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냉철하고 훌륭한 생각체계에 접할 수 있는 하버드 대학생들이 부럽다.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그저 흥미로 책을 손에 잡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파악하려 노력하고, 그 사상과 철학을 자신의 '기존 생각체계'로 판단해보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생각체계의 일부를 받아들여가며 그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는 것. 그것이 바로 배운다는 것이고, 하나의 독립된 인간 또 사회의 구성원으로 성숙해져가는 것 아니던가. 거기에 또 하버드 출신이라면, 물론 자기가 원해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면, 미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일조를 할 수 있는 그런 능력과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고.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몇 가지 예를 보면서, 이 책 역시 '미국특유의 문화'인 그럴듯한 궤변과 현란한 말 재주로 점철되는 법조인에 의한 법대생들을 위한 법리논쟁 그런 책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샌덜 교수가 한 학기 강의를 그런 케이스 스터디로 끌고 나가는 것을 아닐까 하던 생각은 기우였다. 일단 그 '생각 과제'로 던져진 케이스들을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것인지 하는 가벼운 '생각 훈련'의 도구로 다루어 본 후, 그 다음부터는 좀 더 규모가 큰 또 쉽게 답을 던져줄 수 없는 생각 과제를 던져가면서 칸트의 도덕 원칙 롤스의 평등사상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론으로 그 차원을 높여가며 옳고 그름이라는 생각의 가장 밑바닥까지 철저히 따져나가며 수강생의 생각을 객관화 시키는 작업을 진행해나간다.
이 강의록의 매력은 그 선명한 줄거리와 뚜렷한 주관이다. '객관적으로' 또는 '개인주의 현대사조의 특성상' 등등의 이유로 'justice라는 것은 정의하기가 참 힘들다'는 식의 회피적 진행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로 기존 생각들을 다 reshuffle하고 난 뒤, '정의와 공동善' 이라는 '냉철한 유도과정을 거친 사회과학적이며 당위적인 해석'을 그 결론으로 제시한다.
강의는 주장이나 궤변이 아닌 학문활동의 일환이다. 이해관계나 아집과 독선이 배제된 객관적 진리를 도출해내는 학문. 극도의 성과지상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철학은 없이 궤변만 난무하는 이 혼돈의 늪에 빠져있는 우리사회. 여기 이 땅 우리의 대학 어느 교실에선가도 이런 강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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