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케이블 방송에서 보았던 연속물 '명탐 적인걸', 거기에 나오던 '대주의 황제'가 누구인가 궁금하여 자료를 찾아볼 때부터 생긴 궁금증. 한편으로는 사악하기 그지없는 요녀의 대명사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혼란한 제도를 바로 잡고 민생을 보살피며 나라의 힘을 막강하게 키워 훗날 당현종의 개원의 치의 바탕을 마련해준 여걸이자 중국 역사 상 유일한 여성 황제로, 그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측천무후. 이 인물의 '진면목'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중국작가 쑤퉁이 쓴 '역사소설'이 나왔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주문. 마치 진시황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사마천의 사기을 읽음으로써 그 양면성이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정리되었던 그런 효과를 기대하면서.
아무리 역사소설이라지만 역시 소설은 소설. 내심 기대했던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보다는 측천무후의 '여성으로서의 인간성'을 다룬 이야기다. 황제의 여인들을 차례차례 제거해나가며 황후의 자리에 오르는 요부, 이어서 자신의 욕망을 위해 친자식들인 태자들조차 차례차례 제거해나가는 냉혈 여인, 이야기는 쭉 그런 쪽으로만 치닫는다. 하긴, 소설을 손에 잡고, 역사공부를 대신하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일 수도. 그러다 이런 생각까지 든다. 차라리 좀 더 리얼한 업보의 성격을 담는 의미에서, 자신의 형 이건성을 죽이고 아버지 이연을 가두고 황위에 올라선 당태종 이세민, 그의 업보가 여기에 얽혀들어왔다는 그런 분위기도 섞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흑묘백묘를 이야기하듯, 역사상 수많은 권력자들이 그래왔듯, 인간성은 인간성 치적은 치적 그런 방향으로, 토번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갈등관계도 섞어가고 또 과거제도를 통해 새 인물을 발탁해가며 부패하고 낡은 정치 시스템을 바꿔가던 그의 다른 면도 집어넣어가며 역사소설의 본질인 객관성을 강조했든지.
하지만, 그것은 내가 기대했던 분위기라면 그렇다는 이야기고, 이 소설 자체로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압권 그 자체다. 첫 페이지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수려한 문체가 도대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를 부드럽게 끌어나갈 수가 있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소설의 중간 중간에 태자의 독백형식을 빌어 이야기들을 담아나가며, 쓸데 없는 '설'로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는 것을 산뜻하게 처리하는 그 솜씨도 일품이고.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는 흐뭇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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