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가 든든히 밀어줘 그러는지는 몰라도 지금 인수위가 허둥지둥하는 꼴은 정말로 目不忍見이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 잠깐 긴장을 풀고 재미삼아 따라해 보시라. 百聞이 不如一見이라 하지 않던가.
- 모니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왼쪽 눈을 감고 x를 본다. 물론 그 옆의 얼굴도 보이지만 그건 그냥 느끼기만 하고, x만 본다.
- 모니터 쪽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한동안 얼굴도 함께 보이다가, 언젠가 이 얼굴이 사라지고, 계속 더 가면 다시 그 얼굴이 나타난다. (만일 잘 되지 않는다면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다시 해본다.)
x ☺
그냥 재미놀이? 우리 눈 망막의 blind spot(적당한 우리말을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이 단어를 쓰기로.)를 설명하려함도 아니오, 심리학자 Madeleine L. Van Hecke가 세일즈 (또 외래어라 미안. 하지만 뉘앙스(어이쿠 또)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그 현학적 자기계발 이론을 소개하려함도 아니다. 혹 나의 ‘blind spot에서의 함정’이라는 나름대로의 비유로, 왜 그 ‘똑똑한’ 인수위원회사람들이 ‘바보같이 놀고’ 있는지, 왜 그 당선자와 인수위원장의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설명할 수 있지는 않을 까하는 생각에서다.
어디 이번 정권에서만 그런가. 지난 정부도 그랬고, 또 그전 정부도 그랬다. 아니 어디 정치판에서 뿐이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겪는 것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허둥지둥’ 아닌가.
이제 ☺를 ‘나를 보고 있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라고 생각하고, x를 내가 이루고자하는 ‘목표’라고 생각하자.
목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땐 x도 보이고 남도 보인다. 자신과 목표사이의 거리가 워낙 커 둘 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목표에 다가가면서 눈의 초점은 x에 강하게 맞춰지고 남의 시각은 어렴풋한 참고사항으로 전락한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들인 노력의 결과가 제대로 나타나지는 않을까 하는 초조함이 온 감정을 지배하고, 결국 어느 거리에 다가서면 '다른 사람의 생각' 따위는 blind spot에 걸려 보이질 않는다. 이것이 바로 지금 당선자와 인수위원회가 걸려있는 그 지점이다.
지금의 모양이 고약한 것은 이번엔 그 단순한 초조감뿐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곧 있을 총선 전에 분명한 x를 보여주려, 또 현재 진행 중인 특검에서 불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중단되기에 너무나 아쉬운 꿈’으로 가는 길을 모두에게 보여주려 과욕을 부리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금 힘을 합쳐줘야 할 사람들이 온통 누구를 여의도 둥근 집으로 보낼지 싸움에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이 blind spot라는 함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있다.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한 발만 뒤로 물러서서 보아도 ☺가 보이고, 또 한 발 앞으로 다가서서 보아도 역시 ☺가 보이지 않는가.
‘편견’과 ‘아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익은, Think twice before you ...라는 기본도 모르는, 그 인수위원회는 그릇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선자는 그래야한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그런 ‘여유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한다.
그런 역할이 빠졌다면, 다음 단계는 언론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요언론’을 언론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남았던가.
그렇다면? 어디인가에 마지막 보루는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 그것이 종교다. 하지만 종교계?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오래전부터 세속적인 목표를 향해 달리다 blind spot에 아주 깊게 빠져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 불쌍한 우리 대한國民이 처한 현실이여.
'뚝틀이의 생각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박눈 (0) | 2009.01.01 |
---|---|
이명박 정부의 완장부대 (0) | 2009.01.01 |
자동차 색깔과 조중동 (0) | 2008.06.28 |
어떤 것도 행복의 씨앗 (0) | 2007.03.27 |
이공계 도전기 (0) | 2003.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