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부-
chap. I
라스꼴리니코프는 이제 빠져나갈 수 없는 안개에 둘러싸인 느낌입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소냐의 집에서 그와 마주치곤 하는데,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그 일’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며칠 후 그가 옵니다. 이제 아이들을 맡길만한 집을 찾았다고요. 그러면서 그가 오히려 라스꼴리니코프를 북돋습니다.
그렇게 찡그리고 있지만 말고 산보도 좀 다니라고요.
"What all men need is fresh air, fresh air... more than anything!"
카테리나의 관 앞에 무릎 꿇고 앉아있는 아이들 모습.
과연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라스꼴리니코프가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No, better the struggle again! Better Porfiry again... or Svidrigaïlov.... Better some challenge again... some attack. Yes, yes!”
그가 밖으로 뛰쳐나옵니다.
밤2시. 그가 '물건'을 묻어놓은 곳 근처를 배회하다 돌아옵니다.
아침. 나스따샤가 수프를 가져오고, 얼마 후 라주미킨도 들어옵니다.
뭘 좀 먹는 걸 보니 아픈 것 같지는 않군.
나 지금 뭘 물으러 온 것 아니고, 아니, 네가 뭔가 비밀을 이야기하려 한다면 오히려 입 닥치라 할 것이고,
알고 싶은 것은 딱 하나야. 너 정말 사람들 말대로 미쳤니? 어머니한테 하는 걸 보면 미쳤든지 악마든지 둘 중 하나는 틀림없는데....
그 사이 내가 세 번씩이나 왔었지만... 어머니가 어제부터 위독한 상태야. 또 하나,
어제 네 여동생에게 무슨 편지가 왔는데, 그 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어!
그가ㅜ문을 나서다 다시 돌아서서 들려줍니다.
또 하나, 범인이 잡혔어. 지난번 얘기 나왔던 페인트 공이야.
그때 내 말 기억해? 금방 살인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그렇게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칠 수 있냐고?
그런데 그게 다 연극이었대. 사람들의 의혹을 떨쳐내기 위한 연극.
그런 고차원의 세계를 내 머리로 판단하려 했으니 나도 참!
밖으로 나온 라주미킨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
로쟈 저 친구 지금 무슨 정치집단 공작을 수행하고 있는 거야. 확실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지? 그 동안 이 친구의 행적, 행동 또.....
더구나 이번엔 동생에게 온 편지조차도 모르는 척하다니... 분명히 뭔가 있어.
라스꼴리니코프도 생각에 잠깁니다.
이제 어느 정도 시간은 얻은 셈. 보나마나 뼤뜨로비치는 ‘심리작전’을 계속할 테고....
문제는 스비드리가일로프!
chap. II
라스꼴리니코프가 밖으로 나가려는데 뼤뜨로비치가 막아서더니 담배 한 대 권해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지나가다가 ‘한 5분’ 얘기나 나누고 싶어 들렸다면서, 며칠 전에도 왔었는데, 문은 그냥 열려있기에 기다리다 갔다고 합니다.
자기가 꼭 무릎을 토닥거려주면서 설명해야 할 것이 있어 온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번 헤어질 때 당신 덜덜 떨던 것 기억해요? 물론 나도 떨었었지만.”
라스꼴리니코프, 기가 막힙니다. 또 시작이구나. 이 사람의 심리작전.
“당신 혐의가 벗겨졌다고 하는 당신 친구의 말은 사실이 아니죠.
당신 성격, 또 아프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니깔라이는 범인이 아니에요. 그가 속한 종파에서는 고통을 아주 큰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그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것이죠.
난 당신이 범인이란 것을 확신해요. 하지만, 토끼 백 마리가 말馬이 되지 안 듯, 백 가지 의혹이 증거 하나 될 수는 없잖아요?
From a hundred rabbits you can't make a horse, a hundred suspicions don't make a proof.
지금은 그래요. 하지만, 내가 확보해놓은 증거도 있고, 이제 며칠 내로 와 당신을 체포할 거예요.
보세요. 당신 지금도 떨고 있지 않아요? 입술을, 이를, 온 몸을. 그 전에 자백을 한다면......”
chap. III
라스꼴리니코프가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로 향합니다. 혹 그가 뼤뜨로비치에게 갔던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요.
지금 내가 왜 그에게 가고 있지?
