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는 세 가지가 있다. 지리적 거리, 시간 거리, 그리고 심리적 거리.
시골생활 몇 년 하다 보니 이젠 심리적 거리가 이젠 하도 커져서 서울이 무슨 외국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서울에 갈 일이 한번 생기면, 끝없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꼭 가야하나? 전화로 대신 할 수는 없을까? 어떤 때는 그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가, 써먹을 속담 하나를 생각해낸다.
"급하게 됐다고? 이미 틀렸으니 손대지 마라. 어차피 그보다 더 급한 일이 곧 또 나타날 텐데 뭐."
맑은 생각을 방해하고, 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대개 지나친 목표의식이요 쓸데없는 선입관이다.
멈칫멈칫하다보면 때 놓치고 서두른다.
이렇게 서두르게 되면 과정(중간의 경치나 차 속에서의 사색)은 중요치 않고, 목표(서울 도착)만이 중요하다.
피하려 해도, 언제나 마찬가지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떠나야지 그 상황이 되어야 출발이다.
이렇게 되면,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고, 과정을 즐기는 산책이다'라는 내 평상시 생각방법이 슬그머니 자리를 비킨다.
'나'는 사라지고, '운전자'가 대신한다.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앞지르기 횟수가 잦아진다.
남들은 경치도 즐기고, 옆 사람과 정감어린 얘기도 나누며 ‘지금’을 즐기고도 있다는 것은 알 바 없다.
내 '인생'은 목적지 ‘그곳’에 이른 후에 비로소 시작이다. 지금은, 아직은, 아니다.
차선을 바꾸어가며 앞지르기를 계속하다 보면, 어느 정도 만회한 것 같아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그렇지만 서울에 가까이 올수록 길이 막히고 차 늘어선 곳이 잦아지면서 수학 생각이 난다.
내가 달리는 속도가 산술평균이 아니라 기하평균임에 놀랄 수밖에! ‘
지금까지 투자한 게 얼만데....’하는 마음에 딴 길로도 돌고, 과속도 해보지만, 그 곳이라고 사람이 없겠는가?
다시 돌아오느라 애꿎은 스칼라 값만 늘렸지 벡터에선 별로 얻은 게 없다.
이성적 관점에서 끼어들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다른 차가 제 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어맞아야한다. “
다른 차?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지.”
이것은 비도덕적이자 비과학적 생각이다.
그 다른 차의 운전자가 딴 생각에 젖어 있었다거나, 운전미숙으로 당황한다면, 물리적으로 꽈당!은 피할 수 없다.
사회심리학적으로도 올바른 추론이 아닐 수 있다.
그 다른 차가 이런 기회를 엿보았다면, 이번엔 더 크게 당하고, 두둑하게 보상까지 해줘야 한다.
어쨌든, 목적지에 좀 더 일찍 도착하려던 원래 의도는 빗나가고 물리적, 심리학적, 경제학적으로 잘못된 결과에 후회만 남을 것 아닌가.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고가 아직 나지 않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아하!가 쌓여감에 따라 자신감이 생겨, 두개의 차선을 바꾸는 것조차 마다않고,
심지어는 교차로신호가 바뀌어도 속력을 더 내어 시간을 단축한다면?
쌓여가는 자신감에 이 능숙한 솜씨가 어느덧 습관으로 몸에 붙을 것이고,
마치 ‘아직 한 번도 사고가 없었음’이 ‘앞으로도 사고 없을 것임’을 보장이라도 되어있듯.
이런 자신감에 비례해서 사고의 수학적 확률은 더 높아져만 가는 어느 날 머피가 다가와 속삭일 것이다.
“어떤 일이 잘못될 수 있다면, 그 일은 틀림없이 잘못되고, 그 부작용은 최대치를 향한다.”
병원에 누워 있게 되어서야 비로소 그 잊었던 수학책의 다음 페이지가 기억날까?
끼어들기 때 잘못될 확률은 아주 작지만, 그 확률에 가중치를 곱해야 했다는 걸.
설령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했다손 치더라도, 이미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된다.
막상 목표로 했던 그 ‘서울에서의 인생 출발점’에 섰지만, 정신적 엔트로피가 한참 증가해 있다.
말끔한 일처리가 생명인 이 경쟁사회에서 불리한 입장을 자초한 셈이다. 이것은 분명 일의 앞뒤가 바뀐 것이다.
그 '피나는 노력으로 만회한' 시간만큼, 처음부터 조금만 더 일찍 출발할 생각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은 나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의 모습일 수도 있다.
늦게 출발한 사람들의 ‘완료! 목표’를 향한 ‘대충대충!앞지르기’ 습관이 가중치와 함께 불거져 각종 사고로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사회 전체가 머피를 만나는 날이 어제보다 오늘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아무 일 없었다고,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비합리적 일이 얼마나 많이 돌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운전모습처럼 밀어붙이는 힘으로 한국이 경쟁국들을 앞질러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수학적 확률이 적다고 방심하는 대신 가중치 곱하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TV화면에 비치는 머피를 만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위기를 느낀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상대적 가치관이라는 병적 현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닐까.
비교우위의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할 때, 그 사회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내 인생의 목표는 행복한 인생이요 화목한 가족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 권모술수가 판치는 광란의 놀이가 벌어지는 것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할 일 없는 시골사람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떻게 하면 머피 아저씨의 심술을 피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생각과 망설임의 쳇바퀴를 벗어나, 조금 일찍 떠나면 된다. 모든 일에 좀 여유를 두고 준비하는 것이 옳듯이.
지금 출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삶의 여유. 생각만 해도 상쾌하지 않은가?
'뚝틀이의 생각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물농장 대한민국 (0) | 2010.02.23 |
---|---|
시골 에너지 국가 에너지 (0) | 2010.02.23 |
아빠 사랑한다고? 하! (0) | 2010.02.18 |
你是我的一杯茶 (0) | 2010.02.18 |
반섬의 앞날 (0) | 2010.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