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Arthur Conan Doyle의 ‘The Return of Sherlock Holmes’

뚝틀이 2009. 10. 8. 08:02

'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1892)'를 읽은 지 얼마 안 되어 좀 나중에 읽을까 생각했는데, 어쩌다 손에 잡고 말았고, 결국 이 1904년판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다른 책은 다 젖혀놓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차분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산뜻하게 정제된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을까. 마치 현대음악에 찌든 귀를 브람스나 리스트의 소곡들로 달래주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 책이 쓰인 것이 1904년이니 그때는 다 그랬을까.(하긴 단편소설 모음이라는 그 성격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 읽었던 단편소설 모음집의 다른 작가의 작품들에서는 그런 산뜻함을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

 

공부하기 힘들다 느껴지던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또 여기 실린 내용을 처음 알아내었던 더 앞선 사람이 당연히 있었을 테고. 그런데 뭐 겨우 이해가 되느니 안 되느니? 발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또 그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주고자하는 사람은? 그렇다면 내가 그 발명자요 내가 그 전달자라면? 어떻게 하면 읽는 사람이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을 쓸 수 있을까. 그렇게 '입장 바꿔 생각해봐'를 시작한 다음엔 어떤 책을 읽어도 저자와 같은 '급'에서 '편안하게' 책들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던 그 옛 생각이.

 

이 산뜻한 책을 읽으며, 또 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160년이 된 에드가 알렌 포우의 소설들을 읽으며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들 종횡무진 상상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그렇게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낼 수 있을까. 나도 이런 추리소설을 쓸 수 있을까? 요즘 흔하게 보듯이 그저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것저것 다 들먹이며 이야기 질질 끌다가, 끝 부분에 가서야 어이쿠 하며 그 동안 이어져왔던 스토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갑작스런 반전을 집어넣으며 '자기 흥분 상태'에서 쓰는 그런 소설이 아닌, 정말로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멋진 이야기를?

 

원리적으로야 전혀 어려울 것 같지 않다. 흥미를 끄는 테마를 곁들인 사건 하나를 잡고(생각해내고), 그 이야기의 맥이 '빈틈없이' 이어져가도록 ‘사건일지’를 가지런히 정리할 것(물론 메모 형태로). 이 '그림'을 퍼즐놀이에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구분하여 잘라낼 것(물론 그 조각들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서의 '그림가치'를 갖도록 할 것). 놀이참가자의 흥미를 돋우도록 그 조각들을 잘 섞을 것(물론 독자가 너무 어지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이제 그 '새로 형성된 새 순서'에 따라 '새로' 세밀하게 다듬어나가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것(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는 주저리주저리 따위를 넣지 말 것). 하지만 내 아무리 그렇게 한다 해도, 아서 코난 도일의 그 차분하고 정교하게 복선을 깔아놓는 그 천부적 재능을 어찌 감히 흉내나 낼 수 있었겠나. 모처럼 오랜 만에 ‘읽는 즐거움’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그 자체가 행복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