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례 사
신랑 ㅇㅇㅇ
신부 ㅇㅇㅇ
오늘의 주인공 신랑 ㅇㅇㅇ군과 신부 ㅇㅇㅇ양이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조금 전 혼인서약 때 두 사람의 표정은 밝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동안 사랑이 결실을 맺어 새로운 가정을 탄생시키는 아름다운 순간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어요. 생애에 가장 기쁜 날이죠. 이 주례는 여기 모이신 수많은 하객들과 함께 이 사랑의 결실을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잘 사세요! 검고 싱싱한 머리가 흰 파뿌리처럼 거칠어질 때까지 행복하게 사세요!”
두 사람. 이렇게 기쁜 날일수록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렇게 믿음직한 성인으로 설 수 있게 되기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의 은혜 말입니다. 본인들은 그 고생하신 것을 잘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온갖 귀여움을 받으며 어려움 없이 자라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이 자리에 앉으신 분들 중 많은 이들이 부모님께서 애쓰신 그 단계 단계의 과정을 지켜보셨고, 또 그러기에 더욱 크게 기뻐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사실 두 사람 역시 지금 그와 똑 같이 오늘 부모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기도 합니다.
이 주례는 신랑 ㅇㅇㅇ군을 오랫동안 알아온 만큼 그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신부 ㅇㅇㅇ양과는 지난 번 저의 집에서 짧은 시간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데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두 사람 다 세상일에 대한 이해가 깊고 또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주 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범적인 젊은이로 자란 것은 다 부모님께서 본을 보여주셨고 사랑으로 키워 주신 덕이라 생각합니다. 우선 이 주례가 이 두 사람을 대신하여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주례는 사랑과 대화 또 행복의 의미를 이야기해줌으로써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려고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요 형용사라 생각합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고요? 사실 저 역시 요새 새로운 사랑에 빠졌거든요. 제가 지금 말하는 사랑의 대상은 바로 야생화입니다. 전에는 야생화를 무슨 그럴듯한 사진첩에 들어있는 꽃 그 정도로 생각했었습니다. 무슨무슨 꽃. 그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사랑에 빠지고 나니 이름이 아니라 숨결이고 향기가 되었단 말이요.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ㅇㅇㅇ,ㅇㅇ. 그런 상대방의 이름이 아니라, 마음이 살아 다가오는 인격체요 동적존재로 말입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끊임없는 재발견의 대상으로 말이죠.
가정이란 무엇일까요. 가정은 보금자리입니다. 사랑의 보금자리. 참 아름다운 말이죠.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세찬 비바람이 저 밖 세상에 몰아쳐도, 이 보금자리 속에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넘치는 그런 곳. 사랑의 속삭임과 행복만이 가득한 곳. 그런 보금자리의 성격은 명확합니다.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중심. 바로 그것이 가정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은 바깥세상의 연장선상에 있어서도 안 되고, 바깥세상의 일을 준비하는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상과 가정은 별개, 완전별개가 되어야합니다. 집안에서는 바깥세상에서 힘들었던 이야기, 그런 것 잊으세요. TV 세상에 빠져들지도 마세요. 그냥 마주앉아 즐겁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세요. 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한 그 부부는 그 나이가 얼마든 상관없이 젊은 부부입니다. 하는 이야기마다 피곤함과 아쉬움으로 가득하다면 그 부부는 나이에 상관없이 이미 늙고 무기력한 부부이고요.
그런데 말이죠. 말은 참 쉬운데 이 대화 특히 신혼부부사이의 대화라는 것엔 참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분명 좋은 뜻으로 이야기했는데 예상치도 못했던 오해가 생기고,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데 때로는 이상하게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요.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니까요. 한 집안의 장남으로 자라난 신랑과 한 집안의 셋째 딸로 자라난 신부. 전자공학 박사인 신랑과 생명공학 박사인 신부. 그 성장배경도 다르고 활동하는 세계도 다른데, 어찌 두 사람의 사고방식이 완전히 일치할 수 있겠어요. 중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나도 상대방도 다 우리가정의 행복을 위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접근방법과 표현방법에서 차이가 있는 것뿐이라고.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시간에는 그 어떤 것도 어렵지 않게 슬그머니 풀어주는 엄마손 같은 신비한 힘이 있거든요.
기본적 마음가짐은 솔직함, 꾸밈없는 솔직함, 바로 그것이어야 합니다. 유치원생처럼 솔직하고 즐겁게 지내세요. 기쁜 일이 있을 땐, 무게 잡느라 뜸들이지 말고, 그냥 어린애처럼 좋아하세요. 사랑한다는 이야기도 아끼지 말고요. 그 얘기한다고 무게가 없어지거나 벌금 내는 일 없습니다. 그렇지만 또 섭섭한 일이 있을 때는 마음이 괴롭다고 힘들다고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가슴에 덮어두지 말고.
물론 그렇다고 생각나는 것마다 모두 다 이야기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은 성인과 성인과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른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알고 말하지 않는 상대방의 진심도 알아보는 법입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방의 말 한마디로 인한 상처는 그만큼 더 깊습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본의 아니게 건드렸다면, 지체 없이 사과하세요. 본뜻은 그게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삶이란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요. 정말 그럴까요? 이 주례의 생각은 다릅니다. 마라톤이란 게 무엇입니까. 시작부터 42.195Km 앞에 있는 목표를 생각하며 각오를 단단히 하고, 달리는 내내 그 목표만 생각하며 온갖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그런 것 아닌가요? 전 요새 그 차이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산에 오를 때 땅 하고 시작하면 정상까지 강행군을 하곤 했었죠. 숫자와 효율. 집에서 얼마 떨어진 해발 몇 미터의 산봉우리를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어쩌고저쩌고....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어요. 히야. 이 꽃 참 예쁘네. 저건 또 뭐지? 설렘과 기대. 카메라들 들이대고 숨을 죽이고. 꽃이 아니라 꽃에 비치는 빛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려 애쓰며. 그럴 땐 목표니 효율이니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전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그 어려움에 비례해 그때그때의 기쁨과 성취감이 더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식으로 다니다보니, 정상에 도달하곤 빈도가 더욱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오늘은 중간에서 그냥 돌아와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두 사람의 가정에도 꿈이라는 목표가 있습니다.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이 주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목표를 이룰 때까지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각오 못지않게 그 과정에서의 기쁨과 행복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과 상담할 때 제가 즐겨 쓰는 이야기가 있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당신의 행복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네 행복 내 행복이 함께 쌓여갈 때 우리 모두의 행복이 있는 것이지, 너도 희생하고 나도 희생해서 우리의 행복이 완성되는 그런 법은 없다. 시간적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마세요. 오늘의 행복은 오늘의 몫이고, 내일의 행복은 내일 몫입니다. 하루하루의 행복이 쌓여나가면서 삶 전체의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이제 이 주례사를 마치려 합니다.
두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인격체입니다. 다정하게 마주 앉아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하세요.
희망과 꿈과 사랑에 대해서.
또, 절대 잊지 마세요. 오늘의 행복은 오늘 몫이고, 내일의 행복은 내일 몫이라는 것을요.
두 사람의 밝은 보금자리가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09. 6. 7.
주례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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