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카오스 효과, 혼돈 속 1004, 경기병 서곡

뚝틀이 2010. 2. 25. 01:11

- 카오스 효과

 

신중 또 신중. 준비는 신중할수록, 행동은 빠를수록 좋다지 않는가. 귀틀집이라는 것에 매달려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린 지 벌써 한 해가 지났다. 이제 실제 환경과의 타협이라는 다음 단계로 들어갈 때다. 그 솔숲에서 한 20분 떨어진 곳에 도시 흉내를 낸 마을이 있다. 병원도 있고 약국도 있고, 또 음식점도 있고 슈퍼도 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부동산을 찾아 적당한 집을 골라서 계약을 하려하는데, 그 근처에 살고 있던 N의 친구가 달려와 절대불가를 외친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곳에선 도시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들어갈 때는 마음대로인데, 나올 때는 그렇지 못하다고. 속절없이 묶인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그냥 펜션이나 모텔에 묶는 편이 훨씬 낫다고.

 

싼 맛에 모텔에 몇 번 묵어보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찜찜한 노릇이다. 무슨 러브호텔에서 떳떳치 못한 짓하고 나오는 사람 같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좀 부담되더라도 펜션을 찾는다. 우연히 묵었다가 마음 통하는 주인아저씨와 친하게 되어 그곳을 단골로 거점으로 삼는다. 이 펜션과 현장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한다. 컨테이너를 하나 들여놓자. 사방에 수소문을 해 단열시공도 해 놓고, 전기장판까지 깔아놓은 중고 컨테이너 하나를 마련한다. 이제부터 여기가 야전사령부다. 정성이 있는 곳에 결과가 있다던가. 마을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횡재가 굴러든다. 마을회관을 쓰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물론 보증금 같은 것은 필요 없고, 이층을 아주 싸게 세 줄 텐데, 단지 마을회관 전기료만 좀 내어주면 좋겠단다. 이렇게 좋을 수가.

 

시간이야 충분하지. N은 생각한다. 가진 것 시간뿐 아닌가.

건방지게 생각하면 귀신이 찾아온다 하던가. 마을을 오가며 그곳 사람들과의 교분을 쌓고, 면사무소에도 가끔 들려 그곳 생활 준비를 ‘여유 있게’ 시작하는데, 마른하늘에서 날 벼락이 떨어진다. 바뀐 건축법 시행이 5월부터란다. 무엇이 바뀌냐고? 5월 이후엔, 2급 이상 설계사가 작성한 도면을 제출해야 건축허가가 나고, 준공검사는 그 설계도에 따라 제대로 지어졌는지를 확인하여 내어준다는 것이다.

 

다들 아는 사실을 N만 몰랐던 것이다. 이거야 말로 큰일이다. 늦어도 4월엔 착공을 해야, 구 건축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N 자신이 만든 설계도도 인정을 받고, 집을 짓는 동안에도 설계를 변경할 수 있으며, 준공검사 또한 융통성 있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니. 그러려면 토지형질변경 신청서류를 하루라도 빨리 접수시켜야하고, 거기에는 건축 설계도가 첨부되어야 한단다. 빨리, 빨리. 이런 것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이제부터 어쩔 수 없이 빨리 빨리다.

 

우선은 알리바이 마련이 중요하다. 일단 구법의 적용을 받게만 해놓으면, 중간에 설계변경이 가능하다니, 지금까지 그려온 안A와 안B라는 두 개의 설계도면을 제출할 요량으로 측량설계 사무소를 찾아 의논을 한다. 어느 쪽이 더 적당하겠냐고. 그에게 돌아온 간단한 대답.

“둘 다 제출하시죠 뭐.”

그 말을 그대로 따른 것이 ‘화근-전화위복-또 화근-또 전화위복’의 단초가 될 줄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쨌든, 토지개발행위 신청서를 넣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쌓인 현장에 담당 공무원이 나온다. 마치 부동산 투기꾼을 잡으러온 포도청 관리들 같이 그들이 툭툭 내 뱉는 말이 N의 심기를 건드린다. 하긴 하늘같은 힘을 가진 공무원들에게 보통의 서민이 뭘 더 바라겠는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그저 오케이만 해주시오 그 정도지. 어쨌든 그 사람들 N을 범죄자로 판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보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허가가 떨어진다.

