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이 시간, 요즘은 낮이나 밤이나 음악을 듣는 것이 일이다.
하긴, 이렇게 음악에 빠져 산 적이 또 있기는 있었다. 바로 졸병 시절.
고참병이 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택한 것은 야간 근무.
송신소에 앉아, 노트에 선 다섯 개를 그려 넣고, 철통으로 된 라디오의 채널을 VUNC에 맞춰놓고,
귀 바짝 기울여가며 ‘주제 멜로디’를 따라 적으며......
(내 그렇게 분신처럼 아끼던 라디오를 왜 부대에 놔두고 제대했는지, 아쉽다.)
제대 후에도, YMCA의 노래 서클로 가 당시까지만 해도 미개척지였던 팝송 개발 작업에 참여하고,
또 더블 쿼르텟 공연을 앞두곤 이쪽 연습에 온 시간 다 바치고,
주말에는 Camp Casey에서 성가대를 하고,
아르바이트 틈틈이 르네상스나 디쇠네에서 음악 감상,
또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가 있으면 거의 개근을 하고,
(표 살 돈 아끼려, 사진관을 통해 건물 밖으로 창문 타고 오르다,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진땀나는 곤경을 겪고도 얼굴 두껍게 들어갔던 그날 프로그램이 바로 브람스의 이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더구나 명동 국립극장(지금은 없어졌지만)에서 현대음악 축제가 열릴 때는 거의 ‘사명감’ 차원에서 참여하고....
돌이켜보면, 그때는 정말 음악이 본업, 학교 수업이야말로 부업이었다.
그러다가, 4학년 때 잘츠부르크 음악제와 루체른 음악제.
정신이 버쩍 들어 보니, 취직할 회사는 적당한 곳이 눈에 띄지 않고, 공무원 길은 싫었고,
독일 정부 장학금DAAD에 응시, 2차까지 붙고 난 다음에야 알게 된 사실, 석사학위가 없으면 자격이 없다고.
어쨌든 그때 학사학위만 소지한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예외적으로 선발되었고,
검푸른 숲속Schwarzwald의 그림 같은 마을Schwäbisch Hall에서,
당시 내가 우러러보던 첼리스트 그분과 한 집에서 묵으며,
(어학보다는 음악이 우선인 그, 그의 ‘첼로 독주회’를 원 없이 감상하곤 했다.)
하필이면 소르본느 대학의 독문학과 여학생들과 한 반,(이 말괄량이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들이었다.)
이들에 비해 완전 절망적 수준인 나를 위해 개인교습까지 마다않고 베풀어주던 그 친절한 선생님,
이곳 사람들 참 건방지고 불친절하다는 내 불평에 그곳 ‘부자’가 베푼 고급 식당에서의 코스....
(수백 명 앞에서 기타를 치며 아리랑을 배워준 적도 있었지.)
대학으로 가, 어학 인정시험을 봤는데, 발표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점수를 받는데,
나는 유일하게 점수도 없어, 이 무슨 낭패인가, 담당자를 찾아가 물어보니, befreit라고.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모르냐며, 점수에 따라 앞으로의 어학 코스 기간이 정해지는데,
나는 그런 코스에서 면제되고, 곧 바로 전공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가만 생각해보니,
듣고 정리하기 문제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예.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듣기는 했지만 그 내용 재현이 힘들었을 것이고, 난 잘 못 알아들었지만 재생은...
(참 겁도 없었다. 그 덕에 역시 수백명 모인 곳에서 '통역'의 일도 맡은 적이 있었으니....)
학제가 다른 그곳에서, 디플롬 과정을 새로 밟아야 하는데, 졸업 전에 6개월간의 현장실습은 필수.
그래서 택한 곳이 지멘스Siemens의 에얼랑엔Erlangen 연구소.
(지금 이 곡이 연주되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 음악홀, 그래서 옛 추억이.....)
매일 출퇴근 30분씩 숲길을 자전거로 달리며 그때 처음 ‘인공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졌었다.
또 가까이 있는 뉘른베르크Nürnberg에도 가곤 하면서, 뒤러Dürer(여기)라는 화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그때 토끼 뒷다리를 구어 먹고 싶어, 구하고 구하다, 결국 800km나 떨어진 ‘고향’으로 기차를 타고가....)
지금 듣고 있는 이 곡의 피아노는 대니얼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이 바렌보임을 ‘피아노 치는 지휘자’로서 보다는 내가 그를 알았던 것은 자클린 뒤프레Jacqueline du Pré의 남편.
요즘으로 치자면 글쎄 요요마보다, 아니 적어도 그만큼 인기가 있었던 천재 첼리스트 그녀,
하지만 몸이 굳어지는 병에 걸려 일찍이 연주생활을 중단해야했던 그녀.....
아름다웠던 시절,
그때는 요절한 작가 전혜린을 사랑했고, 또 이 뒤프레를 사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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