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시간 카운팅

뚝틀이 2010. 2. 17. 01:47

여기 학고개 닭들은 신기도 하다. 닭장에 시계를 달아놓은 것도 아닌데 새벽 네 시만 되면 어김없이 길게 뽑는다. 작년 그 추운 겨울부터 봄까지 새벽잠 설치게 만들던 저 윗집 닭 어디론가 사라진 후 이제 좀 편해지나 했더니, 그들과 아무 상관없이 새로 들어온 아랫집 닭들 역시 여름 가을 거쳐 지금도 정확히 네 시에 꼬끼오를 외치는 것을 보면, 이 학고개 어딘가에 새벽 네 시에 닭 깨우는 무슨 모닝콜시계라도 숨겨져 있는 모양이다.

 

시간이 열두 단위로 나가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일년열두달이야 초승달 보름달 세어나가던 옛사람들의 지혜 덕분에 그렇다 치더라도, 하루는 왜 하필 열두 단위일까 알아보니 해시계의 편의성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해에 드리운 그림자 따라 반원을 그리고, 거기에 정오 선 하나 쭉 긋고 나서, 정삼각형 그리는 방법 생각하면 쉽게 여섯 눈금이 되지 않는가. 손가락 열 개 어쩌고 하면서 십진법 만든답시고, 반원을 십등분하는 것은 요즘의 유식한 수학자에게도 힘든 일이니, 어찌 그 옛날 보통사람들이 엄두나 낼 수 있었겠나.

 

가만있자. 그렇게 낮 여섯 눈금에 밤 눈금 더해봐야 하루가 열두 눈금뿐이라고? 맞다 스물네 시간은 서양에서 들여온 신식 방법이고, 우리 조상들은 하루에 열두 번 종을 쳤다. 한밤중 子時(정확히 한밤중은 지금도 子正)로부터 축시 인시 묘시 진시 사시 이렇게 세어나가다가 해가 중천에 오면 午時라 하였고(정확히 한낮을 지금도 正午라 하고, 그 전을 午前, 그 후를 午後), 이어서 미시 신시 유시 술시 해시 이렇게 세어나갔다.

 

자료를 찾다보니, 왜 저 닭들이 저렇게 정확히 시간 맞춰 우는지 알 것 같다. 바로 조상 탓. 조상 덕분? 아니면 생존 본능?

고려시대 우리 선조들이 궁에서 키우던 닭에 子正에 우는 一鳴鷄, 축시(2시)에 우는 二鳴鷄, 인시(4시)에 우는 三鳴鷄가 있었는데,

그 우는 때가 얼마나 정확했던지, 宋나라에선 이 고려 닭을 최상품으로 쳤다하지 않는가.

지금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닭들이 손님접대용 최우선 순위가 되는 신세니, 정리해고 당하지 않으려면 하루 종일 정신 차려야.

 

그런데, 한 주일은 왜 엉뚱하게 일곱 날인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에 그렇다 하는 설명도 있고, 메소포타미아의 천체신앙, 즉 해(日)와 달(月) 그리고 맨눈으로도 보이는 다섯 개의 행성 火星 水星 木星 金星 土星을 차례로 받들던 신앙이 바빌로니아인들에게 전해지며 일곱 날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요일의 어원이 되는 흔적이 어느 나라말에든지 남아있는데, 정작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서양문물이 섞이는 것이 싫다며, 굳이 월요일부터 시작하여 星期一 二 三 四 五 六 이렇게 세다가 일요일 星期天로 쓴다는 것이다.

 

기왕 시작하였으니, 열두 달 이름까지. 로마인들이 쓰던 라틴어가 그 어원이란다. 게으른 로마인들이 원래는 열 달만 계산해, 전쟁의 신 maaliskuu, 생명의 씨앗을 잉태한다는 aprilis, 아틸라스의 딸인 영광과 복수의 여신인 maia, 주피터의 부인 juno의 이름을 따고, 그 다음은 7,8,9,10이라는 숫자인 quintilis, sextilis, septem, octo, novem, decem 이렇게 불렀는데, 기원전 700년엔가, 그 전설적 로물루스가 이거 뭐가 잘못되었구나하고 한겨울의 야누스 축제 januar와 정화의식 februum 두 달을 앞에 넣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두 달씩 뒤로 물리게 되었다고 한다.

불행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율리우스(Julius) 황제가 자기가 태어난 달 이름을 바꾸고, 또 이에 뒤질세라 아우구스투스(Augustus)도 따라하고, 그것도 날수가 제일 많은 31일로 만드는 통에, 애꿎은 2월만 28일이 되었다. 우리야 이런 복잡한 사정을 알 필요도 없고, 그저 1월 2월이니 얼마나 편한가.

 

여기까지가 서양이야기이고, 여기까지가 그들 시간이름붙이기의 한계다. 동양에서는 해가 바뀌는 것까지 이름을 붙여가며 구별해나갔다. 바로 동물이름을 붙여가며.

나는 토끼띠고, 당신은 양띠라고 이야기하면 서양 사람들은 뭔 소리여 하는 표정이다. 그런데, 그것도 그냥 토끼니 양이 아니라, 甲乙丙丁어쩌고하는 열개의 팻말을 그 앞에 붙여가며 乙卯生이니 辛未生이니 하며 정확히 몇 년도 까지 이야기 할 수 있으니, 이 10干과 12支의 조합의 멋을 저쪽 사람들이 어찌 이해나 할 수 있겠나.

 

왜 그 열두 동물이냐에 대해서는 원래 힌두교의 12신이 불교에 섞여 중국으로 들어갔다는 설도 있고, 이에 발끈한 중국인들이 자기네 갑골문자에 이미 그 흔적이 있듯이 자기가 진짜라고 우기기도 하는데, 그런 거야 중국문화와 인도문화의 논쟁거리로 남겨놓을 일이다.

 

단지, 원래는 시간이 아니라 방위를 나타내는 구분이었는데, 왜 그 순서로 시간을 세우게 되었는가. 여기엔 우스갯소리가 전해진다. 옛날, 하늘의 대왕이 동물들에게 정월 초하루에 제일 먼저 천상의 문에 도달한 짐승으로부터 그 순서에 따른 지위를 주겠다고 공포했단다. 착실한 황소가 제일 부지런하게 떠나 ‘느려도 황소걸음’으로 일등으로 문에 도착하는 순간, 그 잔등에 올라타 있던 쥐가 잽싸게 뛰어내려 문으로 튀어 들어가 자와 축의 순서가 되었고, 호랑이는 실력으로, 토끼는 낮잠을 자다가, 등등으로 서열이 정해졌는데, 인간과 가까이 살던 고양이가 여기에서 빠진 것은 쥐가 그를 빼버리려 그에게 날짜를 하루 늦춰 알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육십 간지의 묘미는 그 띠 해가 올 때마다, 즉 열둘, 스물넷, 서른여섯, 마흔여덟의 나이가 되면서, 인생의 성격이 변하고, 예순이 되면 이제 인생의 막을 내리시죠 라는 메시지를 듣게 된다는 것이다. 얼핏 잔인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려장이라는 것도 그 힘든 시절의 어떤 상황논리에 따라 그랬을 것이고, 요새도 60세 전후에 정년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가 아니겠는가.

 

 

난 을유 학번인데 갑인년에는 어쨌고 이렇게 운치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잊어버리고 숫자 달랑 두 개 들곤 하는 서양문화를 그냥 당연한 듯 받아들인 것이 좀 아쉽게 느껴지진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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