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자선과 호의

뚝틀이 2010. 1. 27. 20:11

사방을 캐럴이 뒤덮어가던 어느 날,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있는 친구에게 나이 지긋한 부부가 다가오더니 랍스터 좋아하느냐 묻더란다. 무슨 뜻으로 묻는지 몰라 그냥 미소만 지었더니, 안으로 들어가 포장 예쁘게 한 것 들고 나와 손에 꼭 쥐어주며 메리크리스마스 하더란다.

현관에 들어서면서 자기 손에 들린 '선물'의 내력부터 열심히 설명하던 친구의 포장을 a couple of 가 아니라 several 마리다. '온 가족'을 생각해준 그 따듯한 마음. 당연히, 그날 우리의 토픽은 자선이 될 밖에.

 

그가 (자신도 제법 규모가 큰 사업체를 갖고 있어) 자기는 그런 선물의 대상이 아니라고 점잖은 영어(어렸을 적부터 그의 어휘선택 능력과 발음은 거의 천부적이었다.)로 거절했다면 어떤 장면으로 진행되었을까 상상해보려는데, 그가 끊는다. 자기가 그 쇼윈도 앞을 기웃거림으로써 '누군가'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을 그 노부부에게 알려준 셈이고, 그 선물이 자기 캐딜락에 실려 여기 도착하게 되었으니, 결국 자기는 그 노부부와 우리의 연결고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그런 생각이 들면 내일 우리도 그런 일을 하면 된다고.

 

자선은 전적으로 이타적인가? 자선은 그 수혜자로부터 어떤 보답도 기대할 수 없는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니 그렇다 생각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자선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자선을 행한다면, 거기에는 '정의상' 이기적인 면도 들어있는 것 아닌가. 더구나, 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혹, 그 노부부가 자신들의 선행을 자랑하고 다닌다면?

 

당장이건 후에건 어떤 형태로든 그 상대로부터의 보답에 기대하는 심리가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면 그것은 자선이 아니라 호의일 뿐이다. 만일 그 노부부가 '어느 불쌍한 동양인'이 아니라 '잘 아는 이웃집 누구'에게 같은 종류의 선행을 베풀었다면? 내가 바로 그 이웃이라면? 의무감이란 괴로운 것이고, 한 번 상한 자존심은 되살아나기 힘든 법. 그런 호의는, 자칫 어떤 면에선, 남을 옭아매는 족쇄를 채우는 일이 되기 십상이라 생각한다면, 내 너무 삐뚤어진 인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