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가벼운 이야기 하나.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자신의 일은 젖혀놓고 경마에 미친 사람 하나 있었답니다. 한숨만 푹푹 쉬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죠. 내일 이러 이런 이름 달린 말에 돈을 걸라고. 대답할 틈도 없이 전화를 툭 끊어버리더랍니다. 미덥지는 않지만, 속는 셈 치고 그 말에 돈을 걸었죠. 우승! 이 기쁨 얼마 만에 만져보는 돈 덩인가. 그 다음 주 같은 시간. 또 그 사람의 전화였어요. 지난 번 기분 어떻더냐고. 사례금 이야기를 꺼내려 하자, 정중히 거절하며, 다음 말을 추천하더랍니다. 또 히트. 세상에! 이번엔 확률 또한 제대로 걸려들어 적지 않은 액수를 거머쥐었더랍니다.
이제야 그가 사례를 요구하더래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였지만 그래도 고마운데 어쩌겠어요. 두 말 없이 보냈죠.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지난 번 그 약한 말을 또 추천하더랍니다. 따랐죠. 역시 또 히트! 완전히 넋이 나갈 일 아녜요? 귀신이 곡한다는 말 이런 때 쓰지 언제 또 쓰겠어요. 이번엔 정말로 거액을 요구하더랍니다. 그래도, 내 이거 다 사실 그 사람 덕에 번건데. 그 큰돈을 송금하고 나니, 곧 전화가 오더랍디다. 이번엔 아주 크게 걸라고. 그런데 그가 추천한 그 말이 영 맘에 들지 않았거든요. 사실 자기도 이 바닥에서 논지가 얼마 되는데... 이젠 자기도 큰돈 관리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신중 차원에서 조금만 걸었답니다. 이런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엄청난 배수에, 자신의 소심함이 너무 원망스러웠죠. 어쨌든 네 번 연속이라는 믿기지 사실에 정신 완전히 나갔죠.
다음번엔 꼭 그의 말을 따르리라 마음에 다짐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오더랍니다. “여보세요?” 목소리까지 떨리며 전화를 받았죠. 그런데, 저쪽 차분한 목소리는 그가 아니고, 경찰이더래요. 어디어디로 좀 나오실 수 있겠냐고.
꾸며낸 이야기? 물론 그렇다. 84=4,096 이야기다. 심심해서 만들어본 이야기? 그렇게 심심하지도 한가하지도 않다. 요즘 갑자기 우리사회의 전면에 나서서 설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보며, 하도 답답해서, 성공이란 무엇인가를 수학적 놀이를 해봤을 뿐이다.
꼭 그렇게 아주 미련하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카버 할 필요는 없다. 적당한 샘플링에 적당한 칼라를 붙여가며, 걸려든 먹이를 요리만 하면 된다. 혼자 소화하기 벅차면, 여럿이 나눠 해도 된다. 어차피 한 주일이 지나갈 때마다, 대부분 미끼가 떨어져나가게 마련이니. 사기성 비즈니스 플랜? 그것도 아니다. 미끼로 걸려들어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려 함이다.
진정 우리 사회에서, 성공 그 본래의 의미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그런 연속히트의 예는 없는 것일까? 미국이나 유럽의 무슨 전설적인 사람들처럼 말이다. 협잡이니 요행수니 그런 것 없이, 정도만 걸으며 모범적으로 사업을 일으킨 사람. 일시적 이익을 마다하고 원칙을 더 소중히 여기며, 청빈 그 자체를 가장 큰 명예로 생각해온 학자와 정치가. 무엇이 작은 일이고 무엇이 큰일인지, 무엇이 급한 일이고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는 사회의 어른. 정녕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엔 없단 이렇게도 말인가?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인재의 풀은 분명 넓고도 클 것이다.
매주 같은 시간의 그 따르릉 소리에 자신의 행운을 목매어 기다리던 이 사람 .그 전화 상대방이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궁금했을까. 하지만, 그 '굉장한' 존재가 결국 경찰서에 붙잡혀 앉아있는 사기꾼인 것을 알았을 때,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실망과 부끄러움? 그 사람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주위사람들에게, 자신이 비록 사기꾼에게 걸려들긴 했지만 그래도 행운의 케이스였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기가 얼마나 자료를 캐고 연구해서 이렇게 성공하게 되었는지 허풍을 떠느라 바쁠 것인가.
하나같이 통속적 방법으로 부를 쌓은 저들을 보며, 이 전화질하던 사기꾼과 전화만 기다리던 한심한 작자들과 무엇이 다를까하는 의문이 든다. 한 세상 살다보면 옳지 않은 세계에서, 옳지 않은 방법으로, 옳지 못한 재물을 바라게 되기도 한다. 인간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자신의 본업보다는 요행수를 더 바라는 것. 이것 또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요행을 움켜쥐고 부끄러움은커녕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이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런 것에 대한 부끄러움, 그것은 어쩌면 양심에 심어져있는 본능 아닐까?
그런데 이들은 도대체 무슨 별종들이고, 어떻게 이렇게 부끄러움도 모르는 존재들이란 말인가? 너무 넘겨짚는다고? 그들의 모습에서 전혀 큰 그릇의 면모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통제란 기본도 없고, 위기의 순간에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지엽적인지, 어떤 것이 큰일이고 어떤 것이 급한 일인지 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분명 큰 그릇이 될 준비를 하며 내공을 쌓아온 인재들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달리는 말에 행운을 걸고 넋이 빠져 살아온 이 사람들이 아니고서야.
어쩌다 우리가 이런 족속들이 판치는 꼴을 보며 그냥 분만 삼키고 있어야하는 처지가 되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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