사람들이 그를 기분 나쁘고 타락하고 교활하고 악의에 찼다 하는데, 惡行이라는 면에서는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시점에서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나의 범행에 관해 알고 있다는 것을 무기로 두냐를 협박할지도 모른다는 것.
아예, 내가 라주미킨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그에게 부탁해 두냐를 보호하도록 해?
아니면, 아예 이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죽여 없애버려? 또 하나의 살인!
라스꼴리니코프가 그 생각에 전율, 길 한 가운데서 멈칫 서는데, 술집 안에서 자기를 관찰하고 있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보입니다.
그가 잠시 망설이다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로 가, ‘우연’이라고 하자, 그는 자기가 최면을 건 것이라며 ‘기적’이라고 합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기가 ‘아주 어린’ 여자와 약혼했답니다. 그녀의 부모도 자기를 좋아한답니다. (긴 내용 생략)
그리고 또 이어지는 죄에 관한 이야기.(역시, 죄의식 전혀 없이 삶을 살아가는 이 사람과 주인공의 대비)
“In this vice at least there is something permanent, founded indeed upon nature and not dependent on fantasy,
something present in the blood like an ever-burning ember, for ever setting one on fire and, maybe,
not to be quickly extinguished, even with years. You'll agree it's an occupation of a sort.”
라스꼴리니코프가 거기엔 즐거움이 있을 수 없고, 위험만 가득한 질병일 뿐이라 하자,
“그건 자네의 생각일 뿐, 절제의 경계선을 어디에 설정하는가, 그것만이 중요하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용기가? ‘네’가 ‘나’에게 도덕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그가 이제 '여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일어나자, 라스꼴리니코프가 동생에게 접근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일 것이라 단언하는데,
그가 사실은 두냐를 만나러 간다면서, 걱정할 것 없다고 합니다.
"Oh, don't be uneasy. Besides, even in a worthless low fellow like me, Avdotya Romanovna can only excite the deepest respect."
chap. IV
그가 들려주는 ‘惡人의 사랑’ 이야기.
(여기서도 문제. 고백이나 강의를 ‘요약’할는 없지 않은가. 그저 스토리 라인에 부합하는 내용만 추려....)
여성의 사랑이라는 것은 참 묘한 것이다. 좋은 쪽이라곤 전혀 없는 나를 그 여인이 감옥에서 꺼내줄 때, 이해할 수 없었지.
나는 ‘솔직함’이라는 것을 벗어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그녀가 무척 놀라기는 했지만,
자기 이외의 어떤 여성과도 오래 가까이 지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타협을 봤어.
그 후의 편력에, 가끔 질투라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었어.
그런데 두냐에게서 문제가 생겼지. 두냐가 먼저 다가왔어. 믿을 수 있겠나?
여인의 심리가 동정 쪽으로 기울면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는 법.
And if once a girl's heart is moved to pity, it's more dangerous than anything.
She is bound to want to 'save him,' to bring him to his senses, and lift him up and draw him to nobler aims,
and restore him to new life and usefulness.
하지만, 내겐 두냐도 여자에 불과했고, 그래서 여러 번 ‘시도’했었지.
그런데, 자네 동생은 원칙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 여자였어. 그게 문제였어.
chap. V
라스꼴리니코프가 계속 자기를 따라오자,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지금까지는 ‘그 일’을 입에 담지 않으려했는데, 이러면 ‘그 일’을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다며 협박하는데도
라스꼴리니코프는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앉자, 화제를 돌려, 소냐는 오늘 어떤 귀부인의 집으로 갔다 합니다.
자기가 비용을 신탁해, 그 귀부인이 좋은 곳을 찾아냈고, 거기에 아이들을 맡기게 되었는데,
그녀가 소냐 이야기를 듣더니 동정심을 표했고, 오늘 소냐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고요.
어느 새 둘이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집에 도착, 그가 돈을 챙긴 후, 마차에 오릅니다.
“같이 가겠나?”
“이제 그럴 마음 없어졌다.”
“좋다. 이제 미국으로 도망가는 게 유일한 살 길, 내가 비용을 대주마.”
“떠날 마음은 없다.”
청년이 사라지자, 그가 마차를 보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갑니다.
떠나오긴 했지만, 이 사람이 무엇인가 꾸미고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못하는 청년, 다리에서 물끄러미 강물을 내려다봅니다.
두냐는 이상한 분위기로 생각에 잠긴 오빠를 보지만 그에게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깁니다.
