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낭만에 대한 종언, 학고개 솔숲 이야기

뚝틀이 2010. 2. 25. 09:20

- 낭만에 대한 종언

 

이제 전원주택의 백미. 찜질방 차례다. 온돌 파이프를 깔라는 주변의 권유를 마다하고, 고구마랑 옥수수 구워 먹는 낭만을 곁들이려, 구들온돌을 깔기로 마음을 정한지 이미 오래다. 이 집을 구상할 때, 천장 높은 거실, 널찍한 테라스랑 같이 최우선적으로 잡은 세 가지 목록에 들어있었던 항목이다. 찜질 방 사방을 한 자 두께의 황토벽돌로 둘러치고, 천장도 투박한 나무로 꾸민 다음 그 위에 역시 한 자 두께 황토를 올렸으니, 그야말로 황토 박스가 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구들돌. 도대체 이 구들돌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들리는 이야기야 많다. 어디어디에 집 고친 데가 있으니 그곳을 가보라 해서 찾아가면 이미 다 도로 묻어버렸다는 답이고, 바로 저 앞밭에 잔뜩 묻혀 있다느니, 뒷산 어디에 가면 정말 좋은 것들이 널려있다느니 하는데, 이건 보물찾기 게임하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다가, 드디어 구체적 정보가 들어온다. 주천 어느 개울가에 구들돌 버린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 부랴부랴 그곳을 찾아가니 정말로 있다. 누군가 집을 고치다 나온 폐기물을 뚝 길에 덤프카 세우고 쏟아버린 모양인데, 이런 고약한 일 있나. 시지프스의 신화를 재현하다가 위험천만의 상황을 몇 번씩 맞는다. 어쨌든 쓸 만큼 건져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어쉰다.

 

구들이 있어도 놓아야 온돌이지. 사방 수소문해 나이 지긋한 분을 모셔온다. 마음씨도 좋게 생겼고, 말도 다정다감하게 이어가는데, 자고로 구들돌 놓는 현장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법이라며, 자리를 비켜달란다. 그런가? 그저 잘 부탁드린다며 뒷걸음친다. 어두컴컴한 속에서 무언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이틀 만에 아궁이에 불이 들어가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온다. 매캐한 연기라는 낭만.

 

낭만은 불편의 동의어이다. 자기 스스로 즐기느라 자초한 불편, 그것을 사람들은 낭만이라 부른다. 늦은 밤까지 콩기름 먹인 장판을 깔고, 앉는 키가 닿는 곳까지 황토벽에 창호지를 붙이며, N 부부는 연신 싱글벙글 콧노래까지 곁들인다.

불쌍한 N을 도와주려 먼 길 마다않고 찾아온 친구들도‘아 좋다’를 연발한다. 검게 그을린 고구마 감자 맛에 새삼 감탄한다. ‘뚝뚝이 뚝디 사건’까지 겹치며, 이 황토방 인기 만점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아궁이 속에 뭐가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이런 세상에! 구들장이 가운데 뚝 부러져나가며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그 나이 지긋한 분에게 전화를 거니, 그럴 리가 있느냐 그럴 수 없다며 말을 얼버무린다. 며칠 후 연락이 온다. 남이 쓰던 구들장 가져와서 그랬던 것이고,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구들돌 새로 구해왔으니, 다음 날 아침 일찍 보잔다. 이렇게 얇은 돌을 어디다 쓰겠는가라는 N의 걱정에 그분의 한 마디. 걱정 마시라. 이건 벼룻돌보다 더 단단한 것이니.

 

하지만 그 아까운 장판 들어내고, 벽지 망가뜨리며, 새로 고친 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또 다시 툭! 다시 전화 받는 그의 퉁명스러운 대답. 구들장 밑으로 직접 불을 집어넣는 아궁이에선 어쩔 수 없단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다고 이야기하실 것이지. 어쩔 수 없이 N이 손수 해결해야할 상황. 구들장을 들어내던 N이 정말로 그 눈을 의심한다. 이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x판' 그 자체다. 그래서 그 첫날 일할 때 나가있어 달라 부탁했던 것인가? 지난 번 ‘그 전문가’들에 이어 또 한명의 ‘전문가’에게 당하는 순간이다.

