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봄은 왔는데, 마음이....
사방이 꽁꽁 얼어붙던 날. 그 춥디추운 마을회관을 떠나 따뜻하게 데운 자기 방으로 잠자리를 옮기는 N은 마치 평생 자기 집 갖지 못하고 셋방살이 전전하던 사람처럼 흥분에 들뜨다 마음까지 허전해진다. 오랫동안 바라던 것이 실제 눈앞에 현실로 다가올 때의 그 흥분과 그 뒤를 따르는 허전함.
방문이 잦아지며, N은 펜션주인이라도 되는 양 정신없이 바빠진다. 뚝뚝이와 뚝디까지 요란하게 짖어대니, 정말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친구들 사이의 단연 인기는 멋스러운 본채도, 넓은 테라스도, 탁 트인 창문도, 더구나 N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그 널찍한 거실도 아니다. 그런 어떤 것도 그저 잠깐 눈요기로 충분하고, 그들의 총총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초가집 쪽 찜질방. 벽도 천정도 한 자 두께 황토로 둘러싸인 온돌찜질방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전기료가 이미 백만 원 넘게 나왔다는 검침원의 황급한 전화를 받은 N이 부리나케 현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N이 ‘쇼크’를 먹은 것은 전기료 때문이 아니다. 침실 대형 유리창이 흉측하게 깨져있는 것이다. 누가 일부러 깨뜨리기도 힘든 그 유리창이. 길에서 던진 것이라면 그 각도가 이렇지 않을 것이고, 문틀의 압력 때문이라면 그 실링의 모양이 틀어져있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이건 분명 누가 가까이서 작심하고 던진 것이다.
이럴 수가. 지난 번 누군가의 돌팔매질에 얼굴이 험하게 찢어져나간 뚝뚝이. 또 한쪽 눈을 거의 실명한 뚝디의 얼굴이 이 유리창에 겹쳐지고, 아침밥과 세수 이야기가 귀에 왱왱 N을 괴롭힌다.
그 전기료는 수압센서 고장으로 가압펌프가 맹렬하게 돌아간 것에 누진요금이 적용되어 그런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예의 머피의 법칙. ‘어려움은 한꺼번에, 그것도 그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몰려서 온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엔 수중펌프가 또 고장 나서 물이 떨어지고, 길 건너오는 비상수도관마저 다 얼어붙는다.
추운 겨울. 정말 이 추운 겨울에. 마을회관으로부터 물을 끌어오는데, 또 유쾌치 못한, 정말 말로 표현하기도 싫을 정도로 아주 유쾌치 못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어려웠지만, 재미있다는 이유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N의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는다. 털자. 털어버리자. 이렇게 사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제 더 이상 견디기도 힘들고,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졌다. 정말로 잊자. 다 잊어버리자. 인근 부동산에 N이 집을 내어놓는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N도 그 집사람도 그 누구도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는 집 매각.
매매가 되려면 우선은 준공검사다. 서둘러 준공검사 신청 서류를 넣는다. 하지만 어려움은 어려움을 낳으면서, 말썽이 말썽에 꼬리를 문다. 그 사이에도 N은 물 문제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매각의 결심을 더욱 굳힌다. 돌이켜 생각하기도 싫은 어려움의 연속. 어쨌든, 봄에 들어서면서, 준공검사도 끝났다. 이젠 이 집 팔 일만 남았다.
부동산에서 묻는다. 얼마를 받기 원하시냐고. 원가에 상관없이 그냥 떨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N은 투자금의 반 정도라도 좋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며칠 있다 집으로 찾아온 부동산에서 현금을 내어민다. 이것이 무엇이냐 N이 묻는다. 지난 번 이 액수를 이야기하지 않았나. 정 살 사람이 없다면 그 액수라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그래도 속마음으로야 당신이 좀 더 받아내기를 바랐었는데 하니,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몇 천만 원을 그 위에 얹는다.
이 무슨 일이냐. 그의 답인 즉 전원주택 매매는 파는 사람이 원하는 액수를 쥐어주고, 나머지는 부동산의 ‘처리비’로 들어간다나. 처리비가 무엇이냐 N이 묻는다. 살 사람의 입맛에 맞도록 집을 새로 꾸미는 비용이란다. 아하! 개인이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 꾼이 여길 사서 개조한다는 이야기로구나. 내 비록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집을 팔려는 것이지만, 그것은 내 사정이고, 내 지은 집 자체가 그런 땡 처리 대상이 되어야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는 아니지 않은가. 못 하나 나무 하나 어디에도 내 정성 들어가지 않은 곳이 있던가.
