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주문하기 전 Gridlock이란 단어의 의미를 웹스터에서 찾아보니 A traffic jam so bad that no movement is possible 이라고 되어있다. 작가 마이클 헬러는 경제분야에도 이렇게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며, 그 현상 설명을 위해 반공유재(anticommons)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먼저, 그의 이야기를 재생하면 이렇다.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유재(commons)는 남용되기 쉽고 황폐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특정인에게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는데, 이는 그 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책임자를 선정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산절차(또는 재산분할)를 거치면서 그 소유권이 지나치게 여러 사람에게 흩어지게 되면, 이제는 오히려 그 경제재가 활용되지 못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그 예로 신약개발을 하려는 회사가 부닥뜨리게 되는 수많은 특허의 장벽, 전기 작가가 완벽하게 처리해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저작권, 모스크바의 상권개발, 미국 무선통신에서의 주파수대역 할당문제들을 들고 있다.), 이것은 비극이 아니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두 가지 부자연스러움에 거부감을 느낀다. 우선 이 책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그리고 또 자주 반복된다. 마치 자신의 신조어 ‘반공유재의 비극’이라는 말이 널리 활용되기를 바라며 집요하게 설득작업을 벌이는 저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보다 근본적으로 더욱 중요한 또 하나는, 소유권(그것이 재산의 소유권이건 지적 소유권이건 또는 정부가 할당해주는 무슨 사용권이건 상관없이) 거기에는 역사적 사회적 배경에서 나온 타당한 이유가 있다는 긍정적인 관점을 애써 무시하고, 지나칠 정도로 몇몇 단편적인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그런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무슨 개발 또는 효과적 활용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포기될 수밖에 없도록 강요당하고, 소수의 특정인이 그 경제적 이득을 독점하게 되는 현상을 수없이 보게 되는 신자유주의하의 씁쓸한 경제현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책을 읽는 내내 이 저자 Heller와 머릿속에서 논쟁을 벌인 그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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