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거울, 피죽 vs. 너와, 전문가

뚝틀이 2010. 2. 25. 08:25

- 거울

이쪽에선 쉼표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건너 맞은편 언덕위에서 새 음악이 시작된다. 전혀 다른 음악이.

마치 전쟁작전을 방불케 하듯 새벽부터 장비가 시끄럽다 했는데, 어느 새 사라지고, 사람들 까맣게 달라붙었다 했는데, 또 어느 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규모의 경제. 그렇다고 맞은편에 들어서는 집이 큰 규모라는 것은 아니다. 그쪽 감독의 설명에 N의 고개가 끄덕인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집 하나에 매달리는 것과는 근본 모양부터가 다르단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어디에서 무슨 재료를 구해, 어느 때 갖다 놓아야 할지, 또 어떤 일은 아예 통째로 떼어 누구에게 맡겨야할지. 자기가 신경 써야 하는 함정이 어디서 발생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이 훤하다. 새참의 모습도 다르다. 공사장 한쪽 모퉁이에 마련한 컵라면으로 충분하단다. 이것이 바로 완성된 설계도를 받아 후닥닥 집을 올리고 열쇠를 건축주에게 넘기는 효율적 건축방법이다.

 

그가 일하는 모습에 N이 자기를 비춰보면 거의 모든 것이 반대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쉼표 중 아닌가. 사실 인터넷이라는 경험보고서의 창고를 수없이 들락거린 N이 그런 것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내 본래 의도했던 대로 귀틀집이나 지었다면, 그런 효율성 따위완 상관없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이젠 때늦은 푸념일 뿐이다. 점심은 물론이고 오전 참 오후 참 이렇게 세 번 저 밑에 있는 식당에 차 타고가 충분한 시간을 즐기는 이쪽의 모습, 그것은 ‘인간적 작업장’이라는 사치스런 이름의 허영일 뿐이다.

 

그렇다면 N이 지금 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직영이라고 부르는 이 방법과 앞집 방법을, 건축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한다면 어떨까. 얼핏 생각에 N이 비록 직업적 건축업자의 효율성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도 않고 인부를 다루는 노하우도 없지만, 그래도, 그 낭비요소가 건축업자의 이윤폭보다 작다면, N쪽이 더 유리할 것 같다.

사실 공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N에게 그런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비용은 비용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밑 빠진 독에다 부어넣는 형국에서 그런 비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다면 잘못된 선택인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시공업자에겐 효율성과 비용절감이 절대적 명제다. 예정에 없던 작업변경은 효율성에 큰 차질을 일으킨다. 거기에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만약 N이 건축업자에게 일을 맡기고 나서, ‘아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 주세요.’ 하는 식으로 생각이 바뀔 때 마다 작업변경을 요구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악몽중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쉼표 속에서, 앞집에 비친 거울을 보면서, N이 자신의 집짓기에 대한 점수를 내어본다. 65점은 족히 될 것이고, 아무리 낮추어 잡아도 60점은 넘는다. 만일 55점이었다면 그의 불같은 성질에 일찌감치 집짓기 중단이 아니라 포기를 선언했을 것이다. 지금의 쉼표는 N이 본래 기대했던 80점에서 모자라는 15점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그날그날 기록되는 N의 건축일기 사이사이엔 65점이나 되는 점수를 쌓아준 거의 100점 만점의 주인공에 대한 코멘트들이 실려 있다.

 

“난 이런 분위기가 정말 좋다. 이 들과 함께 있으면, 자질구레한 어려움 따윈 저절로 잊게 된다.”

 

“C.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그에게서 본다. 내가 무슨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그의 생각은 일단 긍정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예의상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난 안다. 어려운 일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응집력과 순발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로부터 느낀다. 그 흔한 남에 관한 험담 또한 내 그의 입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 모양의 내 집짓기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Y. 이 양반 나이는 얼마일까. 물어봐도 웃어주기만 하니 내 그저 나보다 많거니 짐작만 할뿐이다. 집사람도 그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던가. 그는 일당을 받으러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일과 도전을 즐기려 이곳에 오는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나이가 많지만 누구보다도 더 날렵하다. 아무리 일이 어려워 보여도 그의 명언은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해보죠 뭐. 사람 하는 일에 못할 것 뭐 있겠어요. 진정한 프로의 정신을 그에게서 본다.”