부동산과의 접촉으로 ‘자기 작품에 대한 자존심’을 크게 다친 후 고민을 거듭하던 N에게 그의 자존심이 한 칼에 꺾여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놀러왔던 친구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진을 보는 순간 N이 자기 눈을 의심한다.
세상에 이런 흉물이? 이건 흉물중의 흉물이다. 집 짓다 남은 나무들이 쌓여있는 모습은 마치 폐기물 하치장 같고, 밖으로 노출된 보일러 통은 무슨 정유공장 저장탱크 같다. 아무리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사진이라는 진실 앞에서야 무슨 할 말 하겠는가. 이건 누더기 입고 머리카락 흩날리는 폐허 속 미친 사람 모습이다. 이러니까 그 ‘처리비’ 이야기가 나왔지.
이 세상에 나와 관련된 무엇이 잘못 되었다면, 남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남에게는 그렇게 입 바른 말 잘하던 N, 제 머리 한 대 호되게 맞은 꼴이다.
- 다시 새롭게
行百里者爲九十九里而半. 백리를 가려는 사람은 99리를 가서야 아 이제 반 왔구나 하고 생각할지어다. 어렸을 적 N의 선생님이 칠판에 써주신 격언이다. 부끄럽다. 참으로 부끄럽다. 아무리 홧김에 중도에서 포기하려했다지만, 그 인터넷 사진에 얼굴을 들 수 없다. 아무리 얼굴과 속살이 탐스러워도, 옷을 입어야지.
옷이 날개 이전의 문제다. 옷이라도 입히고 난 다음에 날개인지 아닌지 따질 일이지. 우선 그 깨어진 유리를 임시로라도 봉하고, 또 저 제멋대로 쌓여있는 건축자재를 정리해야지. 물론 저 돌 더미도 정리대상이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그 포클레인 기사에게 전화 해 날을 잡는다. 물론 이번에는 약속 어기기 없기로 못을 박고.
며칠 분주히 포클레인이 오가고 나니, 위쪽 밭이 거짓말처럼 깨끗해진다. 한쪽이 정원석으로 장식된 널찍하고 시원한 공간 하나가 새로 생겨난다. 그 흉물스러웠던 컨테이너 박스조차 잘 다듬어진 기초위에 올려놓은 아담한 별채처럼 보인다. 이발 면도하고 옷 하나 깨끗이 빨아 입었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지 N이 새삼 놀란다.
내친김에 저 아래쪽 폭포로 내려가는 길도 마련해볼까. 비탈 옆으로 밤나무 참나무 끼고 돌아가며 발 디딜 곳 마련하고 돌도 채워 넣고 하며 안전통로를 만든다. 중간에 땅벌에 쏘여 손이 무섭게 부어오르기 하고, 가시넝쿨에 손이 뜯기면서, 고통보다는 다시 작업한다는 기쁨에 들뜨게 된다. 며칠 작업에 얼굴은 다시 까맣게 타버리고, 작업복은 흙투성이 누더기가 되었지만, 세상에 둘도 없는 별장을 만든 기분이다. 개인계곡에 개인폭포. 이런 멋들어진 집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제 파고라 차례다. 낭만은 이제 끝이라 외치며 한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두었던 원목들을 다시 꺼내온다. 길 쪽의 파고라는 본채 벽에 학의 형상을 만들어 넣을 때부터 계획했던 것이나, 혹 준공검사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미뤄놨던 것이다. 이제 준공검사도 끝이 났으니, 망설일 것 없이, 열두 자 길이 원목이 최대한 활용되도록, 시원시원하고 길게 늘어뜨린다. 서쪽 벽에는 넓은 거실 창에 어울리게 아주 높은 파고라를 올리고, 동쪽 벽엔 피죽 벽으로 장식한 보일러실을 만들고, 거기에 너와지붕을 올린다. 옷에 날개가 다 달리니 꼭 날아갈 것 같다. 아니 N의 마음이 날아갈 듯하다.
집모양이 점점 갖춰지면서, N은 다른 방향에서 시달림을 받는다. 조심스럽게 계속되는 그의 처의 질문.
“이 집을 팔고난 다음의 계획은?”
멀쩡한 직장까지 미리 정리한 N에 대한 힐책도 들어있고, 이 집에 대한 아쉬움도 담긴 그런 생각에서이리라.
메기와 오징어. 그러고 보니, 그 허약한 N의 모습은 간데없고, 거칠게 그슬린 ‘건강 N'의 모습이 거울에서 마주본다.
