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의 문화적 수준을 알고 싶으면 그 나라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색깔을 보라는 말이 있다. 그 색들이 밝을수록 사람들은 개방적이고 다른 견해도 수용해주는 그런 단계 사회라고. 우리사회 분위기의 변화과정을 돌이켜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이야기다. 아직 기억 속에 남아있는 얼마 전 승용차 하면 거의 검은 색상이던 그 시절 그때 우리사회 모습과, 그때에 비하면 몰라보도록 달라진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과 자동차 색깔.
하지만, 학생시절 그 오래 전 스위스로 연수 갔던 그 시절 그 때 그 쪽 형형색색 그 모습이 아직도 충격적인 그림으로 머리에 남아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딘가 좀 씁쓸한 느낌이다. 아직도 무엇인가 과시하고 싶은 정치가나 회사사장들이 선호하는 색깔은 변함없이 검은 색 일색이고, 힘 뻐기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품위라는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도 기껏해야 겨우 실버톤 그 정도, 아직도 우리거리는 칙칙함 그 자체 아닌가.
또 한 장면. 얼마 전 일본과 독일 두 나라 교수들과 함께했던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 자기네 무슨 신문이 발행부수가 얼마니 하며 일본인 특유의 겸손한 듯 그 표정에 내용적으론 상대방 제압하려는 그런 자랑 분위기를 이어나던 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하던 독일교수의 짧은 말. 많은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같은 사고방식에 젖게 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가져오는지 경험한 자기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져, 신문 가지 수가 엄청 많다고. 일순에 싸늘해지던 그 자리 그 분위기.
우리는 어떨까. 우리가 그들처럼 무슨 전쟁을 일으킬 그럴 국민성도 아니고, 설령 그럴 마음이 있다 해도 그럴 능력은 아니니, 일단 신문이라도 읽으며 똑똑해지는 것이 급선무일까? 꼭 신문독해 무슨 경연대회라도 하듯, 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 같은 이야기에 같은 주석달기 바쁜 우리의 모습들. 우리의 자동차 색깔마냥, 견해의 다양성 그런 것은 여기 우리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지난 30년 동안 30대 재벌 구성원에 거의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 바로 우리사회 현주소다. 달리 말하면 우리사회엔 고착된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나머지 계층 사이에 희망의 사다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천민자본주의사회의 비극. 富뿐 아니라 권력과 명예까지도 극소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 그렇기에 아직도 대한민국의 모든 힘이 서울에 몰려있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런 우리사회에서 언론의 모습은 두 부류로 나뉜다. 그 알짜배기 극소수 이너서클과 어울리며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언론과 그런 연결고리가 이미 오래 전 끊겨 이제는 사회의 정의와 당위성에 대한 푸념만 읊어댈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부류.
독자 또한 마찬가지다. 좀 과장되게 이야기해, 부동산과 주식을 통해 재산증식을 하는데 그 이해관계에서 도움이 되는 논조의 언론은 내 편이고, ‘쓸데없는 트집이나 잡으며 잘못되라고 고사나 지내는’ 그런 신문은 가까이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는 그런 단세포적 사고방식의 부류가 그 하나요, 혈연 학연 지연 그 무엇은커녕 투기 분위기에 동참할 종자돈조차 마련할 수 없이 그날그날 힘들게 살아가며 ‘이러면 안 되는데, 뭔가 좀 달라져야 하는데’ 헛된 희망만 읊조리는 그런 사고방식의 또 다른 부류.
자녀의 논술준비 도와주려 조중동 세 신문을 한 동안 열독해봤지만 그 논조에서 무슨 차이점 하나 발견하기가 정말 힘들었다는 어느 부모의 푸념처럼, 무슨 일에 종사하건 어떤 위치에 있건 자긍심 하나 확실한 서구의 ‘중간 계층’이 읽는 신문들과 우리가 읽는 조중동은 그 기본성격을 달리한다. 조중동을 읽지 않으면 어딘가 남들에 쳐지는 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身分紙요, 자신이 기득권층에 속한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자기들을 묶어주는 일종의 會報요, 그 세계에 한 발 들여놓기를 원하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希望紙요 가이드라인 모음집이다.
다행히, 비록 그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도,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나라경제가 기득권층 자기네끼리 끼고돌면서 좌지우지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커졌고, 여기에 외국인들까지 가세하며 들어와, 이제는 기득권층이 아무리 흑과 백 또는 좌와 우의 이분법으로 여론을 조정하고 싶어도 그렇게 쉽게 통하지 않는 그런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존의 매스컴 못지않게 인터넷 또한 막강한 정보채널을 형성하게 되었다. 물론 대 재벌들의 정보력과 일반인의 정보력 사이에 하늘 땅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조중동과는 상관없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렇게 비유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까지의 우리의 회식문화가 일단 미친 듯 고기를 먹어대면서 김치와 상추 가끔 곁들이는 그런 돌격대 모습이었지만, 이제 사람들 회식자리가 무지개 색처럼 다양한 접시들이 올라오는 그런 쪽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듯이, 신문하면 자동적으로 조중동을 의미하던 사회에서, 다른 칼러와 다른 논조의 다양한 신문들이 그 개성을 인정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꿈 깨라고? 천만에. 허울뿐인 보수와 진보 좌와 우 그런 구분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 가지만 생각해보자. 만일 세계경제 붕괴의 위험성이 현실적 가능성으로 다가온다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판단능력을 조중동에 맡기고 미처 그 ‘보수’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남보다 먼저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상상이 정말 그렇게 비현실적일까?
어떤 사람이 무슨 옷을 입건, 무슨 색 무슨 차를 사건, 어디 소속 어떤 명함을 내밀건, 어느 사안에 대해 어떤 성격의 견해를 피력하건, 그런 것 전혀 상관없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는 그런 시대가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지금처럼 기득권층 나팔수의 ‘선명성’ 경쟁만 계속한다면, 조중동 역시 역사 어느 구석의 서글픈 존재로 스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명석한 두뇌들이 모인 그 집단 거기 사람들이 스스로 먼저 깨닫는 길, 그것이 정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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