그녀에게 다가온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고, 두냐는 그냥 여기서 이야기하자 하는데,
그가, 이런 곳에서 이야기할 내용도 아니고, 또 오빠에게 자기 편지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였고,
더구나 내가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또 어차피 소냐도 만나야 되는 일이니 꼭 집이라야 된다고 합니다.
집에 들어서자,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기 집 구조부터 쭉 설명을 늘어놓고, 작은 문을 가리킵니다.
“지난 이틀 간 내 여기에 앉아 벽 반대편에서 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들을 수 있었지.”
그가 자기 방으로 위치를 옮기자고 하는데, 그의 눈이 음흉한 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두냐가, 그 편지에서 말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달라 하자,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기가 들은 이야기 전부를 들려줍니다.
그가 전당포 노인을 도끼로 찍었고, 동생도 죽였고, 훔친 물건도 가지고 나왔고....
“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 소냐는 오빠를 신고할 그럴 사람이 아냐.”
“당신은 알잖아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절대 그럴 사람이 못 돼요.”
“천 명의 범죄자가 있다면, 그보다 더 많은 이유가 있는 법이지.
또 오빠가 소냐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 그것도 다 들었어.”
“양심의 가책. 오빠가 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두냐. 지금 모든 게 뒤죽박죽이야. 러시아인의 문제가 뭔지 알아?
생각은 넓어. 땅덩어리처럼. 하지만, 문제는 뭐 특별하게 천재적인 게 없다는 거야.
네 오빠도 그럴듯한 이론은 만들 수 있었지만, 하지만 용감하게 법을 뛰어넘을 수도 없었고....”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설명이 한없이 늘어나자, 두냐가 그의 말을 끊습니다.
“오빠의 이론은 알아요. 라주미킨이 가져온 저널에 실린 글을 읽었었거든요.”
이제 소냐를 만나보겠다고 그리로 가자는 두냐에게 그가 말합니다.
“소냐는 없어. 오늘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거야.”
“거짓말이었군요. 나한테 거짓말을 했던 거군요.”
기절할 듯 주저앉는 두냐의 얼굴에 물을 뿌려주며, 그가 말합니다.
“이제 미국으로 도망가는 게 유일한 길이야. 내가 그 비용을 대주지.”
두냐가 돌아가겠다고 일어서서, 문을 열려하지만, 방문이 잠겨있습니다.
“이 문이 왜 잠겼죠? 아까 들어올 때는...”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오빠를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자.
내가 그에게 여권을 만들어주겠다. 난 미국에 아는 사람이 많다.
아니 두 개 더. 네 것과 엄마 것도. 우리 모두 다 거기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라주미킨 그 사람한테 기대할 것 뭐 있나.
어, 또 창백해지네. 그럴 것 없어. 그냥 내 말만 들어주면 돼.”
다가서는 그. 손을 얹는 그. 피하는 그녀.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 내가 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여기선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도 소용이 없어. 내가 잡아놓은 방이 다섯 개야.
여기 양쪽으로는 빈 방이라 이 방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더구나 지금은 집주인도 없고, 소냐도 나갔고......”
그가 이야기를 계속하며 접근해, 덮치려는 순간, 두냐가 총을 꺼내듭니다.
“누가 줬지? 라주미킨이? 날 믿지 못해서?”
“바로 당신 것이죠. 당신이 마르파를 죽이려고 넣어두었던 것을 내가 감췄죠.
난 당신이 마르파를 독살한 것도 알고 있어요!”
“독살? 천만에∙∙∙∙∙∙또, 설령, 내가 그랬다 치더라도, 그건 너와 함께.....”
탕!
“어~! 정말 쏘네. 어디 한 번 더.....”
탕! 조용....
두냐가 총을 떨어뜨리고 주저앉습니다.
“두냐~, 날 사랑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불가능한 일이야? 응?”
남자가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푹 숙이고, 그녀에게 열쇠를 건네줍니다.
chap. VI
낮 11시.
스비드리가일로프, 술집으로가서, 어제처럼 역시 아이들을 불러 노래를 시키고 그들 손에 돈을 쥐어주고...
술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그냥 차만 들고... 그리고 종업원 둘에게도 돈을 뿌리고...
이어, 위층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지만, 거기는 싸움 판.
알고 보니 ‘독일인’ 한 사람이 스푼 하나를 슬쩍해서 일어난 일. 그가 그 스푼 값을 대신 치러주고, 다시 조용해지게....
