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작은새가 꿈꾸는 아름다운 만남

뚝틀이 2009. 1. 1. 22:58
작은새 또 생각에 잠긴다. 생각은 자유 아닌가. 오늘의 생각제목? Crescendo 상록수.
어떤 만남이 아름다울까. 재벌아들과 시골처녀의 만남? 그건 신데렐라잖아. 도시총각과 꿈 많은 시골소녀? 그건 그 亞流고.
도시 아가씨와 시골소년? 이번엔 TV 문학관이네. 그럼 단수복수 남녀 따지지 말고, 도시젊은이와 시골아이들? 훨씬 낫네.
사랑이야기? 물론 사랑이야기. 하지만 그런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랑이야기.

뭔 생각이냐고? 두 동강난 나라. 아~! 강남 강북, 영남 호남 뭐 그런 거? 아니! 지도에 죽죽 그어놓는 그런 線이 아니라 희망나라 절망나라 갈라놓은 마음이야기!
절망에 빠진 사람은 교회에 가서 희망을 찾으면 될 것 아니냐고? 지금 뭔 소릴. ‘장로님을 대통령으로’ 기도해서 부자들 더 잘 살고 가난한 사람 계속 더 고생하게 만든 그 대한민국 교회들? 끼리끼리 모여서, 어디 땅 무슨 회원권 어느 자리 등등 갖가지 소망을 이루려 열 올리는 그 교회? 그 먼 나라 아프가니스탄에 선교 보내 젊은 목숨 산화시킨 그 교회?
왜 갑자기 흥분하느냐고? 나에게 묻지 말고, 노블리스 오블리도 모르고 설쳐대는 저 1% 어린 들에게 물어보고, 또 절망나라 백성들에게도 물어봐. 명예와 부 또 권력 그 어느 것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 먹어치우고도, 아직도 게걸스럽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희망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이미 대한민국은 없어. 사라졌어. 맺힌 사람들이 분노를 삭일 곳을 찾는 大民國이라면 몰라도.

다시 마음을 갈아 앉힌 작은새 생각을 계속한다. 젊은 피 어디 없는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은 피. 낡은 세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니 누가 나서서 내려누르고 막을지라도, 꿈틀대며 다시 살아나곤 하는 그런 젊은 피. 이땅에 진리가 아직 살아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 모습 아니겠는가. 상록수의 피를 다시 살릴 수는 없을까. 희망나라 젊은이들이 절망나라 아이들과 손에 손을 잡고 그 날려버릴 그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날개는 뒀다 뭐에 쓸 기여. 작은새 희망나라 그럴 듯한 교회로 날아가 목사님 방에 들어선다. 목사님! 이웃사랑이요. 뭐?! 헌금이요. 예끼! 하나님께 바친 거 맞죠? 당근이지! 그럼 불쌍한 이웃 도와주면 하나님 화내시나요? 지금 도와주고 있는데 뭔 소리여. 선교사 보내고 개척교회 지원하고 얼마나 애쓰고 있는데. 목사님! 청년부요. 그건 또 뭔 소리여? 더불어 살기 안 되나요? 도대체 지금 뭔 소리 하려고 이러는 거여?

이런 툭툭 화법으론 안 되겠다 싶어,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작은새 다시 시작한다. 목사님네 성가대소린 밝고, 힘차고, 아름답고, 화려하죠. 그렇죠. 자랑스럽죠? 하지만, 그거 아세요? 절망나라 백성들 한숨이 그만큼 더 깊어지고 있다는 거요. 교회 나오면 될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시겠죠. 하지만, 또 이거 아세요? 그 절망나라 백성들에겐 여기 부자교회가 아프가니스탄보다 더 멀고 푸른 기와집보다 더 높다는 것을요. 어쩌면 여기 교회가 그 등 돌리는 사람들만큼 하나님께 죄 짓고 있는지도 몰라요.
목사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작은새 저는 절망의 나라로부터 날아온 화해의 새에요. 그래? 목사님 표정이 약간 부드러워진다. 절망나라 백성들 이제 다 지치고 쓰러져가요.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죠. 그들에게 아직 남은 소망이 있다면 그건 딱 하나. 부디 우리 아이들 이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하지만 고인들이랑 함께 시골 한 번 가보세요. 하나씩 하나씩 차례 차례 폐교가 되어가는 그곳 학교를. 또 아직 남아있는 학교를.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에요. 버려진 자식. 나라로부터 버림받은 자식들이란 말에요.
그건 나라가 걱정해야할 일 아닌가? 물론 그렇죠. 하지만, 목사님. 교회도 나서야 하는 일 아닌가요? 화해의 장을 여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되지? 목사님 한층 더 부드러워진다.

아주 간단해요. 요즘은 인터넷 시대잖아요. 아! 컴퓨터! 그거 벌써 해봤는데 게임만 한다고 그러더라고! 참 목사님도. 그냥 들어보세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입김이 맞닿는 거죠. 그냥 갖다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거기 아이들과 여기 청년들을 맺어준단 말이죠. 공부하다 모르는 것 물어봐도 좋고, 삶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도 좋고요. 또 책도 보내주는 거예요. 교인들이 읽었던 책을 쪽지를 넣어 보내주면 어때요. 이야기 나눌 것도 더 생기겠죠. 그리고 시간을 내어 그쪽에 가서 같이 어울리는 거죠. 꼭 그쪽 학생들만 위하는 일방적 봉사는 아니거든요. 여기 젊은이들의 삶도 더 깊어질 테니까요. 그래?

또 있어요. 목사님. 뭔데? 교회의 활력이 어디서 나오죠? 설교와 기도 말고요. 당연히 성가대지. 그렇죠? 바로 시골학교에 음악반도 만들어주는 거예요. 바이올린이나 첼로. 이런 것 거기선 꿈도 못 꿔요. 하지만 사실 도시 관점에선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여기서, 좀 어렵더라도, 봉사 나가는 거죠. 몇이서 교대로 가면 되요. 언젠간 그 학생들 여기서 발표회도 열 수 있겠죠. 화려하진 않지만 감동이 흘러넘치는 그런 행사요. 달라질 거예요. 학교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나라가 달라질 거예요.

좋은 전도 방법이라고요? 에이 목사님. ‘에그 또 저 예수쟁이들’하고 미리 도망가지 않게, 우선은 그냥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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