥분되고, 그러면 내 신경쇠약이 도질 수 있다고요.

그래서 난 내 스스로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난 벽지를 보고 있습니다.

목이 부러진 것처럼 선이 푹 꺾인 곳도 있고, 둥그런 눈이 거꾸로 매달려서 날 노려보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 모양들이 있는 지점에 내 눈이 자꾸 되돌아오고, 그들이 건방지게 떡 버티고 있는 그곳을 보면 화가 납니다.

선들이 위아래로 또 옆으로 기어 다니며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이런 다양한 표정을 보다보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겁이 나기도 합니다.

 

예전에 내가 있던 사무실, 거기서 내 친구는 의자였습니다.

무엇인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난 그 의자에 폴짝 뛰어 앉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바닥도 찢기고 뚫리고 터지고, 침대도 마치 전쟁을 겪은 것 같습니다.

뭐, 좋아요. 그래도 다 좋아요. 내가 싫은 것은 오직 저 벽지뿐입니다.

 

제니Jennie가 옵니다. 이제 이 글을 감춰야합니다.

이 시누이도 굳게 믿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 이렇게 글을 쓰기 때문에 아픈 것이라고요.

그래서 난 그녀가 창문 멀리로 내려다보일 때 그때만 글을 쓰곤 합니다.

  

빛이 어떤 특정 방향으로 들어올 때, 그때 비로소 보이는 무늬들도 있습니다.

몰래 기어들 듯 사람의 마음 거슬리는 그런 무늬들이죠. 

 

이제 시누이가 계단을 올라옵니다.  

독립기념일 연휴 한주일 동안, 어머니와 넬리Nellie 또 아이들이 이곳에 와 북적거렸는데, 이젠 그들도 다 돌아갔습니다.

물론 난 꼼짝도 못했고, 일처리는 다 제니 몫이었지만, 그래도 내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은, 내 회복이 너무 더디면, 날 미첼Weir Mitchell에게 보내겠다고 합니다.

(작가 길먼은 당시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미첼은 이런 치료법을 주장하던 유명 의사의 실제 이름입니다.) 

난 절대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곳에 내 친구 한명이 있는데, 그는 내 남편이나 내 오빠보다도 훨씬 더한 인간이라고 합니다.

 

난 점점 더 신경질적이고 도발적이 되어갑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울곤 합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울며 지냅니다.

물론 남편이나 누가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은 척 하고, 나 혼자 있을 때만 말입니다.  

난 요즘 대부분 혼자 있습니다. 남편은 계속 바쁘고, 제니는 내가 원하면 날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래서 난 정원을 또 그 예쁜 길을 조금 걷다, 또 아래층 장미꽃 옆에 앉아 있다, 방으로 돌아와 눕곤 합니다.

 

벽지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벽지 때문에, 난 이 방이 좋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난  벽지 무늬들을  방구석 밑 부분으로부터 하나하나 훑어 올라가며 분석해나갑니다.

물론 무슨 규칙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는무늬들을 말입니다.

대각선 방향으로 달리다 해초처럼 구불구불거리고,

폭이 넓어지며 피어나다 환상적으로 폭발해 어정쩡한 기둥 모양을 만들고,

또 저녁 무렵에 빛이 낮은 각도로 들어오면, 구석 한곳으로부터 사방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뻗어나가고.....

그렇게 살피다보면 난 지쳐서 잠이 들게 됩니다.

 

그런데, 참, 지금 내가 이런 걸 왜 쓰고 있죠?

남편이 보면 참 모를 일이라고 할 테지만, 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쓰는 일도 내게는 힘에 부친다는 것이죠.

 

남편은 내가 기력을 되찾아야 한다며, 온갖 맛있는 음식이랑 귀한 약들을 마련해옵니다.

그런데, 이제, 내게는 차분히 생각하는 것 그것조차 힘겹습니다.

남편은 나를 안아 위층으로 데려와 침대에 눕히고, 지칠 때까지 책을 읽어줍니다.

내가 자기의 사랑이요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하면서, 제발 몸을 잘 챙기라고 합니다.

나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날 돌볼 수는 없는 일이라며, 절대 상상 같은 것은 하지 말랍니다. 

다행인 것이 있다면, 내 아기가 잘 크고 있고 그 아이가 여기서 이 끔찍한 벽지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벽지엔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겉 패턴 뒤에 형상들이 숨어있데,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뚜렷해집니다.

구부정한 자세의 여인들이, 수많은 여인들이, 저 뒤에서 기어 다니고 있는데 난 그들이 싫습니다. 정말 싫습니다.

하루 빨리 어서 남편이 날 여기서 빼어 내줬으면!

 

난 때때로 달빛도 싫습니다. 이 창문으로 또 저 창문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오는 달빛이.

어젯밤에도 그랬습니다. 곤히 잠든 남편을 깨우기 싫어, 달빛이 울퉁불퉁한 벽지를 비치는 것을 홀로 보고 있는데,

그런데, 그 뒤에 있던 희미한 형상들이 벽 무늬를 흔드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래서 확인하러 일어나 벽지를 만져보고 돌아오는데, 남편이 깨어나,

   "What is it, little girl?"

