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만약에...

뚝틀이 2010. 6. 4. 22:18

아침에 집을 나설 때까지도 망설이는 마음이었다. 갈까, 말까. 시내에서 일을 보고 난 시간 역시 어정쩡. 갈까, 말까. 지금 가면 너무 늦지 않나. 차에 시동을 걸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비게이션 목적지 입력. 가자. 미룰 것 뭐 있나. 땡볕. 에어컨을 틀어? 아서라, 아서. 산에 오르는데 힘들다. 너무 힘들다. 설상가상. 마실 것을 차에서 꺼내오지 않아서, 그런 자책까지 겹쳐지니, 힘들다. 갈증. 하지만, 가뭄때문인지 계곡이 다 말라붙었다. 어디에도 물이 없다. 더 올라 폭포 가까이까지 가니 고인 물이 있다. 저것이라도 마셔? 아서라, 아서. 땡볕 힘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다가온다. 곧 저 구름이 내 길을 편하게 해주겠지. 힘들다는 생각이 사라지며 기운이 나기 시작하니, 그것이 기특해서일까? 빗방울이 톡톡. 갈증 그 느낌도 사라진다. 마른 땅 때리는 빗방울에 튕겨지는 먼지 냄새 어렸을 적 추억이 살아난다. 풀냄새 숲냄새 산 냄새가 기운을 더욱 북돋운다. 가자. 가자.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 굵어지는가 싶더니, 날이 컴컴해질 정도로 구름이 짙어지고, 본격적 소나기. 어디 비 피할 곳도 없다. 길 옆 어디 숲으로 들어갈 그런 지형도 아니다. 왼쪽엔 골짜기, 오른쪽은 가파른 산, 로프 붙잡고 올라가는 길에 비 피할 곳 어디 있겠나. 나무 밑? 이런 비엔 그것도 사치. 카메라 배낭에 불만이었던 내 생각이 짧았음을 깨우쳐주려는 비? 오늘 처음 메고 나온 이 배낭이 아니었다면 카메라는 완전히 물 세탁 당한 꼴이었을 것. 속옷까지 완전히 적시고나서야 비가 물러난다. 꽃 있는 곳. 여기가 문제다. 마른 날이라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인데, 이 갑작스런 비에 미끈미끈 그곳 올라가기가 보통 까다롭지가 않다. 잡고 올라갈 나무도 없고.. 젖어 미끄러워진 돌들 붙잡을 곳도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그 먼 길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야 없는 것 아닌가. 고개를 들어 자세히 살피니 바로 '조~기'에 꽃이 있다. 그 옆에도 또. 지난 번 왔을 때 생각. 이렇게 위험한 곳은 다시 오지 않기로. 그건 그때 생각이고, 지금 바로 조~기에. 배낭을 벗어놓고 비에 젖은 겉옷들 역시 벗어 그 위에 쌓아놓고 손을 더듬어 카메라 올려놓을 곳 찾는다. 이번엔 손 짚을 곳 찾고, 나무 밑둥이 움켜쥐고 여~쌰. 다시 카메라 그 위 더듬어 올려놓고.. 다리가 후들후들. 모델이 없다. 다들 싱글. 좀 모여있는 것 어디 없나?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ㅠㅠ. 이런~. 렌즈를 잘 못 가지고 올라왔잖아. 다시 내려가는데, 이야말로 난감. 짚고 올라갈 때는 순간적 기운이라도 쓸 수 있었지만, 내려가는 것엔 중력법칙이 더 크게 작용한다. 어쨌든 다시 내려와 렌즈 갈아끼우고, 내려온 김에 배낭 들추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항상 챙겨가가지고 다니는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어느 정도 견딜만.. 바로 이런 것이 기분전환이라. 심기일전. 이번엔 좀 더 조심스럽게... 배경까지 생각하기엔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아무래도 꺼림칙. 몇 번 찰칵찰칵 후 다시 후들후들 아래로. 이제 나머지 길 따라 산 꼭대기 바위 꼭대기까지. 시원한 풍경. 그 사이 비는 완전히 그치고. 비에 젖은 돌 그 위의 모래 이런 산길 내려오기 편하지는 않지만, 원하던 다른 꽃들은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쁜. 산에 내리는 비. 올라갈 땐 바싹 말라있던 폭포에 지금은 제법 시원한 물소리. 이런 소나기에도 이 정도 차이니 갑작스런 비 제법 내리면 산에서 조난사고가 일어나곤하는 것이겠지. 늦은 시간 올라갔으니 계곡 따라 내려오는 길에 짙은 그림자 드리운 것은 너무나 당연. 어쨌든 다시 차에. 아까 잊고 놓고갔던 물 들이키니 시원. 시원? 물맛이 영 아니올씨다. 하지만, 갈증은...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온갖 생각이 스쳐간다. 내 지금 뭐하자고 이 '짓'하는 거지? 짓? 이 얼마나 멋진가. 내 만일 엄청나게 재산이 많아 그것을 관리해야했다면, 아니면 내 무슨 이너써클의 일원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자연과 어울리는 기쁨을 누릴 수나 있었겠나. 없는 것도 복. 한가한 길을 달리며 '우리 사회'로 생각이 번져간다. 옛날 정수란가 누군가 노래 가사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될 수가 있고....' 혹 아무리 원해도 무엇이 될 수 없었던 그 사회가 더 '좋은' 사회는 아니었을까? 체념과 포기. 목표 그 자체를 생각할 때 이는 매우 부정적이지만, 사람의 삶이 한 트랙에 한정될 필요는 없는 것이니 바로 이 체념과 포기가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많은 '혜성'이 나타나곤 한다.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물론 지나고 나서 나중에 분석하면 적당한 이유와 '필연성'조차도 갖다붙일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 통념적으로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던 일들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입증해주는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꼭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희망 사항'이란 뉘앙스와 '계획'이라는 구체적 느낌. Wishful thinking이 이루어지지 않을 땐 가벼운 실망으로 끝나지만, 확실할 것 같아 보이던 희망이 그래서 계획의 일부로 편입되었던 사항이 무망한 것으로 드러날 때의 그 실망과 좌절은? 앞으로 자주, 훨씬 더 자주, 우리사회는 '기득권층에 속하는' '아까운 사람'들의 자살 사태를 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왜 요즘은 한참 '잘 나가다가도' 이런 종류의 쓸데 없는 생각으로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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