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唐太宗.
원래 황위보다는 수양제의 딸 약석공주와의 사랑을 택해 멀리 떠나려 했는데, 형 이건성의 화살에 죽임을 당한 공주의 복수를 위해 다시 玄武門을 되돌아 들어가 형과 동생을 직접 죽이고 황위에 올랐다는 설도 있고, 또 우유부단한 부황과의 끊임없는 갈등 끝에 더 이상은 안 되겠다싶어 아버지 황제를 감금하고 자신이 황위에 올랐다는 설도 있는데, 어쨌든 세속적 관점에서는 그는 패륜아였다.
그런 그가 어떻게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으로 후세의 추앙을 받게 되었는가. 바로 개인과 국가와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한 그의 독특한 ‘爲民과 包容의 용인술’ 덕분이다.
태자인 형 이건성의 막강한 세력으로부터 목숨을 걸고 그 이세민의 목숨을 지켜준 소위 가신그룹의 원성.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그를 위해 봉사 했는데, 어떻게 이리 오랫동안 우리에게 벼슬 하나 내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당태종이 그들을 찾아가 하는 말.
“황제는 모름지기 公을 위하고 私를 버려서 천하에 복종해야 하는 것. 나와 너희들이 먹고 입는 것은 백성으로부터 나왔던 것이고, 관직을 만들고 그 자리에 현량한 사람을 뽑는 것이야말로 백성을 위한 것인데, 단지 옛 부하라는 이유만으로 벼슬을 주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느냐."
이세민이 황위에 오르고 받아든 살생부 제1순위는 자기를 죽이도록 끊임없이 간언했던 태자 이건성의 책사 魏徵(580-643)이었다. 하지만 그의 기개와 인물됨을 알고 있던 이세민은 그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諫議大夫라는 벼슬에 발탁하여 항상 곁에서 잘못에 간언할 것을 명한다. 실제로 위징은 모두 200여 차례나 거리낌 없이 직언을 했다하고, 그의 건의 대부분이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그 어찌 쉬운 일이었겠나.
사사건건 시비조의 그 위징에 질린 당태종이 하루는 “이 시골 촌놈을 죽여 버리겠다.”며 정말로 죽이려는데, 어려운 시절부터 함께해온 그의 현명한 장손황후가 나서서 “君明臣直 임금이 밝으면 신하가 곧다”며 축하의 절을 올리는 바람에, 그가 살아났다고도 한다.
어쨌든 당태종은 위징이 죽을 때까지 중요한 직책을 맡겨 국사를 처리하게 했다. 그만큼 그는 그 쓴 소리를 잘하는 인재를 마음 속 깊이 믿었기 때문이었다. 위징이 죽었을 때 당태종이 그의 비문을 손수 쓰면서 비통해 울며(중국 고대소설을 보면 위인들의 통곡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이것도 아마 중국인들의 감정표현이란 하나의 ‘의식’ 아닐까 생각한다.) 남겼다는 말. (사실은 魏徵웨이쩡과 爲鏡웨이찡의 악센트와 발음의 묘한 조합을 살린 문구이기도 하고)
人以銅為鏡,可以正衣冠,以古為鏡,可以見興替,以人為鏡,可以知得失。魏徵沒,朕亡一鏡矣!《資治通鑒卷一九六》
“사람이 구리거울에 옷매무새를 다듬고, 옛일을 거울삼아 흥하고 바뀜을 보며, 사람을 거울삼아 얻음과 잃음을 아는 법인데, 이제 위징이 떠났으니 거울을 잃었구나.”
어쨌든 태종의 정치, 즉 貞觀之治의 시대는 ‘거리에 떨어진 물건이라도 주인이 다시 올 것을 생각해 아무도 주워가지 않고, 도둑이 없으니 밤에도 문을 걸어 잠글 필요가 없었던’ 요순이후 가장 안정된 때로 꼽힌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당나라였기에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 입구에 唐人街라 새겨져있지 않은가.)
그의 치세가 어떠했기에 그랬을까. 모든 일이 항상 신하들과의 토론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태종과 신하들이 국사를 논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 貞觀政要인데, 이 책은 훗날 모든 왕들이 또 오늘날의 여러 정치인들이 보고 배우는 일종의 帝王學교과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내용 중 하나.
어느 날 자신의 치적에 흐뭇해하며 태종이 묻는다.
"나라를 세우는 일(창업)과 나라를 지키는 일(수성)은 어느 쪽이 어려울까?"
태종이 거느리던 18學士의 우두머리인 방현령이 아부한다.
"어두운 세상이 끝내고 새로운 천지를 열려면, 도처에 서로 다투며 일어나려는 군웅을 제압해야하니, 이들과 싸워 쳐부수고 항복하면서 이겨야 하는 창업 쪽이 더 어려운 일인가 합니다."
하지만, 위징은 미움 받을 것을 무릅쓰고 오늘 이 상태에서의 위험을 간한다.
"예로부터 제왕은 그 자리를 온갖 고난 속에서 얻지만, 그 후 안일함 속에서 그 자리를 잃곤 합니다. 역대 왕들을 보십시오. 창업 이후에 쉽게 망한 나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수성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징 사후 당태종은 ‘이제는 해방이다’ 만세를 불렀다고 전해지지만, 또 다른 한편,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에 대항하는 충신이 없음에, 사람을 의심하는 병이 생겨 크게 고생하게 된다. 급기야 방현령의 간언도 무릅쓰고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가 연개소문 장군에 대패해 겨우 몇 백기로 요하를 쫓겨 건너며 위징이 없었음을 한탄했다고 하기도 하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돌아가는 일들을 보며, 오래 전 읽었던 이세민과 위정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한가한 사람의 한가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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