(이 소설에는 유난히 독일인이 많이 나온다. 카테리나도 아멜리아도 독일인이고, 루진을 돌봐줬던 사람도 독일인이고, 의사도 그렇고....)
저녁 6시.
갑자기 험악해지는 날씨. ‘일분도 쉬지 않고’ 번개가 치고, ‘다섯도 세기 전’에 천둥소리 따라오고, 비가 아니라 아예 물을 쏟아 붓는 듯...
스비드리가일로프가 흠뻑 젖은 옷으로 소냐의 방에 들어서는데, 소냐의 동생들은 그의 모습에 질려 밖으로 튀어나가고...
(이 사람의 ‘흉한’ 외모 묘사, 코는 삐뚤어지고... 이제, 이야기를 끝내가려는 작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적어도 외모적으로는 귀공자의 풍모, 이 남자는...
또 청년은, 그 훔쳐낸 ‘알량한’ 규모의 ‘재산’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을 이 惡漢은 마치 청년의 ‘뜻’을 대신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가 자기가 가져온 돈을 다 꺼내놓고, 서류에서도 몇 장 떼어내고.... 소냐에게 말합니다.
“이 서류면 매년 3천루블을 받을 수 있단다. 누구에게도 비밀이야.
이제 ‘이런 생활’은 청산하는 게 좋겠지?”
“저는 제 방식대로 살아요. 이렇게 돈 주실 필요 없어요.”
“내 너하고 오래 앉아 이야기 나눌 시간이 없어. 자, 그냥 들어.
라스꼴리니코프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만 남았어. 자기 머리에 총을 쏘던지, 아니면 시베리아로 가던지.
그가 시베리아로 가고 너도 따라갈 경우 이 돈이 필요해. 그러니, 너에게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그에게 주는 것이기도 하단다.
그때는 걔한테도 내 안부도 전해주렴.”
말을 마치고 문을 나서며 자기는 미국으로 떠난다는 그에게, 소냐가 걱정합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어떻게 미국까지... ”
“미국은 이 근처가 아니고... 하!하!”
그가 웃음을 멈추고, 말합니다.
“아 참 이 돈을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하니까, 일단 라주미킨에게 맡기도록 하렴. 그 사람, 아주 믿을 만하고 좋은 사람이야.”
밤11시20분.
뼛속까지 젖은 상태로 약혼녀의 집으로 가는 스비드리가일로프,
한밤중 방문에 당황해, 휠체어에 실려 나오는 ‘장인’에게, 갑작스런 일로 프랑스로 떠가게 되었다며, 1만5천 루블을 주고 나오는데,
이런 ‘거금’을 처음 만져보는 이 부부는, 그의 옷차림 또 분위기가 어딘지 의아하게 생각되지만,
영국 귀족들은 남들이 어떻게 보건 거기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아마 ‘우리 사위’도 자기도 그렇다는 것을 보여주려 그러는 것 아닌가 하며,
밤 2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정확히 자정.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방황하는, 때로는 환상 속을 헤매는, 분위기가 계속됩니다.)
이제 비는 그쳤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가 네바 강을 내려다봅니다.
‘아냐, 너무 차가워 보이는데....’
그가 번화가로 향하는데, 고급호텔이 눈에 들어옵니다.(사실은 초라한 호텔인데, '지금 상태' 그의 눈엔 그렇게 보이는 것.)
스비드리가일로가 자리에 눕습니다.
바람에 부대끼는 나무 소리, 난 참 싫어. 비 맞은 나무의 소리가, 거기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 참 싫어.
그의 눈앞에 두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내 누구를 싫어해본 적이 없는데. 난 싫어. 그런 내가 싫어.
내 누구하고도 싸워본 적이 없는데. 난 싫어. 그런 내 모습이 정말 싫어.
쥐 한 마리가 그의 몸으로 기어오르고, 그가 벌떡 일어나 아무리 잡으려 해도...
나른해지는 몸. 이미지,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났다 겹쳐졌다 없어지곤 하는 이미지.
그가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베란다로 갑니다.
꽃. 장미. 수선화. 향기. 관. 흰옷 입은 소녀. 아는 소녀입니다. 그에게 모욕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턱을 창에 괴고, 얼굴에 튕겨지는 빗방울을 맞습니다.
지금 몇 시지?
멀리서 울려오는 종소리 세 번. 대포소리.