 

N은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결국 그런 것 아닌가. 65점이나 되는 것에 고마워해야할 일이지, 35점밖에 지나지 않는 그곳에까지 신경을 써서 뭐하겠냐고. 고맙다 거울아.

 

- 피죽 vs. 너와

 

‘간단히 끝내자. 간단히 끝내자.’ 마을회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쉼표속의 레미콘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N은 다짐한다. 사랑의 늪에서 헤어나는 것은 자유의지와 상관없다하지만 낭만의 늪에선 마음하나 먹기 나름이다. 하지만 N은 이 낭만의 늪에서조차 생각 따로 몸부림 따로 허우적거리고만 있다. 조심스레 작업을 재개한다.

 

장마에 태풍까지 겹치며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간다. 지붕이 아직 덮이지 않아서 비 한번 올 때마다 전쟁이 따로 없다. 아래층에 쌓아둔 황토벽돌은 조금만 젖어도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사방에 뚫어놓은 전기와 물통 배관에 흙이라도 차면 낭패기 때문이다. 지붕 올리기가 급하다. 그렇다고 대충 때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방바닥을 아무리 데워도 위에서 찬 기운이 내려오거나 결로현상이 생기는 곳에 낭만이 깃들 수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해발 460미터의 이곳에서 말이다. 서까래 천장을 두꺼운 패널로 덮고, 또 그 위에 두터운 방수시트로 철저히 사전작업을 한 다음, 거실 쪽 지붕은 아예 철근 콘크리트로 돔 모양 처리를 한다. 이 정도면 구조문제나 웃풍문제에서 자유로울 것 같다.

 

이제 그동안 한쪽 곁에 쌓아놓았던 낙엽송 피죽을 그 위에 올릴 차례다. 비바람을 막는 기능은 이미 다 갖추어 놓았으니, 이 피죽을 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낭만연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집짓기과정에서 드문드문 맞보는 창조의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길이로 어떻게 겹쳐놓으며, 껍질의 색깔을 어느 정도 남겨놓을까 N과 C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데, 돌발변수가 생긴다. 앞집 아저씨가 찾아온 것이다. 동네를 거지로 만들려하느냐는 그의 말을 N은 처음엔 그저 농담정도로 받아들이고, C도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여럿의 힘을 실어 저 아래 ‘~따라 ~따라’라는 카페의 지붕을 보라며 점점 더 강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누구의 눈에는 멋있게만 보이는 그 집 지붕이 누구에게는 궁상떠는 모습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외지인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처음부터 말썽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좋다. 더구나 지붕이야말로 모자 아닌가. 마을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피죽지붕은 포기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아스팔트 슁글, 기와, 또 초가지붕 모두 일찌감치 지붕재료 후보에서 탈락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양이고 뭐고, 처음부터 이층에도 슬라브를 치는 것인데.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황을 모르고 집 구경 왔던 방문객들은 패널 지붕을 보며 그것이 최종마감인 줄 알고 다 좋은데 지붕이 너무 번쩍거려서 좋지 않다고 코멘트까지 하는 판이다. 길옆에 집을 짓지 말라고? 마을 저 안쪽 한 구석에 놓인 집이라면 그가 무슨 모자를 쓰든 누가 상관했겠는가. 할 수없이 N은 너와를 올리기로 한다.

 

피죽이나 너와나 거기서 거기 같지만 한쪽은 가장 값싼 지붕재료요 한쪽은 가장 비싼 지붕재료라. 목재상 찾아다니며 또 인터넷 뒤지며 여러 곳 알아봐도 이젠 우리나라에서 참나무 일일이 도끼로 잘라내며 방수처리를 하는 그런 한가한 일을 하는 곳은 이미 거의 다 사라졌단다. 태백 어디에 또 울산 어디에 인간문화재들이 너와 지붕을 덮어주는 작업을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곳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그마치 평당 120만원이나 한단다. 이거 걸려도 한참이나 잘못 걸렸구나.