 

구들은 구들이고, 이제 이 황토방 뾰족한 세 봉우리 지붕을 덮을 차례다. 아래의 본채처럼 너와를 올릴까 생각해보지만, 이 둥글둥글한 모양에 너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피죽을 올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 가평까지 가서 낙엽송 다듬은 것 사와보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눈이 그다지 곱지가 않다. 이젠 어쩐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 볏짚을 올리기로 마음을 정한다. 비록 해마다 새로 올려야하는 부담은 있지만, 이젠 N의 통도 제법 커졌다. 비용보다는 낭만이다. 하지만 볏짚은 어디서 구하고 누가 올리지? 요즘같이 모든 것이 짜임새 있게 돌아가는 세상에 초가지붕 올리러 돌아다니는 전문팀이 있을 리 없고. N은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던 ‘그 사람들’에게 지붕 올려주기를 부탁해본다.

 

초가지붕 올리려면 살아있는 볏짚을 구해야 한다. 그것도 추수하고 대충 정리한 아무 볏짚이 아니라, 특별히 밑을 바짝 잘라낸 긴 볏짚을 써야하기 때문에 추수하는 논을 찾아다녀야 하고, 소위 인맥 비슷한 것을 통해 수소문해서 구해야 한다. 그런 설명 들으며 N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밖에.

보름 후 몇 차를 실어 오고 나서는 이건 아니네 하고 다시 구해야겠단다.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며칠 후 새로 또 몇 차 실어와 볏단을 높이 쌓아놓고 돌아간 그들.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기에 조심스레 물어보니, 날짜를 잡기 힘들어 그렇단다.

어느새 서리에 눈 내리는 본격적 겨울로 접어든다. 속절없이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눈 맞는 그 볏단. 물론 지붕을 덮고 있어도 마찬가지 처량한 신세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주인 없이 버려진 것 같이 보이는 그 짚단이 불쌍해 보인다. 이엉을 엮는 작업을 할 때라도 뽀송뽀송한 상태라야 좋은 것 아닌가. N이 비닐을 덮어줘야겠다 생각한다. 말이 쉬워 덮어주기지 연신 쭉쭉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또 하나의 시지프스 작은 놀이다.

 

비로소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엉 엮기 작업이 시작되는 날을 받았다. 평지에서도 추운 이때에 하물며 이 산속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날이 밝아지기 전에 부랴부랴 불 쬘 곳 마련하고, 커피 끓여 나르는 N의 속이 뒤집힌다. 그때 가져왔을 때, 이렇게 날이 추워지기 전 그때, 일을 마쳤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이런 날 일부러 잡기도 힘들겠다. 어디 ‘인간문화재’들을 이렇게 소홀히 모실 수 있느냐는 호통 반 농담 반에 동동주에 안주까지 대령해 극진히 모시고, 일하는 분들 분위기 돋으려 N은 갖은 신경 다 쓴다. 거의 아양에 가까울 정도로.

 

하지만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진다. 왜 우리는 차별대우하느냐며 벽체 작업하던 인부들 기분이 상했다. N은 이제 주막집 급사 신세가 된다. 이쪽 사람들이 더 시원시원하게 동동주를 즐긴다. 급기야 그 중 한 사람이 완전히 취해버려, 옆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분위기만 보자면 이건 일터가 아니라 잔칫날 놀이터다. 도시사람이 열어주는 마을 잔치 그 현장.

 

아무리 그래도 일만 제대로 진척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새벽 두시쯤 되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이엉 엮기를 마친 바로 그날 밤에 말이다. 그냥 눈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이건 정말 질척질척 진눈개비다. 정성스레 쌓아놓은 이엉더미에 눈이 쌓이고 바닥에 질질 물이 고인다.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지붕 올리기도 전에 다 무겁게 축 늘어지겠다. 칠흑 같은 한 밤중에 손전등 비춰가며 또 다시 비닐 씌우기 작업이다. 이 무슨 팔자인가.