홍수로구나. 둑이 무너지는구나. 이제 지하실에 있던 쥐들이 다 밖으로 나오겠지.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가는데, 무엇인가 검은 물체. 촛불을 켜고 들여다보니, 울고 있는 아이.
한참 울고 나서 그쳐갈 때 그런 훌쩍거림. 글쎄, 네 살 정도?
엄마가 때려요....
계단을 내려오다 다시 그 아이에게로.
웃음. 아이의 웃음. 겹쳐지는 매춘부의 얼굴. 화들짝 놀라 깨는 그.
아직도 꿈속..... 밝아오는 창. 벌써 윙윙거리는 파리. 한 마리라도 잡아보려... 아무리, 아무리 해도...
테이블 위에 종이가 펼쳐져있고, 그 옆에 총이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아닙니다.
이제 그가 일어나 결연히 밖으로 갑니다. 네바 강 쪽으로.
마부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없고. 그의 앞을 건너지르는 지저분한 개 한 마리....
(받아쓰기가 아닙니다. 소설의 묘사 중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몇 닢 집어 들어 올리 듯, 샘플을 쓰고 있는 중이죠.)
드디어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광장으로 나옵니다.
여기네!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
그의 얼굴을 스치는 미소.
타워 밑에 서있던 소년이 싸늘한 웃음 전형적인 유대인 웃음을 띠며 묻습니다.
“뭐 하시려고요?”
“나 지금 다른 곳으로 가려는데...”
“다른 곳이요?”
“그래 미국으로.”
“아저씨, 여기선 미국으로 가면 안 돼요.”
“왜 안 되지?”
“그냥 안 되게 그렇게 돼있어요.”
“그래?”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저녁 7시.
라스꼴리니코프가 어머니와 동생이 있는 집으로 향합니다.
계단을 오르는 발길은 무겁기만 하고... 후줄근한 차림, 거기에 잠까지 설쳐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정말 만나야하나? 괜찮아. 아직은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까.’
“왔구나! 우리 아들! 내 왜 이러지? 글쎄, 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엔 이렇게 기뻐도 눈물이 나는구나.
앉아라. 얘야. 그래, 그래. 아무 것도 묻지 않을게.
잡지에 쓴 네 글을 벌써 세 번째나 읽고 있단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 지도자가 되겠더구나.
널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오히려 미친 사람들이지!
커피 마실래? 난 누구한테도 이걸 내놓지 않아. 너한테 주려고.”
“어머니.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말예요.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해도 말예요. 그래도 어머니는 이 아들을 사랑하실 거죠?”
Mother, whatever happens, whatever you are told about me, will you always love me as you do now?
“로쟈, 로쟈. 무슨 말을 하는 거니? 누가 너한테 무슨 말을 한다고 그래. 난 누구 말도 믿지 않아. 듣지 않을 거야!”
“이제 떠난다는 인사하려고 왔어요.”
“내 그렇게 생각했지. 나도 같이 갈 수 있어. 두냐도 물론이고. 널 돌봐줘야지.”
“아녜요. 그저 기도만 해주세요. 어머니의 기도는 하늘에 닿을 거예요.”
No, but kneel down and pray to God for me. Your prayer perhaps will reach Him.
“맞아. 맞아. 그런데, 그렇게 멀리 가는 거니?”
엄마의 눈에 서리는 공포,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는 아들.
“예, 아주 멀리요.”
“네 미래가 달린 아주 중요한 자리인 모양이구나.”
라스꼴리니코프가 집으로 돌아옵니다. 방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누구지? 뼤뜨로비치? 오, 제발!’
두냐가 들어오는 오빠를 멍한 눈빛으로 맞습니다.
“하루 종일 소냐 집에서 기다렸어. 거기론 꼭 올 것 같아서. 밤새 어딜 갔었던 거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그냥 마음을 정하고 싶었다는 것 밖에는.”
“세상에. 우리도 바로 그걸 걱정했는데. 생명은 소중한 거야.
어머니한테 갔었어? 어머니한테도 말했어?”
“아니, 천만에. 그런데 네가 했던 잠꼬대로 어머니도 이미 알고 계시는 것 같았어. 내 느낌이 그랬어.”
“그럼 이제 죄를 뉘우치는 거야?”
두냐의 그 말에 라스꼴리니코프가 분노합니다.
“Crime? What crime? 남의 피를 빨아먹는 그 늙은 해충을 죽인 것 말이야? 그건 오히려 다른 죄 40가지를 덜 수 있는 행위야.”
