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漢詩라면 당연히 중국 땅의 詩이고, 이 땅의 詩는 우리말로 지은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漢詩’라니. 가만 있자.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기 전에는?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을 이야기하던 최치원의 느낌. 자기나라 글이 없다고 자신의 감정조차 표현할 수 없었을까? 잔뜩 기대에 부풀어 책을 손에 잡는다.
책의 첫 장은 ‘시를 소리 내어 읽는 맛’인데, 최치원의 秋夜雨中으로부터 시작한다.
秋風惟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
가을바람 씁쓸한 생각.. 웅얼거림.., 알아주는 사람 없고, 창밖 깊은 밤비, 등불 멀리 마음...? 도대체 뭔 소리여? 시의 분위기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작가의 느낌이 와 닿지는 않는다. 느낌을 나타내는데 말이 먼저인가 글이 먼저인가.
저자의 번역을 읽어본다. 제목은 '가을 밤 비 내리는데'(벌써 그럴 듯하네.)
가을바람에 시나 괴롭게 읊조릴 뿐, 온 세상에 나를 알아줄 이 없구나.
창 밖에는 한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등불 앞에는 만 리를 달래는 마음.
얼씨구. 단군할아버지 바로 다음이 세종대왕이셨다면, 최치원이 이렇게 썼었을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입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종이에 옮길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많이 배우고 漢子사용이 생활화 된 이런 유식한 사람에게 그런 고통은 없었다 치더라도,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에게, 識者들의 마음에, 전달되는 느낌이 정말 쓴 사람의 의도 그대로였을까? 1:1의 번역처럼 그렇게 ‘정확하게’말이다.
漢詩를 읽어보겠다는 마음은 일찍이 접어두고, 단지 저자의 번역을 통해 우리글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선조들의 詩心에 접해본다는 마음으로 계속 읽는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윤선도나 정철의 조선시대 이전에도 우리에게 詩문학이란 것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問余何意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閒류의 李白이 자연과 사랑을 읊고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류의 杜甫가 백성의 고통을 들려주던 당나라도 우리의 통일신라시대였고 또 王安石이나 陶淵明의 詩가 꽃 피던 宋나라도 우리의 고려시대가 아니었던가. 그 唐宋시대의 우리에겐 어떤 시가 있었을까.
박인량, 정법사, 정지상, 권필, 이안눌.... 전혀 몰랐던 이름들과 그 작품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하지만, 전혀 생소하지가 않다. 저자가 그들이 어떤 시대에 살았었는지, 또 그들의 성품이 어땠는지 꼭 필요한 만큼씩 설명을 달아주기에. 그 동안 전혀 몰랐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그런 느낌이라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수많은 작가와 시를 그냥 뱉어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漢詩강좌. 저자는 현재 서울대 국어국문과에 몸을 담고 있단다. 직업의식. 그는 지식을 불어넣어주려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시 속의 그림, 그림 속의 시’, ‘꽃그늘에 어린 미련’, ‘춘흥과 가진 자의 여유’,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한시의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속에 담긴 뜻이 얼마나 깊은지, 마치 “여러분이 모르던 아름다운 세계가 여기에 활짝 열려있으니, 어서어서 오세요.” 애절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노래하고 있는 듯, 저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 번에 읽어버릴 책이 아니다. 그저 곁에 놔두고, 시심이라는 것에 가까이 가보고 싶을 때, 그때마다 한 번씩, 창밖을 가끔씩 내다보며 열어볼 그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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