 

시린 손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 입술도 얼어붙고, 뺨의, 아니 머리 전체의, 감각까지 이상해온다. 입술이 덜덜. 몸이 덜덜덜덜. 으흐흐흐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절제할 수 없는 짐승의 소리가 나온다. 그 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노가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분노의 함성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 동안 여기에서 겪었던 그 모든 수모와 굴욕이 ‘아아! 야아!’소리에 실려 쏟아진다. 이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아니 영화에도 이런 리얼한 장면은 나오질 않는다.

 

이런 미련하고 바보 같은 낭만 이제 다시라곤 찾지 않으리라고 N이 결심한다. 그 초가지붕 올리는데 들어간 비용 계산서를 받아드는 순간 N의 그 결심은 다이아몬드처럼 굳어진다. 이제 이 일만 끝나면 공사 중단이다. 더 이상 없다. 이제 이 일만 끝나면 공사 중단이다. 더 이상은 없다.

 

- 학고개 솔숲 이야기

 

이제 그 숨 가쁜 밀고 당김 늦출 때가 되지 않았어요? 학고개 첫눈이 속삭인다. 이제 한 해가 끝나가지 않아요. 올해로 흐름이 멈추는 것도 아니잖아요. 함박눈이다. 일단 마무리는 어때요. 차가운 겨울비. 다음 흐름을 준비하세요. 진눈개비다. 삶의 무게는 그 흐름의 속도에 반비례한다. 눈과 비 또 눈이 학고개에 이어진다. 흐름이 느려지며 동영상이 멈칫거린다. 정지화면이 끼어들기 시작하며 속삭임에 무게가 더해진다.

 

갑자기 흐름이 멈춘다. 세상 흐름이 고꾸라지고 겹쳐지고 말려들며 포개진다. 눈 덮인 산과 들은 시간의 흐름이 멈춘 순간포착에 다름 아니다. 장면 장면에 한없는 상념의 무게가 실린다. 지난 이른 봄 그 어느 날. 섬뜩하리만치 산뜻하고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던 금수산의 그 눈 덮인 모습이 다시 되살아난다. 그때의 그 눈과 오늘의 이 눈 사이 이곳 학고개엔 이야기가 흐른다. 학고개 솔숲 이야기.

 

집터를 마련한 그 한 해가 꿈과 설계의 시간이었다 한다면, 흰 줄 빨간 줄 매어가며 부엌이니 욕실이니 각도를 잡기 시작한 그 다음 봄부터 이제까지는 격동의 시간이었다. 전쟁이었다. 그 이른 봄 이 조용한 산골마을에 불쑥 나타나 귀틀집 짓는다며 포클레인 덜컹거리던 그 창백한 도시인 N, 이제 거칠게 터진 손과 깊게 패인 주름살에 다듬지 않은 범벅수염 시골노인이 되어있다. 산중턱 세봉우리 초가집 난간에 걸터앉아 탁 트인 계곡과 흰 눈 덮인 능선의 삼차원 파노라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삶이란 꿈을 향한 흐름이라고? 삶이 그러하듯 꿈 역시 흐름이라고? 이 학고개 솔숲에 흐르는 이야기 또한 삶이고 꿈이고 흐름이라고? 흐름이 흐름을 만나면 그 부딪힘이 생기고, 그 부딪힘에서 소리가 태어나고 빛이 섞이며 흔들린다. 소리와 빛의 흔들림. 그 흔들림이 빚어내는 것은 그림이다. 삶은 그림이고, 꿈도 그림이다. 삶도 꿈도 흐름이고, 이야기고, 그림이라면, 그 흐름과 이야기와 그림이 남긴 흔적은?

 

삶의 무게가 그 흐름의 속도에 반비례한다면, 그 흔적은 시간보다 더한 무게를 갖는다. 소리와 빛이 빚어내는 그림. 그것은 이야기고, 꿈의 흔적 역시 이야기다. 수많은 이들의 땀과 이야기가 섞이고 배어들어간 여기 솔숲 이 삶의 터전, 그 역시 이야기다. 전생과 이생을 이어주는 학고개 솔숲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