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계통의 책을 읽는 것은 피해왔었다. 더구나 미국이 경제대공황의 후유증으로 아주 크게 고통 받고 있던 1930년대 말에 쓰인 이 책. 80년대 젊은이들 풍미하던 민중사관에 풍부한 영양소를 대어주던 이 책.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결과로 전쟁이라는 것이 피할 수 없음을 예고했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2차 세계 대전을 볼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의 베스트셀러.
광란의 춤을 추던 신자본주의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쳐놓은 지금의 이 상황에서 무엇이 그 근본문제였는지 궁금증을 풀기위해서 어쩔 수 없이 손에 들게 되었다. 역시, 예상했던 그대로. 일단 책을 손에 잡고난 후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무슨 신들린 사람처럼 책에 푹 빠져버렸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얽힌 사회에서 힘이란 무엇이고, 일단 모양이 성립된 그 역학관계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외길의 가속 상태로 빠져드는지.
전반부의 ‘민중의 입장에서 느끼는’ 역사흐름의 서술부분은 곰브리치의 세계사처럼 부드러운 진행이었고 읽기도 편했다. 하지만, 후반부의 역사 해석은, 강렬한 표현은 책의 성격상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 곳에서 견강부회의 정도가 좀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곡해’의 성격이 강했다. 적어도 나에겐 여러 곳에서 그렇게 느껴졌다. 눈에 거슬리는 치명적 결함도 있었다. 번역자가 정말 원문을 보고 작업을 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어 번역판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일본식 단어와 표현법이 나온다는 것.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나가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생각과 의문. 과연 인간세계는 자연의 세계와 다른 것인지, 아니 달라야하는 것인지. 강자가 있고 약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강자의 힘이 약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더욱 더 강해지는 것이 어쩌면 ‘자연의 질서와 섭리’는 아닌지. ‘생각하는 존재’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또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확실한’ 기회를 놓쳐버리곤 하는 그 약자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책조차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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