 

겨우 수입상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목재상을 찾아내 그곳을 통해 너와를 주문하는 N의 마음이 쓰리다. 이미 가졌던 자금 바닥나고 아끼고 아껴야할 퇴직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상태에서 이건 너무 사치하는 것 아닌가. 이제부턴 집짓기의 사치가 그 이후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누가 얘기했던가. 포커게임에서는 나 그만 할래가 가능하지만, 고스톱에서의 운명은 끝나봐야 한다고. N은 이미 고스톱게임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 전문가

 

흔하지 않은 일을 해본 사람을 전문가라고 하던가. 너와 지붕을 올려본 경험이 있다는 전문가를 모셔온다. 대체인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아는 그가 하는 일을 좀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지붕에 앉아 경치 즐기며 옆 사람과 한담을 나누다 가끔 생각나면 몇 개의 너와를 자르고 박는다. 그렇다고 품질이 거기에 따라주는 것도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의 위험한 작업이라는 것만 빼고는 자기도 그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그 정도다.

 

내일이면 끝나겠지 하는 기대는 매번 무너지며, 일은 그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계속된다. 그가 처음 이 지붕을 보면서 얼마를 받아내야겠구나 하고 정한 액수가 있으면. 그 액수의 인건비가 쌓일 때까지 일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이 도급이건 일당이건 상관없이 만드는 방법이다.

 

어쨌든 지붕 씌우기는 끝나고, 이제 테라스 작업으로 들어갈 차례다. 테라스 작업에도 그가 전문가라니 어쩌랴. 그가 하는 일을 보고 N이 경악한다. 그가 이렇게 놀란 적이 또 어디 있었던가? 잠깐 사이에 목재더미가 사라져버린다. 거실 둥근 지붕위로 가발 심어놓듯 나무를 세워놓고, 칼 휘두르며 무 베어내듯 싹둑싹둑 잘라내 버린다. 설마하며 N이 자기 눈을 의심해보지만 이건 분명 실제상황이다.

 

위아래 테라스는 물론 집 앞 파고라에까지 쓰려고 멀리 청평까지 가서 운반해온 목재더미가 위 테라스에서 동이 나고 있다. 전문가? N이 초기에 묵곤 했던 그 펜션 주인부부의 말이 생각난다. 목수로 일하러 왔던 사람 잘랐더니, 그 다음 어느 날 잡부로 일하러 왔더라고. 미안하지만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아달라고 공손히 이야기하는 N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또 하나의 전문가에게 N이 완전히 당한다. 이 근처에서 황토벽돌 쌓기의 최고 권위자라는 R을 모셔온다. 이 사람 일은 성실함 그 자체다. 하루 종일 묵묵히 일하는 모습에서, 쓸데없는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수 일하는 사람 휘어잡는 모습에서, 비록 그 일하는 속도는 맘에 들지 않지만, N은 R에게서 권위자의 풍모를 본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깍듯이 어르신으로 모시며 그 안쪽 시내까지 그의 퇴근길 위한 운전까지 마다않는다.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황토벽들이 기울고 뒤틀리기 시작한다. 도로 쪽 외벽은 금방이라도 넘어갈듯하여 긴급 조치까지 취한다.

 

전문가란 무엇인가. 어떤 분야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 아닌가. 건설현장의 전문가에겐 또 하나의 능력이 있다. 바로 건축주를 다루는 기술. 전원주택을 지어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 전문가는 그런 건축주들을 평생 다루어온 프로들이고 도사들이다. 눈 가리고 대충 넘어가는 온갖 비법도 알고, 주인이 귀찮게 굴 때 따돌리는 방법도 안다.

 

N의 경우는 극단적 경우다. 톱날이 무뎌지면 새 톱날 사와야 하고, 글래서 파이버가 떨어지면 시내까지 가서 또 사와야 한다. 그들의 잔재주에 대응해서 필요할 물건을 미리 생각해 그의 자동차에 이동 철물점 버금가는 수준으로 온갖 것 다 준비해 대응하지만, 아마가 프로에게 당할 수 있나.

 

어떤 땐 일부러 시내로 심부름 보낸다는 느낌을 받고, 다녀오는 척하고 동태를 살펴본다. 아니나 다를까. 일 끝나는 시간 30분전에 현장에 나타난 N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일꾼들 모두 주인 돌아올 시간 계산하고, 이미 모든 뒷정리까지 끝내고 퇴근하는 중이었다. N의 마음을 도려내는 것은 그 인간적 배신과 농간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건만 N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언제 다시 이런 일로 만날 것이냐 이런 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