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촘스키의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뚝틀이 2009. 1. 1. 20:01
이 책은 청중들과의 만남에서 질문과 답을 하는 내용을 담은 녹취록의 형태를 띠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책의 구성에서는 자신의 주장을 받쳐주는 문헌이나 참고자료가 적절히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단지 그때그때 소제목을 제시하고 중간 코멘트를 넣는 대화 상대자를 설정하여, 독자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자신이 펼치는 생각의 흐름을 잘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책은 세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권에서는 ‘권력이 여론을 조작하는 방법에 대하여’라는 책 제목 하에 ‘미국의 신제국주의의 영향으로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여러 곳의 이야기를 풀어가며 일방적으로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언론의 편파성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배경을 설명하고, 둘째 권에서는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고발하며 시민운동과 지식인의 책임의 필요성을 사상적 또 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이어 셋째 권에서는 운동과 투쟁의 방법론과 그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을 읽는 기간 중간 중간에 유튜브로부터 그의 몇 가지 연설을 찾아 듣기도 하였는데, MIT의 언어학 교수이고 또 그의 학문적 배경에 철학도 곁들여서 그런지 그의 이야기는 그 흔한 ‘사건의 고발’ 모음과 같은 다른 책에서와는 달리 그 설명에 깊이도 한층 더한 느낌이고, 또 그의 주장에서는 매우 강한 ‘설득력’이 풍기기도 한다. (왜 이 저자의 책이 국방부의 금서목록에 들어갔는지 쉽게 상상이 되는 그런 면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어쩌면 저자가 가장 싫어할 ‘실패한 독자’가 된 느낌이다. 우선, 세계를 무대로 하는 미국의 그 권력과 유사한 형태가 우리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미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틀을 잡았고, 이곳에서의 문제점은 이미 (어쩌면 그 또 그와 비슷한 사람들의 오랜 시간에 걸친 노력의 결과로) 보편화된 상식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자주 문제시되고 그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역시 이미 탈진상태에 들어가 있지 않은가.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무력감밖에 느낄 수 없었으니.
 
이 ‘실패한 독자’에게 정말 우리사회는 포기의 대상인가? ‘나’만을 생각하는, ‘나’위주의 본능만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우리 천민자본주의 사회가 한 걸음 물러서서, 이웃을 또 인간다운 삶을 생각하는 그런 사회로 변할 희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 조직의 기본 생리가 그렇듯이 산업 및 정치권력과 물고 돌아가는 언론기관에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사치스러운 생각일까? 정말 ‘투쟁’과 ‘운동’ 없이 우리사회는 달라질 수 없는 것일까? 생각에 생각이 이어지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이 순간 그저 체념과 서글픔뿐 아무 생각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