라스꼴리니코프가 낡은 책을 펼치더니, 그 속에 들어있는 얼굴그림을 꺼내듭니다.
“주인여자 딸이지. 얘한테는 무슨 얘기든 했었어. 물론 ‘그 일’에 대해서도.
그런데 너 알아? 네바 강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거?
전쟁에서 그 끔찍한 살인들이 벌어지는데, 왜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는지 알아? 무력감 때문이야. 자기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무력감!
난 함정에 걸린 거야! 내가 나를 죽인 거라고!”
(직설적 표현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이야기가 계속되지만,
차라리, 노파 하나를 죽이고 이렇게 실패작으로 끝나는 대신, 정치적인 쪽으로 나가 세상을 바꾸었더라면 그런 뉘앙스)
문을 나와 동생과 헤어진 후, 라스꼴리니코프가 탄식합니다.
세상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더라면.....
완전히, 그냥 완전히, 나 혼자였다면.....
chap. VIII
소냐가 라스꼴리니코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냐도 그 옆에 서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단지 로쟈가 마지막 순간에 움츠러들기만을. 무서워 본능적으로 ‘그 일’을 저지르지 않기만을.
이제 두냐는 집으로 가고, 소냐 혼자 서서 최악의 경우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데,
라스꼴리니코프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가 소리를 지르며 반깁니다.
그가 말합니다. 지난 번 이야기 했던 십자가를 받으러 왔다고.
소냐가 금속 십자가 대신 나무 십자가를 걸어주며 눈물을 흘립니다.
“시베리아에 가라고 먼저 이야기한 건 바로 너였는데...”
소냐가 한 번 만이라도 성호를 그어보라고 하자, 그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을 긋습니다.
라스꼴리니코프, 이제 자수하러 갑니다. 작별인사조차 잊고 나왔습니다.
‘가만있자. 내가 왜 그 집에 갔었지? 소냐를 사랑해서? 천만에!
십자가를 받으러? 그것도 꼭 필요한 건 아니었고....
그녀의 눈물을 보려고? 무엇인가 날 망설이게 할 계기를 찾아서?’
라스꼴리니코프가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 거지에게 주고, 땅바닥에 입을 맞춥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웃습니다.
“저 친구 술에 취해 여기가 예루살렘인 줄 아는 모양이야.”
쯧쯧 혀를 차는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런, 나이도 젊은데....∙”
그가 벌떡 일어나, “난 살인자에요.” 외치려는데, 입이 얼어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습니다.
소냐가 그런 그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자수하지? 뼤뜨로비치에게? 휴, 너무 질려서∙∙∙∙∙∙.’
그가 차라리 ‘호랑이’ 형사 일리아를 찾기로 마음을 먹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지만 자리엔 아무도 없습니다.
조금 있다, 뼤뜨로비치와 일리아가 동시에 들어옵니다.
“나를 찾는 사람이 누구지? 오, 당신!”
일리아가 반갑게 손을 내밉니다.
“내, 얘기 들었지. 그동안 문필가가 되었다며? 우리 집사람도 문학 팬이거든.”
라스꼴리니코프가 얼떨결에 자묘토프를 만나러 왔다고 말합니다.
“자묘토프? 그 친구 너무 건방져!
이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하고는 ‘우정’ 그런 것은 없으면 좋지.
자네는 무슨 ‘지적인 분야’ 그쪽 공부를 한다며? 잘 해봐. 앞날이 창창하니까.”
라스꼴리니코프가 마음이 변해 다시 빠져나갈 기회만 찾고 있는데, 누군가가 외칩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살했어요!”
“스비드리가일로프? 어, 이 친구 왜 또 창백해지지? 아는 사람인가?”
“예, 어제 만났었어요.”
두 사람이, 어쨌든 지난 일은 사과한답니다. 절차가 그래서 그랬던 거니 이해해달랍니다.
그 광신도들 연극에 너무 어처구니없게 당해버렸답니다.
라스꼴리니코프가 밖으로 나오다 눈길이 소냐와 마주치자, 다시 안으로 들어가다 쓰러집니다.
“물!”
일리아가 외칩니다.
“빨리 물 가져와!”
라스꼴리니코프가 다시 정신을 차리자, 입을 엽니다.
“저였어요!”
“자, 물 좀 마시라고.”
라스꼴리니코프가 손으로 뿌리치며 말합니다.
