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이제 곧 새 생명의 계절이

뚝틀이 2010. 2. 26. 22:33

비가 그쳤다. 어제 밤만 해도 미련이 남았던지 오락가락하더니 이젠 그만 지쳐 좀 쉴 모양이다. 내일도 숨 좀 고른 후 모레 삼일절 날 다시 오겠단 쪽지를 인터넷에 남겼다. 그래, 그래. 기특하지. 어쨌든 작년의 그 극심했던 봄 가뭄 올해는 겪지 않게 해다오. 그런데, 좀 아쉽기는 하다. 그 수북이 쌓여있던 눈. 이번 비에 깨끗이 씻겨 내려간 것이. 계곡 물 저리 험하게 넘실대는 것 보니, 꼭 이번에 온 비만 내려가는 것은 아닌 듯싶다. 억울해요 억울해 좀 더 있다 갈래요 눈들의 외침이 그 요란함에 더해진다.

 

산골생활의 즐거움이 무엇이냐 누가 묻는다면 저 계곡 물소리를 첫 번째로 꼽고 싶다. 더 꼽아보라면, 해가 떴음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 새벽이슬 촉촉이 머금은 숲 속의 향기, 계곡 길 따라 산보 나선 내 바로 앞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바로 옆에서 푸드덕 날아오르는 꿩,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저녁 무렵 어슬렁어슬렁 산책 나온 고라니, 사방 어둑해진 깊은 밤중에도 짝을 부르고 화답하는 새 소리 짐승소리에 귀신소리까지.

 

욕심인가 관성인가. 농협에서 사온 옥수수 한 봉지. 이웃에서 가져온 해바라기 반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작년에 일구어놓은 밭으로 눈을 향한다. 곡괭이질 삽질 또 호미질에, 아이고 팔이야 아이고 허리야, 받아온 약봉지 입에 털어 넣던 지난 해 그 기억 다시 새롭다. 합리화. 자기합리화. 이게 어디 꼭 뭘 수확해 어쩌자는 건가, 이 녀석들 자라는 동안 변해가는 그림 그 시간그림을 즐겨보자는 거지.

 

그림? 그림이라면 자연의 자연스런 그림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겠나. 하긴, 잡초로 작품을 만들려 애써본 적도 있긴 있었다. 군데군데 적당히 잡초무리 남겨 운치 어쩌고 하고 있는데, 마침 놀러온 친구들 기겁해 낫 들고 호미 들고 나선다. 뱀 무서운 줄 모르는 나를 탓한다. 나야 속으로만 답할 뿐. 니들이 쥐 세상 얼마나 더 무서운 줄 알기나 알아? 어쨌든 작년 이곳 뱀들 많이도 자랐다. 봄에는 꼬물꼬물하던 그 녀석들, 가을 들어서면서 그 크기 그 무늬 사람을 섬뜩섬뜩 놀라게 한다. 쥐냐 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천에서 놀러온 지인. 농사를 짓는다고 다 같은 농민이 아니란다. 논농사 짓는 사람들. 이들은 싫든 좋든 벼 하나에 매달려야하니 은근과 끈기의 순박함 그 자체지만, 밭농사 짓는 사람들은 금년엔 무얼 키워 언제 내놓을까 베팅에 베팅,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보니 영악하기 그지없단다. 하긴 내 몇 해 동안 보아오지 않았나. 아무리 품목 잘 골랐어도, 그 해 날씨 그 품목에 맞지 않으면, 또 고른 품목 들어맞고 농사 또한 잘 되었다하더라도 사방에서 물건이 쏟아져 나오면, 그저 헛고생에 다름없어진다는 것을. 어쨌든 난 금년 전략품목으로 옥수수를 골랐다.

 

내 사랑하는 옥수수 올 자리, 다들 물렀거라. 졸지에 잡초라 낙인찍힌 이 녀석들 얼마나 억울할까. 겨우내 그 차가운 땅 속에서 생명을 준비해왔는데. 하지만, 인간인 내 입장에서도 이건 그저 심심풀이 장난 그런 게 아니다. 작은 싹이라 얕잡아봤다간 가랑비에 무슨 비장의 성장호르몬이라도 섞였는지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이 괴물들에 혼쭐나기 일쑤고, 좀 잘리면 오히려 더 신나 날뛰는 쇠뜨기 메 칡엔 두 손 들지 않으며 다행이다. 철저한 발본색원. 이것은 인간사에 적용되는 말이 아니라 바로 잡초와의 전쟁 거기서의 기본개념이다. 제초제? 정말 정말로 마지막 순간까지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생각을 멈추고 파고라에 걸쳐진 포도넝쿨 쪽으로 눈을 돌린다. 위 한 번 옆도 한 번 둘러보며, 아 여기 여기로 가면 되겠구나, 이러면 얼마나 좋으련만, 뱀 혓바닥 같은 순을 사방으로 내밀며 허우적거리던 완전 구제불능 이 녀석들. 궁리궁리하다, 마치 악보에 다섯줄 그려 넣듯, 그렇게 굵은 줄기들 평평하게 옆으로 당겨 묶어놓고, 어떤 음표 어떤 쉼표 그려 넣든지 그건 너희들 알아서 하라 맡겨뒀던 이 녀석들. 작년까지만 해도 제법 풍성한 음악이 흘렀는데, 지난겨울 뚝뚝이 뚝틀이가 저 밑동일 저렇게 질겅질겅 씹어버렸으니.....

 

문뜩 며칠 전 알을 까고나온 새끼들이 궁금해진다. 겨우 내 묵혀뒀던 농기구 정리하던 얼마 전, 쌓여있는 통들을 들어내다 눈에 띈 새끼손톱 끝자락보다도 훨씬 더 작은 일곱 알. 그중 제대로 부화한 것은 다섯뿐. 대추알만한 그 녀석들 들여다보며 휘파람 불면 어미가 왔다고 생각하는지 자기 몸통보다도 더 크게 입을 벌리곤 한다. 못된 짓하다 어미에게 들킬까봐 얼른 다시 닫곤 하는데, 그 주둥이 크기 커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생명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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