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Déjà vu

뚝틀이 2010. 10. 27. 22:23

QE2. 이제 마음 놓고 협박이다. 중국이 인위적으로 위엔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면서 그 상품경쟁력을 바탕으로 자국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으니, 미국이 자위차원에서라도 달러화를 풀어 그 가치를 낮추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해서라도 미국의 제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떠나 참 효과적 보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 보유 달러 역시 그 희석효과만큼 가치하락을 겪을 것이니, 우선 이제까지 벌어놓은 것에서 좀 덜어내겠노라 그런 뜻도 들어있는 것 아닌가.

 

돈이란 무엇인가. 교과서적 의미로야 물론 물물교환의 대체수단이지만, 기원전 6세기 리디아에서 금화가 만들어졌던 그때부터도 이미 金은 그 자체로도 사람들이 탐내는 '물건'이었고, 어느 시대 제국이건 상관없이, 그 권력구조를 지탱하는 아교 같은 힘은 토지와 金으로부터 나왔었다. 군사를 일으키는데도 金, 두뇌들을 가까이 거느리는데도 金, 권위과시용 예술을 일으키는데도 金. 이런 유인수단 보상수단이 없는 제국을 어디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후세의 역사책을 미리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다.  

예전에 Pax Americana 시대가 있었노라고. 권력도 金도 모두 움켜쥔 '못된 주인들'의 횡포를 피해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만든 나라라고. 떠나온 그곳은 두 번씩이나 큰 전쟁 겪으며 다 초토화되었지만, 큰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던 이 나라는 무사했다고. 누구든 열심히만 일하면 富를 모을 수 있다는 여기로 '머리'와 '일꾼'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당연히 세상에서 제일 좋은 무기랑 물건들은 다 이 '꿈같은 나라'에서 만들어졌다고.

 

역사책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이 시대의 富라는 것이 달러라고 불리는 종이쪽지 모으기였다는 것. 물론 한 때는 이 쪽지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주겠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그 약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그저 일하고 또 일하고, 오직 일뿐이었다고. 그 전에는 '높은 사람들의 노예'이었던 사람들이 이젠 '종이돈의 노예'가 되었다고나 할까?

 

반대 쪽 바다 저 멀리에 일본이란 또 중국이란 나라들이 있었는데, 미국보다 역사만 깊었지, '새로운 기술' 그런 것엔 아주 뒤쳐진 그런 존재들이었다고. 거기 사람들이 새 기술 배워가며 열심히 물건 만들어 가져와 내 것 어때요 하면, 미국은 등 톡톡 쳐주며 그 종이돈을 쥐어주곤 했는데, 이 사람들 그 남는 돈 주체할 수 없어서 다시 미국에 맡기곤 했다고. 재미있는 놀이. 물건 사주고, 그 돈 다시 맡아서 또 물건 사주고, 또 그 돈 맡고. 이거 뭐 애들 장난도 아니고.

 

부잣집 아이들 버릇없게 자란다고, 딴 나라 사람들이 뼈 빠지게 일하며 기술 더 갈고 닦는 동안, 이 나라 사람들은 '만들기 기술'은 다 잊어버리고 Supply-side economics니 Behavioral Economics니 하는 '이상한 경제이론' 또 무슨 Derivatives니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나 개발하고. 하지만, 그 많은 백성들이 다 돈 놀이 할 수야 없는 일 아닌가. 일자리 하나하나 없어지며, '돈 놀이꾼들'만 판을 치는가 싶더니, 급기야 '펑'하는 사고를 일으키게 되고.

 

갑작스런 충격에 휘청. 다시 정신을 차린 눈에 보이는 현실은 Foreclosure니 underwater니 하는 상황에 헐떡이는 저 비참한 '제국의 졸개'들, 그들의 떨어진 사기. 어디 개인뿐이랴, 한 때 세계를 주름잡던 나라에 웬 빚이 그렇게 많이 늘었는데. 그렇다고 '진짜' 전쟁터에서 무슨 나라의 체면을 살릴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갑자기 무역전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둘만한 무슨 품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새삼 기초체력 다지면서 새로이 산업을 일으킬 자신도 없고.

 

데자뷔 déjà vu, 글쎄, 어디였더라. 역사 그 자체는 반복되지 않지만, '역사의 틀'은 반복되기 마련. 한 때 막강 로마 비잔틴 또 스페인 프랑스 영국, 그 어느 대제국 가릴 것 없이, 제국이 탄탄한 동안 그 金貨는 당연히 純金이었지만, '먹여 살리기 벅찬 병사'들의 불만을 누르며 제국이라는 조직을 유지해야하는 급박한 상황을 맞게 되면, 그때마다 '어쩔 수 없이' 시도되었던 것이 바로 純度 속이며 금화 마구 찍어 뿌려대던 바로 그 모습들.

 

지금의 QE2? 아무리 무슨 궤변을 들이대도, 진짜 이유는 마찬가지. 그렇게 마구 돈 찍어내지 않고선 빚 갚을 일도 막막하고 또 '졸개'들의 사기가 더 떨어지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는 것.  

 

그런데, 이번엔 그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순도가 떨어지는 금화를 발행한다면 그건 그 나라의 문제일 뿐이겠지만, 문제는 이 달러라는 Fiat money가, 한 때 베네치아의 Ducat, 네덜란드의 Guilder, 영국의 Pound화처럼 기축통화 즉 국제무역의 key currency라고 하는 점. 미국 입장에서야 도깨비방망이 흔들기처럼 신통력을 발휘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환율전쟁이 무역체제의 뿌리부터 흔들며 세계 경제를 공멸의 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데 그 위험성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정치경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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