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풀렸던 날씨가 다시 겨울에 들어선 듯 쌀쌀하기 그지없다. 창밖을 내다보다 책꽂이에 눈을 돌린다. ‘야생화 편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우리시대 비극의 상징. 엉뚱한 죄목으로 잡혀 들어가 소위 사상범이란 누명을 쓰고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한 지식인이 수감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려 야생초를 키우며 딸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펴낸 책. 시대를 앞서가던 지성인이 차마 직설적 이야기를 꺼낼 수 없어 알레고리로 가득 채운 책이라 생각하고 구입했고, 또 그런 마음으로 이해하며 읽었던 책. 꺼내서 몇 장을 들쳐본다.
야생초 그림. 참 잘도 그렸다. 전번에 읽었을 때와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동안 나에게 야생화 사진 찍기란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것.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번엔 눈에 쏙 들어온다. 미술적 가치야 내 잘 모르지만, 야생화라는 것에 공통관심을 가진 ‘동호인’으로서 그의 전초 표현능력에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하기야, 저자는 학창시절 식물 쪽을 전공했고, 또 수감생활 중에도 될 수 있는 대로 원예와 잡초 쪽의 일을 맡아하려 애를 썼던 전공자 아니던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관심의 차이. 나에게 있어서 야생초는 꽃을 피우는 잡초인데, 그에게 있어서 야생초는 먹거리 재료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바깥세상을 다녀오게 될 때마다 푸른 풀이나 그 씨를 챙겨 귀하게 키우는 그 ‘식물’들. 삭막하기만 한 감방생활에 ‘자연스러움’을 들여놓는 한 편, 감방동료들에게 싱싱한 계절음식을 맛보게 하는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그 아니던가. 요란하고 신기한 것? 천만에. 까마중 제비꽃 딱지풀 쇠비름 수까치깨 등 바로 우리 집 근처에도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런 종류들 아닌가.
지난 번 읽을 때 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알레고리가 바로 이것이던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깨끗하게 정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강인함과 끈질김. 깊음과 자연스러움. 무엇이 진정 살아있는 세계이고 무엇에 우리가 속고 무엇에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속아 넘어가고 있는가. 지금 쯤 이 저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그의 건강은 어떨까. 그의 집 앞마당이 정말 야생초로 가득 찼을까? 그의 먹거리는?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고 그가 그린 땅빈대 비름 돌콩 왕고들빼기 그림들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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