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새 또 생각에 잠긴다. 생각은 자유 아닌가. 오늘의 생각제목? Crescendo 상록수.
어떤 만남이 아름다울까. 재벌아들과 시골처녀의 만남? 그건 신데렐라잖아. 도시총각과 꿈 많은 시골소녀? 그건 그 亞流고.
도시 아가씨와 시골소년? 이번엔 TV 문학관이네. 그럼 단수복수 남녀 따지지 말고, 도시젊은이와 시골아이들? 훨씬 낫네.
사랑이야기? 물론 사랑이야기. 하지만 그런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랑이야기.
뭔 생각이냐고? 두 동강난 나라. 아~! 강남 강북, 영남 호남 뭐 그런 거? 아니! 지도에 죽죽 그어놓는 그런 線이 아니라 희망나라와 절망나라를 갈라놓은 마음의 壁 이야기!
절망에 빠진 사람은 교회에 가서 희망을 찾으면 될 것 아니냐고? 지금 뭔 소릴. ‘장로님을 대통령으로’ 기도해서 부자들 더 잘 살고 가난한 사람 계속 더 고생하게 만든 그 대한민국 교회들? 끼리끼리 모여서, 어디 땅 무슨 회원권 어느 자리 등등 갖가지 소망을 이루려 열 올리는 그 교회? 그 먼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보내 젊은 목숨 산화시킨 그 교회?
왜 갑자기 흥분하느냐고? 나에게 묻지 말고, 노블리스 오블리쥐도 모르고 설쳐대는 저 1% 어린 쥐들에게 물어보고, 또 절망나라 백성들에게도 물어봐. 명예와 부 또 권력 그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 먹어치우고도, 아직도 게걸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희망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미 대한민국은 없어. 사라졌어. 한 맺힌 사람들이 분노를 삭일 곳을 찾는 大한民國이라면 몰라도.
다시 마음을 갈아 앉힌 작은새 생각을 계속한다. 젊은 피 어디 없는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피. 낡은 세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니 누가 나서서 내려누르고 막을지라도, 꿈틀대며 다시 살아나곤 하는 그런 젊은 피. 이땅에 진리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 모습 아니겠는가. 상록수의 피를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희망나라 젊은이들이 절망나라 아이들과 손에 손을 잡고 그 선과 벽을 날려버릴 그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날개는 뒀다 뭐에 쓸 기여. 작은새 희망나라 그럴 듯한 교회로 날아가 목사님 방에 들어선다. 목사님! 이웃사랑이요. 뭐?! 헌금이요. 예끼! 하나님께 바친 거 맞죠? 당근이지! 그럼 불쌍한 이웃 도와주면 하나님 화내시나요? 지금 도와주고 있는데 뭔 소리여. 선교사 보내고 개척교회 지원하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데. 목사님! 청년부요. 그건 또 뭔 소리여? 더불어 살기 안 되나요? 도대체 지금 뭔 소리 하려고 이러는 거여?
이런 툭툭 화법으론 안 되겠다 싶어,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작은새 다시 시작한다. 목사님네 성가대소린 밝고, 힘차고, 아름답고, 화려하죠. 그렇죠. 자랑스럽죠? 하지만, 그거 아세요? 절망나라 백성들 한숨이 그만큼 더 깊어지고 있다는 거요. 교회 나오면 될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시겠죠. 하지만, 또 이거 아세요? 그 절망나라 백성들에겐 여기 부자교회가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멀고 푸른 기와집보다 더 높다는 것을요. 어쩌면 여기 교회가 그 등 돌리는 사람들만큼 하나님께 죄 짓고 있는지도 몰라요.
목사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작은새 저는 절망의 나라로부터 날아온 화해의 새에요. 그래? 목사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절망나라 백성들 이제 다 지치고 쓰러져가요.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죠. 그들에게 아직 남은 소망이 있다면 그건 딱 하나. 부디 우리 아이들 이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하지만 고인들이랑 함께 시골 한 번 가보세요. 하나씩 하나씩 차례 차례 폐교가 되어가는 그곳 학교를. 또 아직 남아있는 학교를.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에요. 버려진 자식.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자식들이란 말에요.
그건 나라가 걱정해야할 일 아닌가? 물론 그렇죠. 하지만, 목사님. 교회도 나서야 하는 일 아닌가요? 화해의 장을 여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지? 목사님 한층 더 부드러워진다.
아주 간단해요. 요즘은 인터넷 시대잖아요. 아! 컴퓨터! 그거 벌써 해봤는데 게임만 한다고 그러더라고! 참 목사님도. 그냥 들어보세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입김이 맞닿는 거죠. 그냥 갖다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거기 아이들과 여기 청년들을 맺어준단 말이죠. 공부하다 모르는 것 물어봐도 좋고,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요. 또 책도 보내주는 거예요. 교인들이 읽었던 책을 쪽지를 넣어 보내주면 어때요. 이야기 나눌 것도 더 생기겠죠. 그리고 시간을 내어 그쪽에 가서 같이 어울리는 거죠. 꼭 그쪽 학생들만 위하는 일방적 봉사는 아니거든요. 여기 젊은이들의 삶도 더 깊어질 테니까요. 그래?
또 있어요. 목사님. 뭔데? 교회의 활력이 어디서 나오죠? 설교와 기도 말고요. 당연히 성가대지. 그렇죠? 바로 시골학교에 음악반도 만들어주는 거예요. 바이올린이나 첼로. 이런 것 거기선 꿈도 못 꿔요. 하지만 사실 도시 관점에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좀 어렵더라도, 봉사 나가는 거죠. 몇이서 교대로 가면 되요. 언젠간 그 학생들 여기서 발표회도 열 수 있겠죠. 화려하진 않지만 감동이 흘러넘치는 그런 행사요. 달라질 거예요. 학교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나라가 달라질 거예요.
좋은 전도 방법이라고요? 에이 목사님. ‘에그 또 저 예수쟁이들’하고 미리 도망가지 않게, 우선은 그냥 하세요.
'뚝틀이의 생각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희망 없는 세상? (0) | 2009.01.01 |
---|---|
- 라듸오 - (0) | 2009.01.01 |
갑자기 비 쏟아지던 밤 (0) | 2009.01.01 |
머리는 하나, 손가락은 열 (0) | 2009.01.01 |
무엇인가 심고 가꾼다는 것 (0) | 2009.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