하며 걱정해주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단 감기에 걸린다고요.

그래, 난 옳다 이때가 기회로구나 하고, 제발 날 여기에서 빼어내 달라 했더니,

   "Why darling!"

하면서, 아직 여기 계약이 3주나 남았고, 집은 아직 수리 중이고.....

   "당신이 위험하다면 모르겠지만, 또 더구나 내가 의사로서 판단하기에, 

    당신 혈색도 돌아오고, 몸도 불어나고, 이렇게 좋아지고 있는데∙∙∙∙∙∙∙"

아 글쎄, 이러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 난,

   "그건 당신이 몰라서 하는 얘기고, 난 사실 당신이 없을 때는 거의 먹지도 않아."

하고 실토했더니, 아, 글쎄,

   "Bless her little heart!

    내일 낮을 생각해서라도 지금 자두는 것이 좋아.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러면서, 그냥 다시 잠에 빠지는 것 아니겠어요? 

 

난 곰곰이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벽 무늬 앞의 패턴과 뒤의 패턴이 동시에 움직였는지, 아니면 따로따로 움직였는지.

참, 나 말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 패턴이 빛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참, 또 하나 있네요. 내가 오랫동안, 아침, 낮, 저녁, 또 밤에까지 관찰해 알아낸 사실인데,

앞의 무늬는 철창이고, 뒤의 무늬는 여인들입니다.

 

남편은 내게 잠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며, 이제는 식사 후에는 꼭 나를 누워있게 합니다.

난 그때마다 잠든 척하지만, 물론 잠이 드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난 내가 깨어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습니다.

이것도 사실 기만 아닌가요?

그러다보니, 남편이 서서히 무서워지기 시작합니다.

남편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하고, 이젠 제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일종의 과학적 가설이라고나 할까?

움직이는 것은 패턴이 아니라 벽지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또, 이건 내가 확인한 사실인데,

남편도,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벽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합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어느 날 보니 제니도 마찬가지로 벽지를 보고 있었습니다.

곁에 내가 서있는 것을 보자, 마치 몰래 무슨 일하다 들킨 사람 모양으로,

그녀가 화를 내며 말하더군요. 

   벽지가 하도 낡아 아무데나 묻는다고,

   그 노랑이 내 옷에 묻곤 하니까, 신경 좀 써달라고요.

비록 그녀가 이렇게 말을 딴 데로 돌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난 압니다.

그녀도 패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난 결심했습니다.

내가 이 벽지의 비밀을 제일 먼저 알아내리라.

목표의식이 생기면 누구나 다른 사람이 되게 마련이죠.

난 이제 식사도 잘하고, 말도 좀 더 아낍니다.

남편이 활짝 웃는 낯으로 말합니다.

벽지에도 ‘불구하고’ 내가 활짝 피고 있다고요.

난 벽지‘때문’이라고 그의 말을 고쳐주려다 참습니다.

그러면, 어쩌면, 날 이상하게 생각해, 다른 데로 데려갈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어요?

 

벽지의 비밀을 알아내는 데에는, 이제 한 주일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난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밤에는 벽지를 살펴보느라 눈 제대로 못 붙여, 낮에는 피곤하고 혼란한 상태에서 잠이 들곤 합니다.

 

곰팡이는 계속 새로 생겨나고, 그 위로 노란 색조가 번져나가곤 합니다.

버터조각처럼 예쁘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고약하게 부패한 누렁덩이로 말이죠.

어휴, 그 냄새!

맑은 날이 계속될 때는 그래도 좀 참을 만 한데, 궂은 날만 계속되다보니 집안이 고약한 냄새로 가득합니다.

식당, 거실, 홀에는 말할 것도 없고, 계단에 또 심지어 내 머리에까지.

밤에 자다 일어나 보면 그 냄새가 내 몸을 칭칭 감고 있습니다.

이 집에 불을 지르면 이 냄새도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데,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

냄새에도 색깔이 있습니다.

노란 냄새, A yellow smell!

 

끈질긴 관찰 끝에 내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앞에 있는 패턴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당연하죠. 그 뒤에 있는 여자가 이걸 흔들어대고 있는 것이니까요! 

어떤 때는 혼자서, 어떤 때는 떼로 기어 다니며 흔들어댑니다.

밝을 때는 가만히 있다, 어두워지면 기어오르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패턴을 통해 기어오를 수는 없습니다.

그 패턴이 그들을 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머리가 많습니다.

그들이 올라오면, 패턴이 그들을 조이고, 거꾸로 매달리게 해, 눈이 하얗게 뒤집히는 것입니다!

 

난 압니다. 이 여자가 낮에 기어 다니는 그 여자라는 것을요.

대부분의 여자는 말이죠, 낮에 기어 다니는 그런 짓을 않거든요.

난, 이 여자가 나무 밑으로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체 했습니다.