“알료나 이바노브나 와 리자볘따 이바노브나를 죽인 사람은 바로 저예요.”
일리아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 제6부, 끝 -
에필로그
後記도 역시 엄연한 소설의 일부.
후기로 떼어놓는 것은, 제6부 ‘클라이맥스의 멋’을 살리려는 작가의 의도.
- 라스꼴리니코프에 대한 재판.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려, 꾀를 부리지 않고, 솔직하고 명확하게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털어놓는 그의 태도,
또, 학생 때 가난한 친구들에게 6개월 동안이나 생활비를 도와줬고, 화재 때 불 속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구해냈고...
그 증언들이 다 사실로 판명되어, 2급 살인으로. 8년 징역형.
- 두냐는 자꾸 묻는 어머니에게, 오빠가 시베리아로 사업차 여행을 떠났는데, 곧 富와 명예를 안고 돌아올 것이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슨 政敵이 있어서 잠깐 피한 것이라고, 이제 곧 위대한 지도자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 라주미킨과 소냐가 자주 면회를 가곤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는 수감 몇 달 후 결국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게 됨.
- 두냐와 라주미킨 결혼. 소냐는 로쟈를 따라 시베리아로.
- 어머니의 우울증은 극에 달해 헛소리를 계속하다,
어느 날, 아들이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온 집안을 깨끗이 닦고 쓸더니, 저 세상으로.
- 시베리아에서 보내오는 소냐의 편지는 아주 사무적인 투이지만 그곳 생활의 묘사는 아주 객관적.
소냐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소냐가 놀란 것은 라스콜리니코프의 무덤덤한 표정.
- 소냐도 이웃이랑 가깝게 되고, 바느질 일감도 얻게 되었고....
그를 통해 간수들과도 알게 되어, 로쟈를 힘든 일에서 빼줄 수 있게 되었고....
- 결국은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로. 라스꼴리니코프가 외톨이 되기 시작했고,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그러다가, 결국은 병원으로 실려감.
- 라스꼴리니코프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노동도 아니고, 오히려 그는 잠을 푹 잘 수 있게 만드는 이 힘든 일이 좋았고,
바퀴벌레 둥둥 떠 있는 양배추 국도 아니고, 굶기만 했던 때도 있었는데, 뭘.
옷도 아니고, 그래도 입을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8년 후, 출소하면 32살, 새 출발 하기에는 너무 늦는데 하는 그 생각 때문.
To begin a new life! What had he to live for?
What had he to look forward to?
Why should he strive? To live in order to exist?
- 일단 우울증이 시작 되자,
왜 자기 범행을 사람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하는지,
왜 그들이 자기 행동을 죄라고 평가하는지, 다시 옛날의 생각 틀로 돌아가게 되고,
왜 그때 네바 강으로 뛰어들지 않았는지, 왜 자기는 스비드리가일로프처럼 결단력이 없었는지, 자책의 수렁에 빠져들고.
또, 정치범들은 다른 죄수들을 무식하다고 깔보는데, 그런데, 자기 눈엔 그 무식한 사람들이 더 현명해보이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더 피하게 되고.....
- 어느 날 꿈인지 환상인지, (앞에 나왔던 스비드리가일로프의 꿈도, 또 여기서도, 작가의 꿈 활용 솜씨는....)
아시아에서 넘어온 병균이 유럽에 침투하는데,
이 병균이 몸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자기가 가장 지적이고 또 자기만이 진실의 수호자라 믿게 되고,
거기에 학문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자기 판단에 오류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고,
각자 다 그렇게 되니, 양보라는 것이 없어지고, 서로 물어뜯고, 비틀고, 싸우고, 울고,
무엇이 善 무엇이 惡인지, 서로 다투고 죽이고, 누굴 비난하고 누굴 감싸줘야 할지,
그래서 군대를 만들어 전쟁을 해보지만, 계급도 없고, 적군도 아군도 없이 서로 찌르고 자르며 싸우고.....
- 어느 날 감옥소 밖으로 사역을 나왔다 보게 되는 평화스런 유목민 마을모습. 시간이 멈춘 듯 보이는 그 모습....
- 어느 날 들여다보게 되는 소냐의 맑은 눈. 이것이 ‘사랑’의 감정일까?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눈물만....
- 라스꼴리니코프의 베갯머리에 놓여있는 성경책, 거기에 쓰인 “이제 7년 ‘만’ 견디면.”
- 죄와 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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