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이공계 살리기 그것만이 길이다.

뚝틀이 2010. 4. 4. 21:20

빙빙 돌려 이야기 할 것 없다. 과학기술 시들면 제조업 무너지고, 제조업 없어지면 서비스산업 설 자리 없다. 이 점에선 미국 유럽 일본 그 어느 나라도 다 마찬가지다. 일자리 시들시들 다 녹아버린 후, 금융기관 돈 놀이로 온 국민이 먹고 살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우리나라엔 그 알량한 자본조차도 없으니 이야기해 무엇 하랴.

 

과학기술 없는 우리의 앞날? 상상할 필요도 없다. 기억으로 충분하다. 멀리는 한국전쟁 가까이는 외환위기 그때의 모습에 악몽을 더하면 생생한 그림 나온다.

우리가 이미 그 길로 들어섰고, 이제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그런 걱정 필요 없다. 아직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지금은 단지 불경기일 뿐, 서민들만 죽어나고 가진 자들은 흥청망청 ‘두 그룹 시대’가 고착되기 전 정신만 차린다면, 급변하는 지정학적 상황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잘 활용만 한다면, 오히려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적성하나 믿고 전공을 택했지만 불확실한 앞날에 서글픔만 느낀다는 이공계학생들의 탄식소리 들리는가.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위기가 닥쳤을 때 이 나라 건질 자 누구인가. 판사 검사 변호사? 아니면 의사? 이런 농담이 혐오스럽다고? 하지만 엄연한 현실 아닌가. 공부 좀 한다하면 의대 법대 경영대에 기 쓰고 달려드는 학생들 그 부모들.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 하나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이공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체질적으로 성실하고 또 논리적이요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세계에선 협잡 궤변 식언 그 어느 것도 통하질 않는다. 오직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며 ‘왜’라는 탐구의식과 ‘어떻게’라는 목적의식으로 이 세상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존재들이요, 이 세상을 정화시키는 존재들이다. 이 혼탁한 우리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그런 존재들이란 말이다.

 

앞날을 이야기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오늘 우리사회 이 모습은 과거가 누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사회현상 역시 과학적 시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아야한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우리는 ‘완전 제로’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다. 기반이 있었나, 산업이 있었나. 그때 앞을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시장’을 보았다. 일본에 미국에 필요한 기술 얼마든지 널려 있었고, 이 땅엔 일자리 구하는 사람들이 넘쳐흘렀으니, 권력자 힘 빌어 먼저 손대는 사람이 임자였다. 정부도 산업육성이라는 미명하에 기꺼이 수입규제란 울타리를 쳐주었고. 그런 풍토에서의 엔지니어란 어디선가 구해온 기술을 소화해 팔리는 물건으로 시장에 내어놓는 누에였을 뿐이었다. 회사에 말썽이 생겨도 권력자의 비호를 업고 말끔히 처리하는 해결사들이 중요한 존재였으니, 어려워도 잘 되도 엔지니어나 과학자 그들의 존재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이 그들의 인식이었다. 소용없다 싶으면 언제든지 우선적으로 내칠 수 있는 존재. 그런 것들이 누적되어 오늘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낳게 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과거다.

 

이제 한 번 물어보자. IMF에 능욕을 당하던 그때 그 환란이 바로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리고 또 다시 이번 이 휘청거림이 다가왔을 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을 예측하거나 경고한 경제학자나 정치가가 있었던가? 부끄러운 우리의 브레인들이여! 이공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자기의 기술은 없고 남의 것만 흉내 내어 지은 이 사상누각이 아주 작은 충격에도 힘없이 무너지리라는 것을. 아무리 애써 무엇인가 만들어도 외국제만 선호하는 바로 자신들의 식구들과 이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하지만 이 누에의 말을 알아들을 사람도 없었고, 통역사도 없었다.

