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영조)가 아버지(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권력의 비정함을 힘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정조. 미국에선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그 때, 이 땅에서 국정개혁의 뜻을 살리려 무진 애썼지만 결국 뜻을 제대로 이룰 수는 없었던 비극의 우리 임금. 저 먼 곳에서 괴테와 베토벤이 작품을 짜내고 있던 그 시대, 우리 땅의 서민생활을 소탈하고 익살맞게 그려내던 단원 김홍도, 그리고 한량과 기생 그림을 열심히도 화폭에 담아내던 혜원 신윤복.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얽혀있었다고?
그렇게 잔뜩 기대에 부풀어 주문했던 책인데, ‘어, 이거 TV드라마 소설이잖아!’ 집사람 코멘트에 기운이 쭉 빠진다. TV라면 뉴스조차 멀리한지가 벌써 몇 해째인가. 김 샌 마음에 그냥 덮어두었다. 그러다, 어제, 오랜만에 집안 정리하는데, 이 책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아깝잖아. 또 그 동안 너무 딱딱한 책만 읽기도 했고. 꿀단지 보면서 침 넘기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말이 간결하다. 질질 끌리지 않는 흐름이다. 점점 속도가 붙는다. 어. 갑자기 웬 추리소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평상으로 돌아온다. 두 주인공. 살리에리와 모차르트? 두보와 이백? 단원의 마음은 뿌듯한 스승과 열등감을 느끼는 경쟁자의 입장을 오간다. 틀에 박히기를 거부하는 천재성. 제약을 웃어넘기는 재기발랄함. 첫 권 끝 부분에 또 한 사람의 주인공 정조임금까지 등장하며 셋은 하나가 된다. 한 시대의 예술통념을 깨어버리려는 공모자로서. 하지만, 그 공모는 결국 천재의 반란으로 깨어지고 부서져버리고야 만다.
(이제 알라딘에 주문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전화를 건다. 마침 지인이 시내에 나가 있지 않은가. 책방에 들려 둘째 권을 사다줄 수 있는지 조심 조심스럽게 부탁을 한다.)
드디어 그 깔려있던 복선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성격이, 분위기가, 바뀌어간다. 마치 색깔이 뒤섞이듯, 악과 선의 경계선이 흐물흐물해진다. “빛이 사라지면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요.” “하지만, 그 실체는 어둠 속에 여전히 존재하겠지.”
임금가족사가 화가의 가족사에 얽힌다. 조각조각이 얼굴로, 그림이 코드로, 가지런히 모아지며 단원과 혜원은 ‘쟁투’라는 제목의 그림대결에 내몰린다. 사방에 깔렸던 온갖 복선이 한 순간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메피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무덤으로 굴러 떨어진다.
작가 이정명. 수많은 ‘그림쟁이’들을 못살게 군 모양이다. 두 천재의 대화 속에 그림에 대한 철학이 녹아들어있다. 등장인물들이 서스펜스의 구성요소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들 거의 모두가 그림해설가의 역할을 담당한다. 심지어 정조 임금까지도. 책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스토리의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그림해설은 점점 더 품격과 깊이를 더해간다. 내가 소설을 읽었던가 아니면 김홍도와 신윤복의 화첩 해설집을 샀던 것인가. 흐뭇한 만남이었다.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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