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잠이 들었다. 몇 정거장을 더 지나갔다.
지하철로는 몇이지만 그래도 집에서 제법 되는 거리.
땅위에 올라 택시를 잡을까 하다 아서라 마을버스로 마음을 정한다.
저기 초록색의 마을버스가 온다.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가 가까이 온다. 선다. 아니 설 듯 하더니 지나간다. 문으로 다가가던 난 놀란다. 이런. 이런. 이건 무슨 경우지?
몇 걸음, 아니 저 앞에, 정거장 팻말을 한참 벗어나 선다. 내가 다가가니 문이 열리는데 화가 난다. 분노.
간신히 화를 다스리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짜증을 낸다. 급하다고, 아 뭐 하시는 거예요.
어찌 이런 경우가 있느냐 하니, 다음 차가 곧 올 것이라 그냥 지나갈까 했던 것이란다. 고마워하라는 투.
난 승객이 아니라, 아 뭐라 할까. 그냥 태워도 되고 지나쳐도 되는 그런 존재. 그래, 인간이 아닌 존재다 존재. 아니 물체.
정말 정말로 화를 추스르느냐 망설이는데, 이 사람, 어서 타라고 재촉한다.
난 묻는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렵냐고.
차에 올라 수금함에 요금을 집어넣고, 빈 좌석으로 향하는데 몸이 휘청, 아찔하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기둥을 부여잡는다.
다음다음쯤 되는 정거장일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밖에서 어떤 부인이 양산을 접느라 애쓰는데, 접히지 않는 모양이다.
기사가 묻는다. 타실 거예요? 부인은 그를 힐끗 쳐다볼 뿐 가타부타 대답이 없다.
기사는 그래도 기다린다. 아는 사람인가?
생각할 필요까지도 없다. 노선이 하나뿐인 이곳에 사람이 서있다면.....
부인은 아직도 양산과 씨름 중.
기사 양반 빨리 갑시다. 하고 말하고 싶을 정도의 상황이다. 다음 버스가 곧 온다며?
아서라, 아서.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면? 내가 만일 저 아주머니라면?
창백한 얼굴에 화가 잔뜩 난 표정.
찬찬히 보니 아주머니에서 할머니로 넘어가는 연세로 보인다.
우산이 안 접혀서가 아니라, 무엇이 불만이라 우선이 안 접히도록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산이 접히고, 여자가 차에 오른다.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할 법 한데, 그냥 엄숙한 표정이다.
이번엔 돈을 찾는 모양이다. 이 부인, 한참을 요금 통 앞에서 지체한다.
이제 사람이 탔으니 떠날 법도 한데, 기사 양반 참 인내심도 많다.
하긴, 버스가 움직이다가 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늙은이가 쓰러진다면?
내가 기사라도 어쩔 수 없지. 더구나,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기만 해봐라, 저 여자의 표정을 보라.
내 앞 빈자리 옆에 노파가 선다. 몸이 많이 불편한 모양, 자리에 쉽게 오르지 못한다. 아니 그냥 서있다.
이해심이 많은 기사양반, 이 늙은이가 착석할 때까지 기다릴 모양인데, 정말 답답하다.
바로 앞에서 보니 그렇게 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표정 하나는 아주 늙은 듯.
기사는 둘째 치고, 이 버스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것 같은데 그런 것 전혀 없다.
아주 당연한 권리인 양. 아니면, 바로 이 지체로 그런 권위를 세우려는 듯.
슬로우 모션으로 겨우 자리에 앉고, 버스가 출발한다.
사실 몇 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무척이나 오래 시간이 흐른 듯.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그 여자가 아니고 내가.
어디 근처에 먹을 곳 없나 두리번거리지만, 선뜻 마음 내키는 곳이 없다.
냉면 집 하나가 눈에 띄어 그곳으로 가니, 많다 많아. 엄청나게 많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초밥 집. 그렇지, 내 언제까지 이렇게 음식 값에 신경 쓰며 살 것인가. 안으로 들어간다.
텅 비었다. 아무도 없다. 카운터에 앉은 여자는 인사도 없다. 아니 얼굴을 들지도 않는다.
종업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던져 놓는다.
선뜻 마음을 정할 수 없어 몇 마디 묻는데, 아무 거나 시키세요. 귀찮게 마세요. 그런 분위기.
분명 카운터의 여자는 부인이고, 이 여자는 이 집 딸일 것이다. 종업원이 이렇다면 당장 쫓겨날 것이다.
그런데 명색이 생선 집에서 무슨 이런 불쾌한 냄새가 나지? 이건 日食집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이런 집을 보면 日자가 들어간 데 자존심 상해 할 것이다.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 꾹 누르고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짚어 주문을 한다.
여자가 덜컥덜컥 접시를 내려놓는데, 모양새도 없고, 신선하다는 기분도 전혀 들지 않는다.
몇 젓가락 가지 않아, 벌써 속이 불편해온다. 밥 한 공기 시켜, 김치 곁들여 속을 채운다. 생선은 그냥 서비스로 나왔다고 치지 뭐.
잊었었네. 지난 며칠 동안 눈이 불편했었는데. 안과로 향한다.
다행이다. 2시 경. 사람들이 많이 밀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너 명뿐.
정말 다행이다. 마치 단체 손님이기라도 하듯 사람들이 들어온다. 꾸역꾸역. 몇 분만 내 늦게 들어왔다면?
여기는 의사만 친절하다. 자상하다. 간호사들은, 워낙 환자가 많이 와 그런지, 마치 러시아 상점의 점원들 같이 권위를 풍긴다.
전에 내 한때 다녔던 그 안과와는 달리, 이 의사는 충분히 시간을 내, 여유 있게 자세히 검사하고 진찰한다.
계산대 앞에서 놀란다. 뭐 이렇게 많이 나왔지? 각종 검사, 의료보험에 포함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주면 전혀 아깝지 않다. 그래서 이곳엔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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