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천재

뚝틀이 2011. 2. 10. 16:59

모차르트, 그는 혹 지구를 방문한 우주인으로부터 음악비법을 전수받은 행운아가 아니었을까? 베토벤이 자살을 시도했었던 하일리겐슈타트, 그곳 그의 방에서, 그가 써내려가던 악보 또 그가 치던 피아노 앞에 서서, 내 괜히 억울해지는 마음에, 한 번 해본 생각이다. 하지만, 어차피 흘러간 남의 일. 이번엔 장난스러운 생각까지 든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이들은 확실히 천재였을 것이다. 천재. 하늘이 내린 재앙. 이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 이들에 질려 음악으로의 길을 포기해야했던 사람들, 그 억울하고 원통한 사람들 눈에 이 둘의 출현이 天災가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신동이니 천재니 하는 단어가 같이 적용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의 삶은 닮은꼴이었던 것은 아니다. 모차르트의 삶이 비참하게 마감된 것은 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써야하는 것인지를 배우기도 전에 낭비벽에 빠져들었다는 人災的 성격의 문제였지만, 베토벤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어린 시절엔 또 하나의 모차르트라는 과욕에 휩싸인 아버지의 구타에 시달리며 연습에 연습을 해야만 했고, 거기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번엔 귀가 점점 더 심하게 어두워지고, 또 그로인한 대인기피증까지 겹쳐, 평생 불운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 그의 불운은 天災的 성격이었다.

 

인재의 성격이건 천재의 성격이건 상관없이, 경쟁자들의 눈에는 이들의 역경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고소한 느낌?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했다고 그들의 천재성까지 위협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위치와 삶을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되고, 운명의 힘에 맞서려는 용기가 더욱더 솟아나, 그 어느 누구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 마음속에 그리는 새로운 음악세계에 더욱 더 깊게 빠져들어, 심오한 아름다움 그 불후의 명작들을 이루어낸 것 아니던가. 고통의 승화, 그것이 이 천재들의 능력이었다.

 

두 삶의 마감은 일종의 과로사. 그 두 천재가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살았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마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들이 우리 이 시대에 살았었더라도 그런 불후의 명작들을 남길 수 있었을까? 아니, 다른 각도에서, 지금 이 세상 어느 곳에선가도 후세사람들이 ‘인류의 보배’라 칭송할 그런 예술가들이 빚어지고 있을까? 적어도, 얼마 전 내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었던 그 예술가가 전하는 그쪽 세계의 사고방식이 사실이라면, 이런 기대는 허망 그 자체 아닐까?

 

당시, 아직 통일된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수십 개의 공국으로 나뉘어져있던 독일, 각 제후들 사이에 벌어졌던 경쟁적 과시욕, 옆 나라 프랑스에서의 혁명으로 한창 고조된 평등사상, 하지만 아직 최고 권력자라는 막강스폰서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너도나도 기회를 찾아 음악의 중심도시 비엔나로 모여든 수백 명의 작곡가와 수천 명의 연주가들 사이의 무한경쟁, 이런 여러 시대정황들이 어울려져 나온 특수한 산물은 아니었을까?

 

극한 상황의 산물인 천재들, 당시라면 극히 일부 선택된 자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그들의 음악을 듣는 특권을 지금 아주 편한 자세로 들으며, 베토벤의 말을 생각해본다. Land-owner vs. Brain-owner.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내린 축복 아닐까. 하늘이 내려준 재산, 天財.

 

호기심에 또 궁금증에 대충 한 번 찾아본다.

괴테(1749-1832), 모차르트(1756-1791), 실러(1759-1805), 나폴레옹(1769-1821), 베토벤(1770-1827), 헤겔(1770-1832),

미국독립선언 1776, 프랑스혁명·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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