마음의 결정은 끝난 일. 하지만, 팔리는 마지막 그날까지, 마치 우리가 영원히 살 집인 것처럼 가꿔갑시다. 이것이 N의 답.
이제 온돌방 차례. 두 번이나 무너져 내린 구들 때문에 그대로 방치상태에 있다. 이야기가 흐르는 곳과 이야기가 멈춘 곳은 삶과 죽음의 차이. 이 집의 백미라고 자랑스러워하던 그 찜질방이 거미줄이 칙칙한 버려진 방으로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어쩔 것인가. 또 한 번 시도하고, 그래도 무너지면 될 때까지 해봐? 신중 또 신중. N이 머리를 굴리고 굴린다.
온돌의 원리가 무엇인가. 아궁이로부터의 열로 돌덩어리를 데우고, 이 돌덩어리가 내뿜는 열선을, 즉 원적외선을, 즐기는 것. 그렇다면 구들돌이 직접 아궁이 불에 닿아야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맞다. 윗목의 돌이 어디 불길 직접 구경이나 한다던가. 그렇다면 아궁이 바로 위 구들돌도 불길을 집중적으로 받지 않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닌가. N의 발길이 고물상으로 향한다. 집 짓는 동안 여러 번 찾은 곳이다. 어떤 불에도 휘어지지 않을 만큼 두꺼운 철판을 74cm x 80cm의 넓이로 잘라 운반해온다. 그 무게만 자그마치 80kg! 제 위치에 올려놓기까지 위험천만의 순간을 여러 번 맞는다.
어쨌든 이제 구들돌 밑에 철판이 깔렸다. 불길로부터의 열이 일단 이 철판에 골고루 퍼질 것이니, 이제 어느 돌 하나에 집중적으로 불길이 닿아 그 돌이 파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심조심 불을 지펴 넣는다. 새로운 황토찜질방 탄생.
이제 남은 것은 그 ‘웬수같은’ 물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우선 지하수부터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 젊은 장정들이 십여 명 찾아오던 날. N은 우선 그 수중펌프 꺼내는 일부터 부탁한다. 오는 날. 포클레인 힘 빌어 꺼내려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그러다 툭 끊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이 부드러운 사람 손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굵은 엑셀파이프에 동력선과 센서선 뭉치가 주렁주렁 달려 나온다. 무엇이 문제인가 들여다보려 해도 이 펌프가 일체형이라 분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할 수 없이 그 모터를 설치한 곳 엔지니어를 부른다. 그동안 얼마나 무책임하게 나 몰라라 발 빼기만 했던 곳인가. 역시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이젠 막다른 골목 아닌가. 할 수 없이 험한 표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서야 그들이 나타나 펌프를 갈아 끼운다. 어차피 못쓰게 되었다는, 속에서 나온, 그 펌프를 분해해보니, 이건 완전히 돌덩어리다. 나사모양 물길을 돌덩이가 채우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지? 어쨌든 이제 지하수는 시원하게 나온다. 수량에는 문제가 있어도, 하여튼 물은 나온다.
이렇게 지하수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되니, 저 위의 밭에 노출된 부분에서 직접 물을 끌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통보된다. 얼마 전 입금시킨 그 ‘마을입회비’가 효과를 발휘한 탓이리라. 어쨌든 이젠, 99리의 위치에서 100리의 그 목표점으로 가는 길이다. 완벽, 그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결국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손’의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그 물 연결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 다음날, 또 그 며칠 후 봉변을 당한다. 이제 참을 수 없어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 N이 사람들이 다 모인 곳에서 그동안 섭섭했던 것의 일부를 토로했다가 이번에는 더 큰,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당한 것 중 가장 심한, 다시라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봉변을 당한다.
감정은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 어떤 기록보다 강하게 기억된다.
어쨌든 이제 N의 집은 마을 저수탱크에서 특별히 독립된 급수선을 끌어다 쓰는 특A급 주택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이 진행되다보니, 이미 유월 초여름이다. 나무 심고 꽃 심기에 좀 늦은 감이 있다. 그래도 누가 알아? 몇 그루 시도해보지만, 어찌 자연의 힘을 거역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겨울 그 혹독한 시련을 겪으며 이곳을 포기하려 마음먹은 그 후유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축대만 있는 것보다야 그 돌 사이사이에 푸름이 심어져있는 것이 더 보기 좋다는 것을 모를 사람 어디 있겠냐마는, 지금 여기 이 전원주택은 비끗대고 있다.