 

집을 짓는 데 허용된 시간은 2년이란다. 원칙적으로 1년 이내라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늦어진다는 사유서를 제출하면 1년 연장이 가능하다고 하니. 귀틀집을 짓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첫해에는 틈틈이 기초 다지고, 귀틀집에 쓸 나무도 미리 사두었다가 장마철에 비 흠뻑 맞게 하고, 나무껍질 벗기어가며 직장과의 인연 줄도 벗기어간다는 것이 N의 생각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착공이다. 실제로 착공 되었다는 것을 관청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때 비로소 구법의 적용을 받게 되는 과도규정의 덕을 보기 위해서다.

 

기초공사를 시작하려, 카우보이 N이 앞집 이장 댁에서 꼬마 포클레인을 빌린다. 비록 면허를 딸 때 실습다운 실습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포클레인 도사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다던가. 덜컹거리는 망아지 위에 올라앉아 왼손 오른손 당기고 돌리고 열심히 애써보지만 줄은 비뚤어지고 깊이는 들쭉날쭉. 정말 봐주기 힘들만큼 땅이 엉망으로 파헤쳐진다. 그래도 N의 얼굴에선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절묘한 타이밍. 마을에 공동하수처리시설공사가 시작된다. 비록 이미 오래전에 계획된 터라 N의 집은 그 공사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공동시설 공사는 좋은 것 아닌가.

 

그 작업 팀 중 포클레인 기사가 묵을 곳이 없다며, N이 세 들어 있는 마을회관을 같이 쓸 수 있는지 물어온다. 물론 N이 흔쾌히 응한다. 물론 비용은 분담이라고 미리 못을 박아놓고. N의 속셈은 그 분담비용만큼이라도 그를 포클레인 사부님으로 모시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것이다. N의 호의에 감사한다며 그가 한마디 한다.

“사장님 일하는 것 낮에 보았는데요. 지금 하시듯 그렇게 엉성하게 줄기초 파면 나중에 인건비랑 공사비 만만치 않게 들어가게 되요. 차라리 통기초로 하시죠. 통째로 파내는 간단한 일이라면 제 일 끝난 다음 잠깐 해드리죠. 물론 무료는 아니고요.”

포클레인 다루는 법을 그 전문기사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배울 겸하는 생각에, 또 그 비용은 방 분담비용으로 충당될 수 있다는 계산 빠른 생각에, 옳다구나, 그에게 평탄작업을 부탁한다.

 

어떤 만남이든 흐름을 바꾼다. 나비가 브라질에서 어떤 바람을 일으키는 가에 따라 미국에 오는 허리케인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과장된 이야기에도 사람들은 거기에 붙은 카오스이론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물며 만남은 흐름을 바꾼다는 그 위대한 N의 이야기니 거기에 무슨 오류가 있겠는가.

 

그의 멋진 솜씨에 넋 나간 N이 감탄을 연발하는 사이에 바닥은 부탁했던 60전을 넘어, 90전, 결국 1미터가 훨씬 넘게 파헤쳐지고 있다. 날 어두울 때 일을 시작해 캄캄해 진 다음 헤드라이트를 켜고 일을 한 화근이었다. 어쨌든 다음날 아침 고무호스에 물 채워 수평을 재어보고, 가로세로 20미터 15미터 바닥에 깊이차이가 10전도 나지 않는다는 것에 감탄한다.

 

하지만 이제 어쩌랴. 그 10전의 정확도 자랑 때문에 “집을 짓는다더니 양어장 만들 생각이요?”라는 마을사람들의 뼈 있는 농담을 듣게 되었으니. 첫 단추부터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그 단추가 집 전체의 모양을 바꿔버리는 카오스의 세계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 혼돈 속 1004

 

혼돈 속으로 빠져들어, 컨테이너 박스 문 앞에 앉아 하늘 한번 양어장 한번 쳐다보며 한숨짓는 N에게 C사장이 다가온다.

“형 소문 듣고 찾아왔수. 손가락도 부러졌다면서요.”

 

이곳 마을에선 모든 것이 리얼타임으로 전파된다. 양어장 깊이도 다 알려져 있는 데, 설익은 솜씨로 말뚝 박다가 엄지손가락 뼈가 부러졌다는 이야기가 어디 묻혀있겠나. N에겐 부끄러움보다 반가움이 앞선다. 땅을 마련하고, 여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던 작년 초, 서로 인사를 나누다 호형호제하기로 한 후, 허물없이 지내게 된 사이다.

 

“아이구 형. 그 알량한 집하나 짓다가 사람 죽겠수. 형. 내가 집을 지어드리리다.”

