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우리의 엔트로피

뚝틀이 2010. 5. 7. 22:31

왜 파라오의 이집트가 안토니우스 앞에 무릎 꿇는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처럼 눈 녹듯 사라졌고, 어쩌다 그 막강 로마가 일개 용병대장 오토 아게르의 칼자루에 막을 내리게 되었는지. 꼭 그쪽만 볼 것 뭐 있나. 당시 로마보다도 컸다는 漢나라는 왜 망했고 唐 明 淸 이 나라들은 또 왜 망했나. 무슨 역사학자의 현학적 학설 말고 손에 잡히는 설명 뭐 그런 것은 없을까?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 그것이 역사 아닌가? 전쟁을 이야기함이 아니다. 황제는 경쟁자를 ‘정리’하고, 임금은 충신을 죽이고, 역사책은 그런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권력다툼의 희생물로 사라져간 사람들은 대개 능력은 있지만 올곧은 사람들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알짜가 사라져가며 ‘퇴물찌꺼기’의 농도가 짙어져가는 과정 그것이 역사다.

 

楚漢志의 영웅 유방이 漢나라를 세우고 나서 한 일이 무엇인가. 우선은 자신의 통일과업에 위협이 될 인물들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또 말년엔 태자가 황제가 된 후 말썽을 부릴 가능성 있는 사람들의 씨를 말리는 것, 그가 매달렸던 것은 오직 그 작업뿐이었다. 어디 그만 그랬던가. 주원장이 세운 明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꼭 나라를 세운 太祖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느 태자의 옹립과정에서도 ‘정리 작업’은 필수 코스였고, 그때마다 능력 있는 신하들은 싹싹 쓸려나갔다. 간신들의 농도가 짙어져 가며 진시황도 망했고, 그런 이야기가 수호지 삼국지 또 각종 무협지를 탄생시켰다.

 

‘멸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절대 권력이 무너짐과 동시에 ‘그 밑의 사람들’에겐 숨통이 트이게 마련이다. 周나라가 무너진 후 그 산산조각 춘추전국 덕분에 ‘생각하는 사람들’이 각종 사상을 들고 나오면서 중국문명의 토대가 마련됐고, 영주니 기사니 하는 소꿉장난 봉건주의가 무너지면서 무역과 상업의 부가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질서가 무너지고 권력구조가 깨어지는 것 그것이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엔트로피의 증가다. 예술의 시대가 철학과 과학의 시대로 그 ‘무질서’의 영역이 넓혀지는 현상 역시 엔트로피의 증가고. 신대륙 미국이 강국이 된 것도, 또 전 후 일본과 독일이 그렇게 빨리 부흥할 수 있었던 것도 기존 질서 속에 가려졌던 인재들의 등장이라는 엔트로피 증가 덕분이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사극을 보면 궁중에서 일어나는 일은 온통 권모술수. 충신들이 능력 있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며, 연개소문이 무너졌고, 신돈이 득세했고, 이완용이 도장을 찍었고.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왜 백가쟁명 사상의 세계도 없었고 르네상스 화려한 시대도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과 유럽에 비해 우리의 싸움은 그다지 치열하지가 않았다. 왕조 한 번 섰다하면 오백년 씩 간 나라가 세계 어디에 또 있는가. 우리는 그냥 ‘잠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잠깐. 진짜로 없었나? 없었다. 과거엔 없었다. 지금이라면 몰라도. 35년간의 치욕과 60년간의 대치에 이제 겨우 정신이 들기 시작한 모양이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 ‘과거의 기득권층’이 지금도 기득권층인 그런 구조로 남아있다. 한 때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는 듯 했지만, 이제 다시 사회 분위기는 고시 패스해야 의사가 되어야 ‘신분상승’이 가능하다 는 그런 사고방식의 시대로 되돌아갔다. 기득권 언론층에 질서가 투입되고 국민의 마음에 질서가 세워지려하고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 우리사회에서 그것은 아직 먼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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