 

그 흑암 속에서 우리를 건져낸 것 누구이던가. 바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만 정진하던 현대 삼성 엘지의 연구원들 엔지니어들이었고, 완제품에 필요한 부품을 갈고 닦은 우리 중소기업 엔지니어들이었고, 그 만든 물건들을 팔러 맨발로 지구 곳곳을 누비었던 우리의 영업사원들과 경영인들이었다. 국회가 정치가 그렇게 발목을 잡았어도 이들은 밤낮을 잊고 일했고, 추위 더위 가리지 않고 뛰었다. 유능한 일꾼들을 키워낸 우리의 이공계 대학들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없었다면 전혀 불가능했던 꿈만 같은 이야기.

 

지금 세계경제는 또 한 번 위기에 처해있다. 촛불도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고 했던가? 혹 지금의 우리가 바로 그 촛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직시하자. 앞날을 직시하자. 아무리 그럴듯한 말로 호도를 하려해도 하나는 확실하다. 미국중심의 경제 질서는 무너진다. 군사대국으로 남아있다고 경제대국위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보라. 저 나라 국민들 무엇으로 먹고 살겠나. 보잉? 애플? 아바타? 손가락으로 몇 개 꼽아본다는 것이 벌써 별 볼일 없게 되었다는 산 증거다. 그쪽 대학이 아무리 전 세계 인재를 끌어 모은다 해도, 그 인재들 일할 곳 몇 군데나 되겠나.

 

막강했던 일본 역시 이미 비슷한 코스로 들어섰다고들 이야기한다. 무엇이 일본을 막강하게 만들었었나. 바로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었다. 그들의 문제는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은? 싸구려물건이나 만든다고 비웃었던 때가 언제이던가. 이제 그들은 우리나라 군인 수와 맞먹는 공과대학 졸업생을 뱉어내고 있는 기술 강국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중국이 자기 소리를 높여갈 수 있게 된 것이고.

 

나라가 힘들어질 때 잘 되는 집 몇 집 있다. 싸움판 점점 더 시끄러워질 테니 변호사 돈 벌겠고, 스트레스 쌓여가며 사람들 더욱 더 몸을 혹사시킬 테니 의사들 돈 벌겠고, 어려운 사람들 애걸복걸 사정하니 은행들 큰 소리 치며 돈 벌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20년 뒤 40년 뒤에는? 그때도 역시 돈놀이?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처럼 쌓아놓은 돈이나 있나?

 

세상 역사 언제나 그래왔듯, 반성하고 부끄러워 자숙해야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떳떳하게 앞에 나서는 그 모습은 오늘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초등학교 급식 대학입시사정관 이런 문제로 골 아픈 장관이 국력의 핵심인 과학기술까지 챙겨야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놓은 저들이 입으로는 번드르르하게 한국의 미래 ‘걱정’이다. 그들이 외치는 인재확보란 아직도 소모품의 확보를 의미하고, 그들이 외치는 기술개발은 단지 수단의 확보를 의미한다. 그들 사고의 틀은 아직 재벌중심 경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들이 화려한 주체이고, 엔지니어는 아직도 객체인 누에일 뿐이다.

 

인식. 인식이 바뀌어야한다. 과거 어느 전쟁보다 치열한 것이 지금의 과학기술경쟁이다. 군대를 키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 분야의 인력확보다.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4대강 살리기 몇 배 중요한 것이 과학기술 살리기요, 세종시 수정안보다 몇 배 더 급한 것이 과학기술 정책 수정이다. 그 에너지 그 예산의 몇 분의 일만 가지고도 국력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다.

 

또 미래를 짊어질 우리의 젊은이들이여. 경제적 윤택이 그대들 진정한 바램이라면, 스케일 한 번 크게 생각해보시라. 화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회계사를 권유한다면? 마찬가지다. 과학에 공학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이 택할 전공 택할 직업이 따로 있지 않은가. 이제는 국경도 이념도 아무런 장벽이 아니다.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의사나 변호사, 앞으로 얼마나 그럴 것 같은가.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활짝 열린 앞으로의 세상 그것을 미리 볼 수 있는 자 그에게 미래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