N은 이미 그가 지은 집 몇 채를 본 적도 있고, 또 그 집들이 평당 얼마짜리인지도 알기에 웃으며 사양한다.

“그럴 여유가 있으면 내 이러고 있겠나. 하여튼 호의는 고마워.”

“여유 좋아하시네. 그런 건 걱정마시우. 인건비랑 자재비 다 형이 직접계산하고, 집짓는 데 필요한 폼도 다 내 창고에서 갖다 써요. 필요하면 내 짐차도 부담 없이 쓰고. 집짓는 게 뭐 애들 장난인줄 아슈? 내 며칠 있다 야리가따 매러 올 테니 도면이나 준비해둬요.”

“야리가따는 또 뭐꼬.”

“아이구. 형은 그런 건 몰라도 되요. 하여튼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요. 형은 구상, 나는 세운다. 이렇게 말이유.”

 

웃음을 던지며 돌아가는 C의 모습을 보는 N의 머릿속은 아직도 텅 비어있다. 이미 귀틀집 지을 나무는 다 주문해 놓은 상태. 여유 있게 기초를 닦다가, 장마가 오면 그때 그 나무들 물에 흠뻑 젖게 한 후, 가을 내내 나무껍질 벗기고, 내년에 얼음 풀릴 때, 진흙 개어 붙이며.....

이제 첫 단추 잘못 끼워져 양어장 바닥이 생겼으니, 여기에 귀틀집 올리면 영락없는 콩나물 움막이 되고 ......

 

아이구 그 귀틀집이 보통집이야.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지어지는 겹벽 귀틀집인데.... 내 그 수많은 벽화구상은 어쩌구.....

그 포클레인 기사 멋쩍어 사라진지 이미 오랜 마을회관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된다. 그 양어장 일에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아간 것과 또 방세도 안 내고 사라진 것 등 사소한 섭섭함까지 한꺼번에 겹쳐온다.

 

전화위복? 새로운 환경? 집착? 그래! 원래는 그럴 듯한 집을 지으려다 이것도 힘들고, 저것도 어려워 차선의 타협책으로 생각한 것이 귀틀집 아니던가. 사실 귀틀집이야 신기한 마음에 며칠 묵기에는 좋지만, 계속 사는 살림집으로는 불편하다는 것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 않은가.

 

포도가 시어서 안 먹는다는 여우 이야기를 N도 들은 모양이다.

사실 단층집보다야 이층집이 더 낫고, 모양의 운치도 더 살릴 수 있지. 그의 생각은 계속된다. 이러면 어떨까. 길에서 보면 반 지하의 집이지만, 계곡 쪽으로는 시원하게 트인 아래층을 만들고, 그 위에 귀틀집을 올리는 거 말이야. 마치 청바지에 저고리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우선은 그저 이층집을 만들기 위한 통기초를 마련한다는 생각으로 아래층을 만들고, 이층은 나중에 생각하지 뭐.

 

그 나비 날개 짓 한 번에 옆 코스로 밀려난 형국이다. 좋다. 어쩌랴. 새로운 출발이다. N은 그 변화된 상황에 맞게 큰 틀의 방향을 새로 정하고, 새 그림을 시도해본다. 하지만, 어쩌랴. N이 그동안 묵으며, 뜯어보며, 뭔가 배우고 알아내려 살펴보았던 집도 다 올망졸망 펜션뿐이었고, 인터넷 들어가 여기저기 훑어보아도 마음에 드는 모양을 찾아내기 힘들다. 動線도 어지럽고, 조명 환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풀리질 않는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내가 아무 집이라도 무조건 지어야 하다는 명령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는가. 적어도 내가 살 집이라는 가치가 있으려면 아파트와는 달라야 한다. 펜션과는 더더욱 달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소나무 숲 경관을 해치는 모양이 되면 우선 내 마음부터라도 편하지 못할 테니 요란함은 금물이다.

 

뭐 그렇게 뜸 들일 필요 없지 않은가. 이제 보통 집을 그리면 되니, 오히려 그 제약 많은 귀틀집보다야 상황이 훨씬 더 단순화된 것 아닌가. 우선 원칙을 정하자. 시원시원한 공간을 만들자. 거실, 침실, 부엌, 욕실. 이렇게 하나씩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서재나 손님방은 이 필요하다면 그건 이층이나 별채에 만들면 되고.