곰곰이 생각하면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장마가 있지 않은가. 식물이 생장을 잠깐 멈추는 시기. 바로 이 장마철을 이용하자.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코스모스를 따다 장미 사이사이에 심는다. 올봄 그 장미는 빈약했지만, 가을이 되면 길 양쪽에 코스모스 만발하리라는 희망을 않고. 야생화 몇 포기도 집 주위 화단에 옮겨 심는다. 그저 그 정도다. 이 집 주인이 내년에도 N 그대로라면, 그때 가서 내년을 생각할 일이다.
잠시 뜸했던 방문이 이어진다. 여름에 들어서면서, 기온이 껑충껑충 뛰어 오르듯 방문 빈도도 방문객의 수도 정신없이 올라간다. 책에도 있지 않던가. 전원주택 첫해의 방문객이 예상을 뛰어넘듯이, 둘째 해부터는 그 숫자 거짓말처럼 줄어든다고.
- 보험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도 미련할 수 있을까. 비록 집짓기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지만, N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바로 산재보험. 거기에 들지 않은 것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날이 지나갈수록, ‘이제 와서...’, ‘지금에서야 들기에는...’ 생각이 더욱 강해지며, 결국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 채 그 공사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집짓기 시작하는 첫 단계에서 그 보험에 들려고 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 요구하는 비용에 놀라 순간적 계산에 잠깐 멈칫하였고, 그 멈칫거림이 그냥 계속된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본다. 만일, 어쩌다가, 인부 중 누군가가 큰 사고를 당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실 사고가 몇 번 있기는 있었다. 한 번은 발판이 무너지는 바람에 인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단독사고였고, 두 번째는 이층 발판 전체가 무너지면서 높은 곳에서 통나무 부착 작업을 하던 여러 명의 인부가 멀리 옆으로 내동댕이쳐진 대형 사고였다. 위치와 각도를 살피던 N도 그 통나무에 머리를 맞을 뻔했는데, 정말 문자 그대로 몇 센티 빗나간 그런 엄청난 일이었다. 정말 다행히도 아무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무사축하 자리를 마련했지만, 정말 간담이 서늘해지는 사건이었다.
결국 당하고야 만 사람은 N 자신이었다. 짐을 들고 옥외계단을 내려오다 굴렀는데, 필사의 노력으로, 구르면서도, 난간을 움켜쥐었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머리를 크게 다칠 뻔했다. 바로 그 며칠 전, 벽체 쪽 손잡이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 자존심 강한 목수가 결국 손들고 떠난 곳을, 다시 Y에게 부탁하여 새로 만들며, 그 굵기와 모양을 꼼꼼하게 다듬은 곳에서 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었다 싶을 정도로 아이러니컬한 사건이었다. 오른 손이 크게 찢어져 출혈이 심해 구급차를 불렀는데, 신고부터 병원도착까지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 만약 이 사고가 인부에게 일어나고, 그가 이 손잡이 생각을 못하고 크게 당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엉뚱한 일도 일어난다. 한 인부가 철사 작업을 하다가 그 철사가 튕겨지는 통에 앞니가 두 개 부러졌다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그 당일 그 현장에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한 달 남짓 지난 다음에서야 N에게 배상을 요구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좋은 뜻으로 N이 그 사람이 요구한 액수보다 더 해 주기로 하고 은행에서 만났는데, 이 ‘피해자’와 같이 온 사람들의 태도가 험악해지며 돌변하는 모양을 보며 N은 직감한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로만 듣던 그런 케이스로구나. 더 험악하게 일이 번지는 것만 막았을 뿐, 어느 정도 선에서 결국 ‘타협’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된다.
어쨌든 사고보험에 들지 않은 채, 이 정도의 일로서 공사가 끝났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라고 생각하며, N이 그 다음 단계인 화재보험을 생각하지만, 이번엔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어려움에 부딪친다.
네 군데 보험회사를 알아보았지만, 그 어느 회사도 목조건물에 대한 보험은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 십 년을 거래하던 보험 대리인도 현장에 와 보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N이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다. 용마루를 따라 파이프를 설치하고, 그 파이프에 분사장치를 연결하는 방법까지 생각하기도 하고, 집안 곳곳에 소화기를 ‘깔아놓을’ 것조차 생각하지만, 여기가 무슨 캘리포니아도 아니고, 그저 답답하기 그지없다.
해결책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바로 농협의 공제제도. 이름만 생소할 뿐이지, 바로 여기서 화재보험을 받아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 이곳에서는 목조주택의 보험도 받아주도록 별도의 요율도 정해져있었다. 그래서 농협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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