대낮에 기어 다니는 모습을 들켰단ㄴ 것을 너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요. 

 

난 낮에 기어 다닐 때는 방문을 걸어 잠그는데, 밤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남편이 눈치 챌 것이기에.

남편은 이제 아주 이상해졌습니다. 난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난, 때로, 이 여인이 밖으로 나가, 흘러가는 구름 그림자처럼 빠르게 기어가는 것도 봅니다.

이들을 한꺼번에 풀어줄 방법은 없을까?

있습니다. 내개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난 내 비밀을 쉽게 털어놓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날은 단 이틀, 남편이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좋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제니에게 묻습니다.

밤새 내 숨소리가 워낙 고르니 잠자는 것이 아니라 의심되는 모양입니다.

내가 낮잠을 많이 잔다는 제니의 대답에 남편이 또 뭐 이것 저것 묻습니다.

마치 날 끔찍이도 사랑하는 양 말입니다.

내가 그 속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만세! 드디어 마지막 날입니다.

거기다, 남편은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엔 돌아오지 못한다고 하니, 이제 시간은 충분합니다.

제니가 내 방에서 같이 자겠답니다.

교활한 것 같으니! 난 혼자 자는 것이 편하다고 그녀를 물리칩니다.

드디어, 달이 뜨자, 그 여인이 기어 다니며 패턴을 흔들기 시작하고, 난 달려가 그녀를 도와줍니다.

그 여자는 흔들고 난 당기고 그렇게, 우리는 새벽이 오기 전에, 엄청난 양의 벽지를 뜯어냅니다.

방을 빙빙 돌아가며, 내 손이 닿는 높이까지 다 뜯어냅니다. 

 

해가 뜨자, 그 끔찍했던 패턴들이 날 보고 웃기 시작합니다.

   "좋았어.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마치고야 말 거야!" 

제니가 놀란 얼굴로 벽을 쳐다보기에, 이걸 내가 다 해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더니,

그녀가 웃으면서, 피곤 할 텐데, 자기가 할 걸 그랬다고 그러더군요. 그 속마음을 내가 모를까요? 

그녀가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 하기에, 난, 이제 여기가 텅 비었고 또 조용하니 여기서 자겠다고, 저녁이 되어도 날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방, 이제 여기에 남은 것은 천으로 된 매트리스 하나만 덜렁 놓인 침대뿐입니다.

 

이제 난 이 방이 좋습니다. 이제 맨 벽이 되었으니까요.

난 이제 밖으로 나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열쇠를 앞 길 쪽으로 던져버립니다.

남편이 올 때까지는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싶습니다.

 

침대를 옮기면서 작업을 하려했는데, 이 침대 밑에 못이 박혀 고정돼있습니다.

할 수 없이 손이 닿는 데까지 만이라도 뜯어내려는데, 참 지독히도 떼기 힘듭니다.

패턴도 그런 사실을 즐기고 있습니다!

휑한 눈들이, 목이 조여진 머리들이, 또 어기적거리는 곰팡이들이, 조롱하듯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난 화가 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생각도 해봤지만, 단단히 박힌 철창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더구나, 창밖에는 그 여인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잖아요?

그 여인들도 모두 나처럼 벽지를 뜯고 나왔을까요? 

 

난 이제 걱정을 않습니다.

로프로 내 몸을 이렇게 단단히 묶어놨으니, 밖에서 제아무리 날 끌어내려 해도 난 절대로 떨어지지 않죠!

어쨌든 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제니가 불러내려 해도 말이에요.

 

이렇게 넓은 방에서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으니 좋기는 좋습니다.

밖에 나가면 바닥을 기어야하는데, 거기는 노랑이 아니고 다 초록색이잖아요,

더구나 여기서는 아무리 어깨를 부딪치며 기어 다녀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고요.

 

저런! 남편이 왔습니다!

   "여보!"

아무리 그래도 소용없어요. 그 문은 절대 열리지 않아요!

저런, 저런! 저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며 문을 두들겨대다니!

그가 도끼를 찾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문을 부순다는 건 사실 수치 아닌가요? 하지만 할 수 없으니 그러겠죠?

내, 알려줄 밖에.

   “여보, 열쇠는 저 앞 파초 밑에 있어요.”  

남편이 열쇠가 아니라,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합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열쇠 있는 곳까지 알려주었잖아요. 

몇 번, 같은 상황이 반복된 후, 남편이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맙소사, 당신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난 계속 기어 다니며, 어깨위로 고개를 들어, 남편을 쳐다보며 외칩니다.

   “난 나왔어! 드디어! 당신과 제니가 막았어도 말이야!

    내 이제 벽지를 다 뜯어냈으니, 날 다시 그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을 거야!”

 

그런데 이 사람, 기절할 건 또 뭐람!
남편은 내가 기어가는 코스를 막고 쓰러졌고, 그래서 난 매번 그를 넘어서 기어갑니다!

 

 

http://www.gutenberg.org/files/1952/1952-h/1952-h.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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