 

큼직큼직한 사각형 몇 개 그려지고 일층 설계를 끝냈다. 이층 모양이 어떻게 될지 지붕 모양이 어떻게 될지. 그런 어려운 일은 우선 접어두자. 미루자. 이런 식의 억지 합리화가 마음에 썩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새로운 건축법을 피해보려면 어쨌든 기초공사에 들어갔다는 확인은 받아야한다. 공연히 어물어물 늦추다가 시간 놓치고, 바뀐 법에 따라 건축 사무소에서 만든 확정 설계도를 제출하고 나중에 거기에 따른 준공검사를 받아야하는 그런 꽉 막힌 진행을 강요당한다면 그거야말로 불행 아닌가.

 

어쨌든 C가 Y를 대동하고 다시 현장에 나타났을 때 N은 굵직굵직한 선으로 스케치한 일층 설계도를 그들 손에 넘겨줄 수 있었다. 이층 설계도 없이 일층을 지어보기는 C도 Y도 처음이란다.

 

- 경기병 서곡

 

죽어가던 웅덩이에서 기운이 다시 솟아난다. 그동안 시간이 제법 흘렀던 탓에 웅덩이 여기저기가 무너져 내려 다시 포클레인을 부른다. N은 옳다 이때다 하고, 계곡으로부터 올라오는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집 방향을 약간 동쪽으로 틀기로 한다. 설계도는 그대로 유효한데 기준선의 방향만 동쪽으로 약간 트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미세조정이 아주 큰 영향을 주지 않는가. 불안한 노래도 음 높이 약간 올려주면 편안해지듯이. 아하. 높이. 집 높이에도 미세조정을 집어넣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양어장 바닥에 집을 세워서는 그럴 듯한 모양이 나오질 않아, 미련한 방법이긴 하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바닥 높이를 위로 올리기로 한다.

 

사람 마음이란 것이 다 이런 식인가? N은 아직도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이 미련한 방법으로라도 높이를 올리기로 했으면 원래구상인 귀틀집으로 이제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더구나 C가 구상은 N의 것이고 구현은 자기 몫이라고까지 이야기 했으니. N은 애써 그런 것까지엔 생각이 못 미쳤다는 척하며 수정된 설계에 따라 일을 진행해나간다. 이것이 사람이다. 한번 편안해질 기회를 잡으면 어려운 길로 다시 내려서지 않는 것.

 

아마추어는 옆으로 비켜서고, 프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같은 포클레인 작업이라도 프로들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그 작업분위기가 달라진다. 역시 프로는 프로가 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프로건 아마건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니 뭔가 되어가는 것 같다. Y는 쉴 사이 없이 무엇인가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잡고, Z는 마치 서부영화의 말 없는 건맨처럼 접근불가를 신호하고, X는 자신의 일을 음미하듯 몸짓조차 우아하게 움직이며 위엄을 더한다. 망치소리, 기계소리에, D야 G야 불러대는 소리 어지럽게 섞여들고, 뜻 모를 일본 토막말과 담배꽁초는 방향 없이 날아다닌다.

 

일단의 다른 무리가 작업장을 점령하더니 굵은 철근 가는 철근 이리 묶고 저리 묶으며 움직여나가는데, 또 다른 무리 뛰어들어 흑황적녹 플라스틱 호스를 여기에 끼워 넣고 PVC관을 저기에 묻는다. 레미콘 차 분주히 들랑거리며 시멘트와 돌 섞인 물을 펌프 카에 먹여주고, 땡볕에 우주복 입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반죽 받아 거품 빼며 다진다. Y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널빤지로 막기놀이 하고, 날카로운 독수리눈 C의 입에선 거친 소리 불 뿜는다. 어느덧 육중한 돌바둑판 양어장 웅덩이 가득 채운다.

 

바닥이 굳고 얼마 지난 후, 다시 사람들이, 레미콘과 펌프 카가 경기병 서곡 울리며 기둥과 벽체를 바둑판위에 고정시키고, 또 그 기둥과 벽체가 굳은 얼마 후 다시 서곡이 울리며 슬라브와 거실 윗벽 채워 넣는다. 뻥 뚫린 거실 천장부만 빼고는 사방이 거푸집과 폼으로 막혀 어두워진다. 인간의 쉼터는 어두운 공간이다. N이 깨닫는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밝은 세상의 한곳에 어두운 공간을 심어 넣는 것이다.

 

종이에 가볍게 그린 선 하나라도 결국 이렇게 육중한 돌쇠덩어리 모양으로 굳어지는 것을 보는 N은 신중과 정교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실감한다. “집짓기가 뭐 장난인줄 아슈.”하던 C의 목소리가 자꾸 그의 귀에서 앵앵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