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아침 뷔페

뚝틀이 2016. 1. 10. 17:13

바다 건너온 사람을 만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확실히 이곳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풍경.

오늘, 아니 어제, 여기서 무슨 어린이 행사가 있었던 것인가?

예를 들어 6세 이하 어린이를 데리고 오면 호텔이 반값 뭐 그런 것?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요즘 같은 ‘아이 기피 세상’에 보기 드문 그런 모습이다.

 

저쪽 테이블에 앉은 중년의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앉힌 아이를 내려다보는 미소 듬뿍 그 표정,

아마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라, 그동안 사업에 바빠 신경을 써주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에, 더 귀엽게 봐주는 모양이다.

얼마 후, 그 옆에 아기 엄마가 와 앉고, 아이는 엄마에게 함박웃음을 보이며 뭐라고 조잘댄다.

그 엄마가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데, 남편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모습.

부부란 이런 것이로구나. 내가 이 아이를 낳고 키우는 거예요. 

이것이 아이를 낳은 엄마의 진정한 권리요 가치.

그 엄마에게 보내는 남편의 다정한 눈길.

 

그러면 그렇지, 어딘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는데, 젊은 여자가 접시를 들고 온다.

무슨 파티 장에라도 온 듯 화려한 옷차림이다. 이 여자가 엄마. 아이는 할머니와 있었던 것.

그러면 그렇지. 내가 본 그 ‘젊은’ 남자와 ‘나이 든’ 여자는 부부가 아니라, 어머니와 아들이었던 것.

하긴 요즘 화장술이 좋고, 또 의술도 좋아, 여자들이 얼마든지 젊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여자는 보톡스 주사께나 맞은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젊은 여자가 너무 젊다.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아들이 아니라, 장모와 사위?

 

상상은 자유, 곧 진실이 밝혀진다.

저쪽에서 젊은 남자가 편한 차림으로 나타난다.

아마 늦잠 자다 눈 비비고 나와 이제야 합류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처음 봤던 그 사람들은 부부가 맞고, 젊은 여자는 딸이고 이 사람은 사위?

아이는 아빠가 반가운지, 뭐라고 조잘대더니, 의자에서 내려 그의 손을 잡고 저쪽 음식 있는 곳으로 이끈다.

 

생각은 내게로 돌아온다. 내 젊었던 시절, 출장을 갈 때마다, 그 고급호텔 아침 자리에서,

아이들 손을 잡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식사를 하는 부부를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내 돈’으로 ‘이런 호텔’에 묵어보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꿈은 이루지를 못하다가,

결국 한 번은 ‘멀리 떨어진 호텔’의 프로모션 티켓을 구해,

몇 시간씩이나 차를 달려 그곳으로 가, ‘폼 비슷한 것’을 잡으며,

장난끼 가득하게 룸서비스 전화로, "프리스 기부미 풀라이드 치켄...." 해서도 '군말없이' 배달을 받으며,

'돈 앞에서는' 영어 발음이 맞고 틀리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바로 언어, 세계언어'라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끝.

 

그런데, ‘바다 건너온’ 이 친구의 이야기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얼마나 여유 있게 지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힘든지 그런지 그런 분위기.

서울 집을 팔고 제주도로 가면서, 차액을 은행에 집어넣고,

서울 올 때마다 호텔에 묵으며 사치 하는데,

그래도 그 이자를 다 쓰지 못하니 결국은 플러스라, 자기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는데....

 

내 생각을 정리한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오늘 이 아침 값은 내가 내야 할 모양인데....

내가 드는 이 접시들이 일반 식당에서라면 얼마일까 ‘환산 가격’의 합을 내보아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접시 값만 더할 것이 아니라, 분위기 값을 더해야지, 사실 그것이 더 중요한 요소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제대로 값을 치루는 것 같아, 카운터에 카드를 내미는 내 마음이 좀 가벼워진다.

그런데, 이 무슨 일, 계산서를 보니 겨우 요것 밖에 안 되었던가?

내가 그동안 ‘저녁 뷔페 값을 생각하며 너무 높게 잡았던 것, 아침 값은 그 반밖에 되지 않는다. 

 

발렛 파킹 티켓을 내미니, 바로 입구 저쪽에 세워뒀던 이 친구의 포르셰가 다가온다. 

내가 계산한 것이 너무 성급했던 것은 아닌가? 난 항상 이런 식?

본전 생각에 내 너무 과식했던 것인지 속이 거북해온다.

빨리 약국에 가서 소화제라도 사야할 것 같다.

급하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다.

이런 미련한 녀석 같으니라고. 이런, 이런....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침대에서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꿈속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제, 아니 아까 새벽에, 라면을 끓여 먹은 것이,

이런 초라한 내 신세를 한탄하면서 꾸역꾸역 집어넣은 것이,

그것이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이런 꿈을 꾸게 했던 모양이다.

전화기를 눌러 보니, 아침 먹을 시간이 훨씬 넘었다. 아니, 점심 때.

이제 슬슬 호텔로 떠나볼까?

아서라,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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