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시골 에너지 국가 에너지

뚝틀이 2010. 2. 23. 02:14

여행을 떠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식사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지 하는 생각에 이르면 그 즐거움이 싹 가신다. 토종닭이나 매운탕, 한 끼 별미로는 모르겠지만 끼마다 이런 음식으로 때울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오죽하면 하동 쪽 여행을 하다가, '우리 집은 재첩국 아닌 음식도 있습니다.' 이런 간판이 눈에 띄면 무조건 그 집으로 들어가겠다는 마음까지 먹었을까. 하지만, 시골생활 4년째에 접어드는 이제 이 정황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농촌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생업에 종사한다. 농사 하나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현실에서 ‘부업’은 필수적이고, 그 부업엔 야생동물의 포획이나 산나물이나 약초 채취 같은 불법행위까지도 포함된다. 농촌경제 그런 것까지엔 신경이 미치지 않는 도시사람들, 바로 그들이 이 불법남획을 부추기는 사람들이니 누구를 탓하랴. 목 좋은 길가에 터를 잡아서 민박이나 음식점 간판을 내걸고 손님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운아에 속한다.

 

그런데, 농사일이란 것이 하늘 올려다보며 그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하는 그런 종류의 일인지라, 부업성격의 생업에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 역시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게 되니, 손님의 취향을 살펴가며 극진히 모셔야 하는 서비스업과 거의 짐승처럼 일에 빠져야 하는 이 농사일이 그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방해하는 그런 불행한 조합이 되어버린다는 원초적 불행이 존재한다.

 

식당 음식의 생명이 정갈함과 싱싱함이란 것을 누가 모르랴.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도시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런 재료를 준비하고 다듬어 상에 올려놓을 수가 없으니, 언제나 ‘싱싱한 상태’로 보존하고 있던 토종닭이나 오리를 주변 밭에서 얻을 수 있는 싱싱한 푸성귀와 함께 상에 올려놓는 것이 ‘유일한 합리적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별미란 단어에 걸맞게 일종의 담합가격을 형성하고 ‘괜찮은 부수입’을 올리는 것. 이것보다 더 편한 방법이 있을까.

 

그렇다면 도시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농사일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식당다운 식당을 경영할 수 있지 않은가. 실제로 있다. 몇은 아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고 또 몇몇의 앞뒤상황은 들어서 알고 있다. 주변 경관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펜션 하나 지어놓고 노후대책을 마련했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인테리어 시늉만 겨우 낸 식당 하나 열어놓고 도시에서 봐왔던 그런 '손님의 행렬'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굴러들어온 이들과 원래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 생기곤 한다. 사고 DNA가 원초적으로 다르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 결과모양은 마치 한국에 맥도날드 열어놓고서도, 한국인은 전혀 손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미국 관광객이 들려주기나 바라는 그런 미련한 형국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화려한 전단지 몇 천 장보다 더 효과가 있을 그들의 입소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저 씁쓸한 모습들.

 

그런 것 저런 것 따질 것 없이, 더 근본적 관점에서, 유동인구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투자를 많이 해놓고 정성을 들여 음식을 만들어도 그 바램 자체가 헛된 꿈이다. 딱 잘라 이야기해, 돈벌이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시골로 내려가는 자체가 바보짓이다.

 

문뜩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2위와 3위로 꼽히는 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가 생각난다. 아무리 구석으로 들어가도, 아니 구석으로 더 들어갈수록 음식은 물론 여행의 진미가 한층 더 느껴지는 그 두 나라. 데이터를 비교해본다. 우리 남한은 면적이 대략 10Km2, 인구는 5000만명 조금 안 되고, 1인당 GDP가 2만불보다 ‘조금 더’ 적은데, 스위스는 4Km2에 750만명 오스트리아는 6Km2에 820만명에 두 나라 다 3만3천불 정도.

 

그 두 나라 합치면 우리나라 면적이 되는데, 우리는 인구가 3배에 GDP 2배. 그런데도 우리가 행복한 나라 몇 번째나 될까 따져보려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나와는 인연이 강했던 그곳, 내 그 구석구석을 얼마나 많이 여행했던가. 사람 하나하나를 백열전구라 치면, 그 두 나라는 수도 지방 가릴 것 없이 골고루 환했는데, 우리는 극심한 수족냉증에 머리에서만 열 펄펄 나는 꼴 아닌가.

 

우리의 ‘금수강산’ 모습이 그쪽에 비해 그렇게 떨어진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밋밋한 알프스 산보다는 우리의 산과 들 또 강이 더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는 것에 감탄하던 귀국직후의 그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냥 생각해본다. 우리의 수도가 지금 위치가 아니라, 국토의 중앙인 상주 문경 근처였어도, 국토의 '균형 활용'이 이토록 요원하게 느껴졌을까? 여행을 하며 먹는 것 찾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어느 곳을 가도 미소 짓는 얼굴을 만나며 행복감에 젖어드는 것이 이리도 불가능하게 느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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